우리도 아이가 될 수 있다!
요즘 많은 관심을 받고 있는 가수 중 국카스텐을 빼놓을 수 없을 것입니다. 저는 그들을 예전 '나는 가수다'라는 프로그램에서부터 관심을 가지고 있다가, 이번 '복면가왕'의 '우리 동네 음악대장' 출연을 통해 좋아하게 된 사람 중에 한 명입니다. 하현우의 '장르를 씹어먹는 소화제'와도 같은 곡 해석력과 표현력도 물론 좋지만, 그의 음악인으로서의 가치는 무엇보다도 '국카스텐'으로 있을 때 가장 크게 빛나는 것 같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국카스텐의 노래를 난해하다고 평하곤 하지만, 충분히 대중적으로 다가갈 수 있는 멜로디와 가사를 가졌다고 저는 확신합니다. 왜냐하면 곡을 만드는 하현우는 '인간의 뿌리'에 관해 노래하는 사람이며, 이는 그 뿌리를 가진 인간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노래라는 것은 들으면 들을수록, 또 자신이 경험을 많이 하면 할수록 다르고 새롭게 들리는 것 같습니다. 제가 정말 좋아하는 국카스텐 노래들 중, 요즘 이 <변신>이라는 노래가 색다르게 들렸기 때문입니다. 이에는 이 노래를 만든 배경과 최근 제가 공부하고 있는 철학의 영향이 아닌가 싶습니다.
다음은 국카스텐의 <변신> 뮤직비디오와 가사입니다.
Guckkasten 국카스텐_변신_Music Video
변신
지금부터 시작될 재미있는 놀이는
여기저기 숨겨 논 나를 찾아 저지른다
이제 난 변신
지금부터 시작된 끝이 없는 놀이는
여기저기 태어나 가득 채워 터트린다
이제 난 무지개로 변신
다시 또 달빛으로 변신
어디든 뜨고 지고 변신
참을 수 없어 무엇이든 변신
우리 같이 놀아보자
다시 해가 뜰 때까지
모두 벗어던져 보자
누가 누군지 몰라도
( What should I change again? )
Turn out! Turn out!
다시 또 두근거리며 몸이 달아올라
계속해서 시작된 신비로운 놀이는
남김없이 태워도 다시 살아 움직인다
살아난 그림으로 변신
철없는 낙서들로 변신
산 채로 잡은 시(詩)로 변신
어디든 쓰고 지워 변신
우리 같이 놀아보자
다시 해가 뜰 때까지
모두 벗어던져 보자
누가 누군지 몰라도
Turn out! Turn out!
다시 또 두근거리며 온몸이 부서진다
( What should I change again? )
선명하게 변해버린 처음 본 이 모습들이
눈부시게 다가와서 벽에 걸린 내게, 벽에 걸린 내게
누구냐고 물어보네
하현우가 이 노래를 쓸 당시, 전 소속사 예당과의 갈등이 한창이었던 시기였다고 합니다. 하지만 그 시간이 오히려 득이 되었고, 잃은 것이 있다면 돈이 있다고 할 만큼 당시 이 곡을 썼을 때 마음가짐이 조금 달랐을 거라고 추측됩니다. 또한 이 노래에 대해 설명한 것을 보면. '어린아이의 변신 놀이처럼 자신을 확장시키고 자신도 몰랐던 낯설고 새로운 모습을 발견해간다는 내용의 곡이다. 아이들이 노는 모습을 보고 아이들은 변신 놀이를 통해서 순수하게 자기 자신을 넘나 든다는 생각을 하였고, 그것이 자신을 믿는 가능성이라고 보았고, 자신도 언제 죽을지 모르지만 죽기 전까지 음악을 변신 놀이를 하는 것처럼 해야겠다고 생각했다'며 창작 동기를 밝혔습니다. 하현우는 이미 다른 곡들만 봐도 일상을 특별하게 바라보는 능력을 가지고 있음을 알 수 있는데, 이 곡에서도 역시 아이들의 변신 놀이를 특별하게 바라보고 자신에게 적용했다는 점을 알 수 있습니다.
제가 이 노래를 들으면서 같이 떠올린 사람은 '니체'였습니다. 강신주의 <철학이 필요한 시간>에서 언급되는 니체의 설명을 잠시 인용해보겠습니다.
니체를 알고 있는 사람이라면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의 첫대목, 즉 정신의 자기 변형을 다루고 있는 대목을 기억할 것이다. 니체는 우리 정신은 세 단계를 거치게 된다고 말한다. 첫 번째, '낙타'로 비유되는 정신이다. 아무런 반성 없이 일체의 사회적 관습을 맹목적으로 따르는 정신이다. 마치 낙타가 주인이 등에 짐을 올리면 아무런 저항 없이 실어 나르는 것처럼 말이다. 두 번째는 '사자'로 비유되는 정신이다. 낙타와 달리 사자의 등에는 그의 의지를 무시하고 어떤 짐도 올릴 수 없다. 짐을 올리려면 사자를 죽여야 할 것이다. 사자의 정신은 일체의 억압을 부정하는 자유정신을 상징한다. 세 번째는 정신의 마지막 단계, 즉 인간이라면 반드시 도달해야 하는 '아이'의 정신이다. 니체의 아이는 솔직함과 당당함을 상징한다. 그렇기 때문에 '아이'는 과거를 맹목적으로 답습하기보다 새로운 것을 창조할 수 있는 힘을 가진다.
'아이'라는 단계는 솔직함과 당당함을 상징하여 새로운 것을 창조할 수 있는 힘을 가진다는 것입니다. 또 어린아이와 같은 솔직한 정신을 갖는 중요함을 강조했던 철학자 중 이지 또한 <동심설>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 바 있습니다.
무릇 동심이란 진실한 마음이다. 만약 동심이 불가능하다고 한다면 이것은 진실한 마음이 불가능하다고 이야기하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 어린아이는 사람의 처음 모습이고, 동심은 사람의 처음 마음이다.
저는 이 노래와 두 철학자의 글을 통해, 제가 허영과 가식 속에서 진실된 '나'를 잃어버린 채 다른 것으로 포장하고만 있는 것은 아닌지에 대한 성찰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 누구보다도 솔직한 그들이 부럽기도 하면서, 앞으로 세상을 살면서 그 순수함을 잃어버릴 것에 대해 안타까움을 느끼기도 하였습니다. 또 현재의 저를 뛰어넘는 '새로운 나'를 꿈꿀 수 있다는 생각에 즐거움을 느꼈습니다.
어린아이의 마음을 두고 그저 유치하고 허무맹랑하다고만 느낄 수 있는 관점을 단번에 깨준 철학자들, 그리고 하현우였습니다. 이 <변신>이라는 노래를 들으며, 우리도 나름대로의 다양한 변신 놀이를 할 수 있지 않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