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과수원옆미술관 May 02. 2022

불안의 터널

불안이 가끔 내 멱살을 잡고 나를 탈탈 턴다. 그러면 나는 숨 죽은 파김치가 되어 축 늘어지는데, 불안에 완패당하고 K.O 되기까지는 지난한 시간이 동반된다.

그런 일이 지난주에도 있었고 한 달 전에도 있었고 1년 전에는 더 자주 있었다.


불안이 심장을 조일 때는 어두컴컴한 터널을 헤매는 것 같다. 내가 동굴에 있는지 터널에 있는지 가늠할 길이 없는 어둠 속에 있다 보면 이 길이 언제쯤 끝날지 알 수 없다. 그래도 위태로운 걸음을 내디뎠다.     



예전에 어느 여행지에서 사람 한 사람만 겨우 지나갈 수 있는 터널에 들어가 본 적이 있다. 숨 막힐 정도로 차갑고 어두운 콘크리트 터널은 직사각형 모양에 거의 사람의 키만 한 높이였다. 한 사람의 몸에 딱 맞춘 듯한 터널에서는 아주 조심조심 걸음을 내디뎌야 했다.

나는 무섭고 왜 이런 곳에 왔을까 의아했지만 점점 터널 끝에 보이는 밝은 빛 때문에, 점차 환해지는 시야가 반가워 앞으로 계속 걸어갔다.


터널의 끝에 다다랐을 때 내가 마주한 것은 그 터널을 지나는 동안 느꼈던 답답함, 숨 막힘, 공포를 다 잊을 정도의 아름다운 풍경이었다.

 


터널의 끝에는 직사각형의 프레임 안에 푸른 바다와 하늘이 오려낸 듯 내 앞에 있었다. 터널을 빠져나가면 곧장 그 바다와 하늘로 연결되어 있을 것만 같았다. 아름다웠다.


불안한 사람들은 자주 터널 비전에 갇히게 된다. 좁은 시야로 눈앞의 것에만 집중하다가 주위의 풍경을 놓치게 되지만 다르게 말하면 종종, 지나치게 집중하는 무엇을 자세히 들여다볼 수도 있다.


회색 콘크리트 터널을 빠져나올 때, 출구가 가까워지자 눈부시게 들어왔던 빛과 바다와 하늘을 평생 잊을 수 없을 것 같다.

내가 불안에 계속 무너지고 있을 때, 불안과 무서움으로 두근거리던 심장이 설렘으로 바뀌던 그때를 문득 떠올렸다.

그 광경이 어렴풋이 떠올랐을 때, 불안과 설렘의 반응이 비슷했다는 게 생각이 났다.


너무 설렐 때 두근거리듯, 많은 순간 내가 설레었는데 그걸 불안으로 착각했을지도 모른다.

혹은 불안한 순간에도 내가 그렇게 심장이 아플 만큼 두근거리도록 온 마음을 다해 살아가는 거라고. 그렇게 여기기로 했다.


불안의 터널이 설렘의 터널으로 바뀌도록. 빛이 없어 어둑할 때도, 터널 밖의 아름다운 풍경을 상상하도록.

나는 늘 설레는 거라고.

작가의 이전글 과수원 옆에 미술관이 있었으면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