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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과수원옆미술관 Nov 30. 2022

뚠뚠한 건 귀여운데, 뚱뚱한 건…?

3.8kg이었던가? 내가 세상에 나왔을 때의 몸무게가.

엄마가 우량아로 태어난 내 모습을 보고 다른 아기들 사이에서 남다른 우월함을 자랑하던 나를 보고 놀라워했다는 내 첫인상의 이야기를 들으면 매번 웃음이 나온다.

‘어쩐지, 넌 배 속에 있을 때부터 태동이 없었어.’

그렇다. 우량아로 태어나 심지어 운동도 태생적으로 싫어하는 나는 살아오는 매 순간 살과 씨름해야 했다. 그런데 물만 먹어도 살이 찌는 걸 어떡해!(라고 소리치지만 물만 먹어서 살이 찔 리가 있나, 하루에 100리터씩 먹는 게 아니고서야. 물론 그렇게 하다간 죽는다.)


스무 살 때는 기어코 날씬한 ‘보통’의 몸무게를 유지하기 위해 기숙사 헬스장에서 운동은 물론, 저녁은 무조건 콘플레이크 한 ‘컵’만 먹었다. 절대 밥그릇에 안 먹었다. 그렇게 미용 몸무게를 유지하는 동안 주변 사람들에게서 얻는 칭찬은 나를 우쭐하게 했다. 음, 내 인생에서 꽤 짧은 기간이었지만 좋았지.

…그런데 정말 모든 게 좋았을까?     


모든 사람이 살아오는 동안 ‘몸’에 관한 지적을 많이 받아봤을 터다. 이런저런 오지랖이 난무하는 세상에서 내 ‘몸’을 지키기는 매우 어려웠다. 어쩔 땐 바리케이드를 치고 ‘몸에 대한 지적질 금지’라고 써놓고 싶었다.

사실 세상이 정한 기준인 날씬함에 나를 맞췄을 때 좋은 건 남들에게서 듣는 그럴듯한 칭찬뿐이었는지도 모른다. 남이 나를 괜찮은 상태라고 봐주는 그 외적인 기준. 일종의 사회적 안전망 같은 거다. 나를 보호하기 위한.

이건 팩트인데 내가 겪은 일화 몇 개만 말해도 사람들이 우후죽순 나도 그런 적 있다고 말문이 터질 거라 장담한다.     


시간이 흐르고… 몇 년 후, 경도비만의 몸을 갖게 된 G는 카페 아르바이트를 하기 위해 학교 앞 카페를 찾았다. G는 안타깝게도 단 삼 일 만에 잘리는 쾌거를 이룩했는데, 그 사흘간 믿기지 않을 정도로 몸에 관한 폭언을 들었다. 그때의 G는 몰랐지만 그 카페 사장은 성격이 좋지 않기로 이미 은근한 소문이 돌고 있었다. (지금도 생각하면 G는 기분이 나빠지기에 모욕적인 사장의 말을 옮겨 적지 않는다.) 그렇게 인격 모독을 매일 겪던 삼 일째 G는 유리컵을 깨는 사고와 기타 등등 소소한 잘못을 저질렀다(G는 아직도 그게 사장이 정확한 지시를 안 한 탓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카페 사장은 머리끝까지 화가 났는지 G에게 손을 올렸다. 뺨을 맞을 뻔한 G는 가까스로 이성을 붙든 사장에게서 사흘간 수습으로 일한 알바비를 현금으로 받아 쥐고 카페를 나섰다.

‘내가 두 번 다시 저쪽으로 발을 두나 봐라! 더러워서, 쳇.’

호기롭게 생각했지만 실은 G는 줄줄 눈물을 흘리며 자취방으로 향했고, 자신의 몸은 왜 이럴까. 이게 그렇게 남에게 하찮게 취급받을 이유가 되는 걸까? 라고 생각했다.


이건 첫 번째, 강렬한 에피소드다. 다음은 두 번째.


G는 동생에게 이끌려 보건소에 인바디를 받으러 갔다. 솔직히 가기 싫었다. 그때 G는 이미 고도비만이었다. 결과지를 들고 G에게 보건소 선생님은 이렇게 말했다.

‘아직 젊다고 그동안 막 사셨나 봐요?’

G는 열받았지만 소심해서 결국 아무 말 못 하고 나왔다.     


뚱뚱해져서 멋쩍은 오소리. 하지만 모든 동물은 뚠뚠해도 귀여워.


일상에서 ‘비만인’의 몸은 성격과 삶과 지나치게 결부되어 폄하된다. 병원에서도 결코 안전하지 않다. 의사들이 하는 말이 더 무서워서, 나에게 어떤 모욕을 주지 않을까 의심하게 된다.

얼마 전에 소수자 인종 차별에 관해 새롭게 알게 된 말이 있었다.

마이크로어그레션(microaggression).

미묘한 차별을 이르는 말인데, 이를테면 “넌 동양인치고 눈이 크네?”, 약간 특이한 행동을 하는 사람에게 “호모 아니야?” 하는 등의 말이다(같은 맥락에서 ‘확찐자’도 있다.). 우리의 인식 깊숙이 스며들어서 말하는 본인이 차별이라고 인지하지 못한 말들이 소수자에게는 모욕으로 다가온다.

이러한 말이 정의되어 있었다니! 내가 찾는 게 이거였어! 하고 유레카.


비만인에게도 아주 많은 마이크로어그레션이 있다. 하지만 누군가의 말이 모욕적이라 생각해서 반발하면 “다 네 건강을 생각해서 하는 말이지!” 하는 말에 입을 다물곤 했던 지난날들이 스쳐 간다.

건강. 그래 건강 좋지. 하지만 걱정이라는 말 뒤에 숨어 모욕은 하지 말았으면.

그러다 나를 위로해준 콘텐츠가 있었다. 내가 즐겨보는 유튜브 채널 ‘닥터프렌즈’에 올라온 영상 하나가 있었다. <당신이 비만에 대한 시선을 지금 당장 바꿔야 하는 이유>라는 제목이었는데 실은 겁부터 집어먹어서 보기 꺼려하다가 봤는데 감동받아서 울었다.


나에게 필요한 게 이거였구나.

나는 그저 ‘나’ 자체로 존중받고 싶었을 뿐이었는데.     


난 내 몸과 항상 사이가 좋지 않았다. 우리의 관계는 파탄에 이른 지경이라고나 할까. 내가 몸을 무시하면 몸은 호르몬으로 나를 폭식하게 만들거나 우울하게 만들거나 늘어지게 만들었다. 몸에 갇혀 있다고 느낄 때가 많았다. 몸이 감옥처럼 느껴졌다.


그런데 이제는 그러고 싶지 않다. 다른 사람들도 모욕받지 않으며 살았으면 좋겠다. 누가 그런 삶을 좋아하겠는가. 내가 긍정적으로 생각한다고 해서 내가 당하는 모욕이 사라지지는 않는다. 모욕은 사람이 사람을 사랑할 수 없게, 삶을 사랑할 수 없게 만든다.


난 나를 사랑하고 싶고, 다른 사람도 사랑하고 싶다. 모욕이 없는 세상에서 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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