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사도서관 고전 독서 동아리의 처음 책은 ‘데미안’이었다. 어렸을 때 맨땅에 맨발로 거친 땅을 걸어가고 있는 느낌이었다.그런 어린 나는 헤르만 헤세의 책을 읽고 많은 위로를 받았었다. 시간이 지나 그 감정만 어설프게 남아있을 뿐, 그게 어떤 내용이었는지 구체적인 내용이나 내 생각은 시간이라는 그늘에 휘발되어 없어져 버렸다. 이제 ‘데미안’의 주인공은 더이상 내가 아니라 내 아이였다. 10대 문 앞에 다가선 장녀의 앞뒤 없는 신경질과 많은 당혹스런 변화를 보며 적잖이 많은 당황을 하고 있던 터였다. 내 과거는 깡그리 잊어버렸다. 내 과거의 나를 딸과 이 책을 통해 다시 만났었다.
그 책을 만난 것과 함께 강동문화재단에서 데미안을 깊이 보는 교육 기회를 얻게 됐다. 첫 날 헤르만 헤세가 데미안이란 작품을 탄생시키기 전 정신분석을 했던 경험과 함께 BTS가 만든 작품 속 데미안 속 차용한 그 사상에 대한 생각을 볼 수 있었다. 그 다음은 연극을 보는 방식에 대해 그리고 이 연극 전에는 헤세가 살아간 공간인 독일의 배경에 대해서 자세한 설명을 들었다. 그 이후 이 연극을 보니 감동이 더 배가 되었다.
엄격하게 이야기하면 이 연극은 데미안을 완벽하게 장착한 연극은 아니다. 모든 데미안 속 이야기가 들어있긴 하지만 어느 정도 많은 각색을 거쳤다. 이미 많은 내용을 책으로 봤기에 굳이 다시 똑같은 내용을 극으로 상영하는 건 지겹고 식상할 수도 있었다. 오히려 다른 내용으로 각색하고 또 시간을 좀 더 우리 시대 근처로 가지고 와서 원본과 연극 작품을 비교하는 재미도 있었다.
책에서는 데미안이 주인공 싱클레어 친구였다. 연극에서는 데미안이 싱클레어의 선생님으로 변모됐다. 그럴 수 있는 게 그만큼 데미안은 싱클레어에게 다가갈 수 없는 미지의 카리스마를 주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데미안이 가지고 있는 나름의 유태인으로 다가갈 수 없는 거리감이나 선생님의 거리감은 차이가 없었다. 데미안 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은 나중에 나치가 들어서면서 미국으로 망명하면 헨리 키신저 같은 사람이 되려나? 이런 생각이 뜬금없이 뛰쳐나왔다. 또한 예상치 못한 친구의 사고나 괴롭히는 악한 친구 무리들도 모두 연극에 자연스럽게 잘 녹여냈다. 데미안에서 나아가 헤르만 헤세의 다른 작품인 ‘수레바퀴 밑에서’라는 책이 떠오르기도 했다.
네 명의 배우가 쉼 없이 움직이며 데미안 세상을 그리는 걸 보고 다시 세상에 나왔을 때 100분이라는 시간이 순식간에 흘렀다는 사실에 깜짝 놀랐다. 그런데 다시 생각해 보면 꽤 긴 장편소설을 단 100분 만에 다 쏟아냈다는 것, 게다가 네 명밖에 안 되는 사람으로 그 세상을 꽉 차게 만들었다. 가능할 것 같지 않은 사실을 가능하게 만들었다. 그 100분 동안 그 속에 쏙 빠져들었다 나왔다.
데미안은 카인과 아벨의 이야기로 싱클레어 속 웅크리고 있는 알을 깨기 시작했다. 이 연극만으로도 관객 속 알을 흔들어 깨운다. 항상 우리는 옳다는 것에 이끌려 그쪽으로만 치중해 살고 싶은 생각을 가지고 있다. 유명하다는, 인기 있다는 사람이 좋다는 것, 그리고 권위자들이 원하는 쪽으로만 치중해 살아버리려 한다.
그러나 인간이라는 존재는 항상 양날의 검을 품고 산다. 빛이 있으면 그림자는 있기 마련이고 악이 있으면 선이, 그리고 이성이 있으면 감성이라는 존재가 따라온다. 빛만이 좋다고, 선만을 바라고 이성으로만 살기 위해 노력하면 결국 우리는 지쳐 넘어진다. 왜냐면 우린 그럴 수 없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결국 우리는 우리의 모든 점을 포용하고 인정해야 한다. 그건 숙명이고 당연한 부분이다. 이는 데미안 책과 연극 모두가 우리에게 얘기하는 바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