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버린 것도, 결국 사랑이었다.
불은 늘 두 얼굴을 가지고 있다.
살리기도, 태우기도 한다.
오늘 나는 그 불을 집 안에서 만났다.
하얀 티셔츠를 깨끗이 만들고 싶었다.
과탄산을 넣고 삶아두고는 잠이 들어버렸다.
눈을 뜨니 공기가 묘했다. 연기가 가득했고, 티셔츠는 재가 되어 있었다.
불은 나를 죽이지 않았고, 나를 깨웠다.
우린 종종 너무 깨끗해지고 싶어서, 너무 완전하고 싶어서 불을 지른다.
결점 없는 나를 만들려다 결국 나를 태운다.
타버린 티셔츠를 보며 생각했다.
내 안의 욕망과 완벽주의가 저 티셔츠처럼 까맣게 변해버린 건 아닐까.
그래도 불이 닿은 자리는 정직하다.
그을린 자국은 숨길 수 없으니까.
그건 진실이다.
불길을 끈 건 예성이의 한마디였다.
“엄마, 냄새 이상해.”
그때야 정신이 번쩍 들었다.
불이 날 뻔한 그 순간, 나를 구한 건 다름 아닌 ‘관찰’이었다.
사랑도 그렇다.
우리가 사랑을 망칠 때는 대체로 ‘관찰’을 멈췄을 때다.
상대가 피곤한지, 슬픈지, 위험한지 보지 않게 될 때
불은 번진다.
사랑은 뜨거움으로 시작하지만
끝내는 냉정한 시선으로 지켜져야 한다.
사랑은 누군가의 한마디로,
그 한마디의 온기로 소화된다.
할로윈이었다.
죽음의 가면을 쓴 사람들이 웃으며 돌아다니던 날.
나는 그 어둠 속에서 살아 있음을 느꼈다.
죽음과 삶의 경계, 실수와 축복의 경계.
모든 것은 그 사이 어딘가에서 진동한다.
불이 날 뻔한 그 밤,
나는 태우는 법과 끄는 법, 그리고 사랑하는 법을 동시에 배웠다.
사랑은 완벽하게 만들려는 것이 아니라
태워버리지 않을 만큼만 따뜻하게 지키는 것이다.
우린 모두 불의 사람이다.
사랑을 위해 불타고,그 불을 끄며 성장한다.
그리고 결국엔, 모든 연기와 잿더미 사이에서 서로의 온기를 발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