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몇 년 전인 수술 이후로는 병원에 정기적으로 검사와 진료를 받으러 다녔다. 다만 그 간격은 매번 길어져서 이 직전의 검사로부터는 3년 만으로 아주 오랜만에 병원에 가게 된 것이다.
동서울 터미널에서 잠실나루역을 거쳐 병원으로 걸어갈 때도 나는 2년마다 받는 국가건강검진을 받으러 동네 내과에 갈 때와 별반 다르지 않은 기분이었고 그 일주일 후 검사 결과를 들으러 가는 날에는 병원 지하에서 크림치즈가 들어간 프레츨을 사 먹어야지. 빵집 고로케가 지금도 맛있으려나. 그런 생각을 하면서 2호선 개찰구에 카드를 찍었다.
늘 그렇듯 진료는 3분이면 끝나리라. 수술한 오른쪽 뇌는 여전히 문제없다고 한다. 다만 이번엔 좀 다르게 흘러간다. 왼쪽 뇌로 올라가는 혈관의 뿌리가 이미 상당히 막힌 상태다. 왼쪽도 가능한 빨리 수술을 해야겠다고 정해주는 날짜가 1년 하고도 한 달이나 남았다.
-1년인데요? 그동안은 괜찮을까요?
-모르지.
일단 뇌혈관조영검사를 추가로 하자기에 한 달쯤 후로 예약을 잡는다. 이 검사 결과로 무엇이 바뀔지는 모른다. 괜한 기대는 하지 않는 편이 이롭다. 기대에는 그만큼 큰 좌절이 따라오기 쉽다.
다음 예약에 대한 안내지가 끝없이 출력된다. 병원에 온 김에 처방받은 6달 치 약과 줄줄이 출력된 각종 안내문이며 보험 청구용 서류가 든 봉투를 들고 걸어서 잠실철교를 건넌다.
한강 위로 노을이 지고 자전거를 타고 지나는 사람. 시끄러운 2호선 전철. 어디로 가는지 모를 자동차들.
회사는 어쩌지. 충분히 병가를 낼 수 있을까. 퇴원 후엔? 돈은? 또 어찌 될지 모르는 상태다. 병원을 나오면 눈물이 쏟아질 것 같았는데 걷다보니 그냥 걸어진다.
아는 것과 모르는 것. 때로는 아는 것이 더 두렵다. 지난 수술의 기억을 더듬어서 굳이 알고 싶지 않았지만 알게 된 환자로 사는 일의 고충들을 되짚어보면 또 아득해진다.
이번 입원검사도 이미 해본 것이라 어떤 것이었는지는 기억난다. 조영제가 뇌로 타고 올라올 때의 화끈거리는 감각과 눈앞에 벼락이 치는 듯 번쩍이는 기이한 경험. 허벅지 위에서 절개를 해 혈관을 찾는 탓에 다리를 움직일 때마다 불쾌하게 욱신거려 퇴원길까지 고생했던 일. 그런 것들을 떠올리는 것은 나를 조금 지치게 했을 뿐이었다.
그러나 입원해 있는 동안 그것들을 예정대로 수행하는 동안에 생각했다. 내가 이겨냈다고 생각했던 모든 고통이 한 번씩 더 찾아올 것이다. 이미 알고 있으니 별 거 아닐 거라고 담담했던 것과 달리, 지금 머리가 으깨지는 듯 아픈 것처럼, 생경한 고통으로 찾아올 것이다.
그러나 알아서 대비할 수 있는 것도 있으니. 지난 수술 때는 중환자실 침대 옆에 콜벨이 있다는 걸 아무도 안 알려줬다. 그런데 간호사가 내 상태를 체크하고 갈 때마다 옆에 둔 바퀴 달린 테이블을 멀찍이 밀어 두고 가버렸다. 침대에 누워서 꼼짝도 할 수 없었기 때문에 누운 채로 마실 수 있게 구부러지는 빨대가 달리는 물컵은 필수품인데 테이블째 치워버리니 찾을 수가 없었다.
목이 타서 물컵을 찾을 때마다
“저기요... 아무도 안 계세요...?”
하고 죽을 것 같은 소리로 누구라도 지나갈 때까지 불러야 했다.
이 삼일은 지난 후에야 중환자실에 귀신이라도 나타난 줄 알고 화들짝 놀랐다며 내 앓는 소리를 듣고 온 간호사가 콜벨의 존재를 알려주었다.
벨은 내 침대 난간에, 그것도 내 손 바로 옆에 달려 있었다.
애초에 테이블을 밀어두지 말아달라고 부탁했으면, 혹은 누가 와서 테이블을 당겨줄 때 한 번이라도 다음에 필요한 게 생기면 어떻게 불러야 하느냐고 물어봤으면 됐을 일이지만.
그때는 머리를 한 번 열었다 닫은 후였으니 어떻게 머리가 그렇게 안 돌아갈 수 있나 싶어도 이해해 주시길.
그래도 이제라도 아니 다행이지 않은가.
내가 잘하는 일. 싫은 건 한번 넘어지고 한번 운 다음에 털어버리기. 좋은 건 어떻게든 찾아내서 박박 닦아 광내기. 가을은 갈무리하는 계절이고 수확하는 때이다. 쭉정이를 털어내고 잘 여문 것만 모아야지.
쉽지 않은 일이지만 나는 또 무언가를 잃어버리고, 새로이 찾아낼 것이다. 그래야 한다. 아무리 힘들어도 밥은 먹어야 하고 숨은 쉬어야 하듯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