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사를 위해 입원한 2박 3일간을 내리 책을 읽었다. 요즘은 핸드폰으로도 볼 수 있는 이북이 있지만 종이책도 두 권이나 챙겼다. 덕분에 식탁 위에 쌓아두었던 책들의 산이 제법 줄어들었다.
그러나 그렇게 활자가 파도처럼 휩쓰는 시야에도 수액이 들어간 만큼 부어버린 손목에 감긴 띠가 돼지나 소의 인식표처럼 보여서 기분은 처참했다.
그 사흘간 나는 티베트 불교에 대해 좀 알 것 같은 생각이 들었고, 올해 노벨상 수상자의 소설을 원어로 읽는 즐거움을 만끽했으며, 옥상 정원에서 한강 야경을 조망하는 호사도 누렸다.
그러나 어쩌랴. 신경외과 병동엔 죽겠다고 앓는 사람이 이리도 많은데 나는 그 가운데 당장 죽을 일은 없고 그저 언제나 죽는지 갈피를 못 잡는 처지로 있자니 모든 게 불편하기만 하다.
석 달을 산다면 통장의 돈을 셋으로 나누어 볼 텐데. 1년을 산다면 계절마다 제철음식을 먹으러 떠날 텐데. 10년을 산다면 그래도 좀 안심할텐데.
살려면 수술을 하자고 해놓고 수술 동의서를 쓰는 때에야 괜히 건드려 죽을 수도 있으니 잘 고민하라던(당장 동의서와 펜을 내 앞에 내놓고서!) 젊은 의사의 말처럼. 나는 가만히 있어야 하는지 뭐라도 해야 하는지 모르는 매일을 또 지나고 있었다. 그리고 퇴원 후에도 쫓기는 사람처럼 서점과 도서관을 들락거리며 온갖 책을 읽어내렸다.
000번대는 총류. 100번대는 철학. 200번대는 종교. 건너뛰어 800번대 문학까지 서가를 가로질렀다.
지난주에는 50세에 결혼한 여성 작가가 쓴 에세이를 읽었고(브런치에서 출판된 책입니다. 좋은 글을 써주신 작가님께 감사), 오늘은 동네 외곽에 있는 카페에서 뉴욕의 가장 부유한 동네(유치원 입학이나 아파트 입주를 위해서 면접도 봐야 한단다)에 살면서 부자 동네 엄마들의 습성을 관찰한 사회연구가 엄마의 연구일지를 읽고 있다.
나는 아직 50세도 안 되어봤고, 물론 50세에 결혼해 본 적도 없으며, 뉴욕의 부자 동네에 살기는커녕 긴 비행은 이제 엄두도 못 낸다.
그러나 요즘은 사적인 얘기가, 남의 사사로운 일상을 읽는 일이 즐겁다.
50이 못 되어봐도 남들과 다른 50을 산 사람의 생각은 받아먹어 봤고, 자유의 여신상 근처에도 못 가봤지만 뉴욕의 생활을 좀 안다.
읽고 배우는 일이 한 가지라도 더 간절해 목이 탄다. 초조함을 가리려고 글자 속에 눈알을 파묻었다. 내가 살아보지 못할까 두려운 삶의 대목을 탐구심을 가장해 엿본다. 살지 않고도 살 방법을 찾는다.
다시 수술을 해야 한다는 말을 듣던 날엔 눈물도 나지 않았다. 그날의 애매한 기분은 뒤늦게 초조함과 두려움으로 자라났다. 그 누구의 삶이 고통스럽지 않을까. 그저 마음껏 고통스러워한 뒤에는 또 힘내보자고 일단 오늘은 안 죽었으니 살아보자고 애써 눕고만 싶은 몸을 일으킨다. 죽음이 미리 초대장을 보내고 찾아온다면 좋았을텐데.
삶의 유한함을 어찌 받아들일까. 나의 모든 노력은 이겨내지 못해 그저 이해하려고, 이해해보자고 보채는 몸부림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