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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현선 Nov 07. 2024

소유의 기쁨 무소유의 안온

1.

산에 오르지 못한다면 슬프겠지.

지난 주말에 겨우 30분 동안 산을 올라서

목표했던 봉우리에 도착은 했는데

생각보다 힘들고 어지러웠다.

수술 이후 체력은 예전만큼 돌아오지 못한다

오르는 내내 쫓아온 두통이 불안하기보다는

예정대로 도착하지 못하는 게 더 무서웠다.

할 수 있던 것을 할 수 없게 되는 일.

얻을 수 없게 된 기쁨을 다른 일에서 얻을 수 있을까?

많은 것이 대체할 수 있거나 포기할 수 있었지만

산을 오르는 일만은 마음을 복잡하게 한다.


2.

스님 저는 제 그릇이 너무 작은 것 같아요

그래서 아무것도 못 들이겠어요

간장 종재기만해서 너무 어려워요


자기 그릇이 작은지 어떻게 알아?

그걸 아는 게 얼마나 어려운 건데


3.

휴일이면 으레 가는

동네 카페에 와 있다


누구랑 같이 온 적은 한 번 있었고

외에는 혼자 온다

사장님한테 정원의 화분을 하나 선물 받은 날

그 화분이랑 같이 집에 왔고

평소엔 당연히 혼자 집에 간다


그러다 간다

가려면

너무 많이 가지지 않는 편이 좋다


4.

김 빠진 미지근한 콜라가 좋다. 빵 사이에 발린 얇은 크림 이 좋고, 비타민워터의 입안에 뭉근하게 남는 단맛이 좋다. 애매한 것들을 사랑한다


뉴스에서 미리 알려주는 유성우나 월식 같은 천체 쇼가 좋 다. 조용한 밤에 쌍안경을 들고 옥상에 올라가 그 거대한 움직임을 멀리서 가만히 바라보고, 계단을 걸어 내려올 때의 묘하게 붕 뜬 감각을 사랑한다.

별들이 떼로 떨어져내리고 달빛이 사라져도 아무것도 바 뀌지 않는다.


해파리나 금붕어가 되는 상상을 한다. 잘 되는 것도 없고 잘못되는 것도 없다. 기왕이면 미지근한 물에 떠 있고 싶 다. 몸을 늘어뜨리고 모든 일들을 생각한다.


아, 사실 별 거 아니었지 그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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