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 어디서, 어떻게 죽을 지 모를 뿐이다
포카라와 카트만두는 약 200km정도 떨어져 있으나 승용차로는 4시간, 버스로는 6시간 반 정도 걸린다. 굽이굽이 산을 넘어가야 하는 위험한 길인데다 길의 포장상태와 버스의 수준이 한국에 비해 한참 못 미치니 오래 걸릴 수밖에 없다. 마침 포카라를 떠나 카트만두로 돌아오는 날이 다사인(Dashain)이라는 네팔의 축제기간이었다. 원래는 힌두교의 신화에 따라 선(善)이 악(惡)을 이겼음을 기념하면서 유래되었으나 이제는 종교와 관계없이 전 네팔 사람들이 기념하는 축제가 되었다고 한다. 한국의 추석이나 미국의 추수감사절 같이 떨어져 지내던 온 가족들이 함께 모여 기념하는 국가 전체의 명절인 것이다. 온 가족이 모이니 마을마다 소, 돼지, 염소 등 가릴 것 없이 직접 잡아서 함께 즐기는 기간이었다.
“아빠! 이리로 와서 이것 좀 봐!”
우리가 탄 카트만두행 버스는 길을 따라 작은 마을들을 계속 지나갔다. 그렇게 버스에서도 마을 사람들이 한데 모여 함께 거사를 치루는 광경을 여러 번 지나쳐 보게 되었다. 첫 번째 정차했던 휴게소에서 지민이가 다급하게 나를 부르기에 쫓아가보니 지나쳐만 보던 살벌한 광경이 바로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었다. 네팔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검은 물소 한 마리를 도살하고 짚을 둘러 불을 붙여 털을 그슬리는 중이었다. 덩치 큰 물소의 머리가 옆에 나동그라져 있는 장면은 차마 눈을 뜨고 볼 수가 없었다. 지민이와 나는 흔치않은 광경에 놀라있었으나 마을 주민으로 보이는 10여 명의 네팔사람들은 축제 분위기에 젖어 함께 웃고 떠들며 신나게 작업을 하고 있었다. 인도의 힌두교에선 소를 신성시하여 소고기를 먹지 않는다던데 네팔의 힌두교는 아마 다른가보다. 오늘로 운명을 다한 소에게는 안타까운 일이지만 한 마을의 사람들은 모두 오늘 진수성찬을 맞을 것이다.
코끼리는 나이가 들면 무리에서 쫓겨나 홀로 생활한다고 한다. 홀로 된 코끼리는 늙어서 더 이상 자신을 지킬 수 없으면 직접 코끼리의 무덤을 찾아 간다고 들었다. 코끼리들이 한데 모여 죽어서 상아가 쌓여있는 코끼리의 무덤을 찾는 사람은 부자가 된다는 소문이 있을 정도다. 코끼리는 죽는 방법과 시간을 자신이 선택하여 무덤을 직접 찾아갈 수 있는 특별한 능력이 있는 것일까? 만약 인간 역시 언제 어떻게 어디서 죽을 지를 선택할 수 있다면 죽음에 대한 생각과 삶의 태도가 지금과는 다를 것이다.
“오늘이 인생의 마지막 날이라면, 무엇을 할 것인가?”
10년 전 스티브잡스가 스탠포드 졸업식 축사에서 한 말의 약간의 변형이다. 유튜브에서 이 연설 동영상을 처음 접했을 때 적잖은 충격을 받았다. 특히 위의 문장은 이후의 내 삶을 변화시키지 않았나 싶다. 체면이나 품위 때문에 해야 하는 경조사 참석이 대폭 줄었다. 마일리지나 포인트와 같이 인간의 심리를 이용하는 각종 적립 수법들로부터 자유로워졌다. 끝도 없이 많은 선택의 기준이 내가 진심으로 하고 싶은지의 여부가 되기 시작했다.
나는 자동차를 사랑한다. 내게 자동차는 단순한 운송수단 이상이다. 차에 대해 기계공학적으로 연구하는 것을 직업으로 가지고 있을 뿐만 아니라 특히 운전을 할 때는 시간가는 줄 모르고 몰입할 수 있다. 운전을 할 때면 유리창으로 시시각각 변하는 풍경을 보면서 어디로든 떠날 수 있다는 사실에 자유로워진다. 그리고 차의 공학적인 설계에 대해 비교적 자세히 알고 있기 때문에 차에 이상이 있는지 없는지를 직접 느낄 수 있다. 몇년 전에 아버지가 더 이상 운전을 하실 수 없게 되어 차를 처분하신 적이 있다. 운전을 좋아하는 내게도 언젠가는 그런 순간이 찾아올 것이다. 더이상 운전을 할 수 없다면 삶의 큰 의미가 사라질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매일 운전하는 것을 이 닦는 습관처럼 놓지 않는다면 아마도 도로 위에서 죽게 될지도 모르겠다.
지민이가 태어나기 전, 병이 재발하여 지민이가 대학갈 때까지 아버지로서의 책임과 의무를 다 할 수 있게 해달라던 기도가 얼마나 간절하고 절박했는지를 똑똑히 기억하고 있다. 그런데 둘째인 아들까지 대학에 입학했을 때의 기쁨은 이루 말할 수 없다. 아버지로서의 책임을 다했다는 것이 다행스러웠고 감사했다. 그 이후 내 삶의 태도도 많이 달라진 것 같다. 소위 여한이 없다는 마음으로 감사하며 산다.
사전의료의향서란 것이 있다는 것을 최근에 알았다. 이즈음 많이 쇠약해진 아버지를 볼 때마다 내가 무엇을 도와드릴 수 있을까하며 여기저기 알아보다 찾은 것이다. 노환이나 말기 암 치료 중에 더 이상의 희망이 없다고 판단될 때 자신에 대한 생명연장치료를 어떻게 해 달라고 정신이 온전할 때 써두는 것이다. 보통은 생명연장치료는 하지 않고 고통완화치료만을 해달라고 서면으로 선언한다고 한다. 자신의 임종시기와 모습을 자신이 조금 더 만족스럽게 만들기 위한 방법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온 몸에 각종 호스가 연결된 채로 중환자실에서 쓸쓸히 죽기보다는 가까운 가족들의 품안에서 떠나고 싶다는 다짐인 것이다.
이 사전의료의향서를 작성할 때 또 하나 정해야하는 중요한 것은 자신의 의사표현이 불가능할 때 대리인을 지정하는 것이다. 보통은 가장 가까운 가족을 선택한다. 내 의사를 가장 확실하게 반영해 줄 사람은 누구일까?
“지민아, 네가 해줄래?”
아빠가 어느 날 갑자기 사전의료의향서라는 것을 내밀었었다. 최근 친할아버지가 크게 아프시면서 알게 된 모양이다. 만약 아빠가 식물인간이 되었거나 더 이상 손을 쓸 수 없는 상황이 되었을 때 대리인을 정해야하는데 나에게 해줄 수 있겠느냐고 물었다. 아빠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눈물이 차올랐고, 아빠는 왜 갑자기 그런 이야기를 하느냐고 버럭 화부터 냈었다.
나는 ‘죽음’이라는 것에 특히나 예민하고 감정적이다. 대학교 졸업하고 외할아버지가 돌아가시면서 처음으로 가까운 사람의 죽음을 경험했다. 그 전까지만 해도 장례식장에 조문 가는 것을 극히 두려워했었고, 가끔은 내가 병적으로 ‘죽음’을 두려워하는 것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상상하는 것조차 어려웠다. 내가 너무 사랑하는 사람들이 혹시라도 아프거나, 다치거나, 죽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면 프로 연기자처럼 곧바로 눈물이 맺힌다. 평소처럼 출근하는 엄마의 뒷모습에 혹시라도 엄마가 교통사고가 나면 어쩌나, 아빠가 평소보다 아침에 조금 늦게 일어나면 혹시라도 아빠가 일어나지 않으면 어쩌나. 말도 안 되는 상상에 오히려 내가 죽을 것 같이 마음이 아플 때가 있다.
한 때는 오늘을 열심히 산다면 내일이 없어도 후회하지 않을 수 있다는 말에 공감할 수 없었다. 내가 오늘을 열심히 살면 살수록 내일 하고 싶은 일들이 점점 많아지고 삶에 대한 집착이 더해질 것 같은데 어떻게 후회가 없을 수 있을까? 최선을 다해 살아낸 오늘이 행복할수록 내일이 더욱 기대가 될 텐데 말이다.
이렇게 ‘죽음’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과 슬픔을 극복해보고자 호스피스 병동의 의사로 유명한 김여환 선생님이 진행하시는 모임에 나가본 적이 있다. 스스로 주체할 수 없는 감정을 감당하는 법을 배워오고 싶었다. 선생님은 울먹이며 소중한 사람의 죽음이 너무나도 두렵다고 이야기하는 내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을 너무 두려워하지 마세요. 이 세상 모든 사람에게는 마지막이 있고, 그 끝을 감당해냈을 때 본인의 인생은 더 깊고 풍성해질 수 있어요.”
선생님께서는 많은 환자들을 보내셨지만, 가장 금방 슬픔을 잊을 수 있는 환자는 가장 많은 사랑을 준 환자라고 하셨다. 오히려 더 충분히 사랑하지 못했던 환자를 더 오랫동안 기억하고 아파하게 된다고 하셨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의 마지막 순간을 더 담담하게 받아들이기 위해서는 그만큼 평소에 최선을 다해 사랑해야 한다는 것. 보내드리는 마지막 순간에 아쉬움이 남아 더 마음 아프지 않도록 지금 이 순간 사랑을 담아 최선을 다해야하는 것. 작게나마 용기를 얻었던 그 말씀을 항상 마음깊이 간직하고 살기위해 지금도 노력 중이다.
3년 전, 대학입시를 함께 준비하고 동네가 가까워 대학시절 내내 정말 많은 시간을 함께 보냈던 친구가 백혈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평소 장난끼가 많았던 친구였는데 떠날 때도 그 친구답게 할로윈데이 아침에 떠났다. 매년 할로윈이 돌아올 때마다 그 친구가 생각난다. 친구를 보기위해 찾아갈 때마다 사진 속 웃고 있는 얼굴에 아직도 친구가 이 세상에 없다는 사실이 믿겨지지 않는다. 담담하게 사진 속의 얼굴을 보면서 안부를 전하지만, 가슴 깊은 곳에서 올라오는 감정을 자제하기는 매번 쉽지 않다. 그래도 함께 어울렸던 친한 친구들과 가끔 만나 그 친구가 아직 존재하는 것처럼 예전의 추억들을 나누고, ‘지금 그 친구가 여기 있었으면 어땠을까’라며 이야기할 때마다 마음이 훨씬 편해진다. 비록 몸은 함께 있지 않지만, 마음은 함께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인생이라는 것. 태어나는 것도, 죽는 것도 내가 선택할 수 없다. 내가 선택할 수 있는 것은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의 그 과정. 어떤 삶을 살다가 마지막 순간을 맞이할 것인지 그 과정은 온전히 내가 선택할 수 있다. 그리고 그렇기 때문에 우리의 살아있는 날들은 참으로 매력적이다.
김여환 선생님께서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이겨내기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나의 마지막 모습을 만나고 오는 것이라고 하셨다. 인생을 마감하는 순간에는 결국 나 혼자 가야한다. 그 마지막 순간을 스스로 만나고 왔을 때 비로소 내 인생에서 마지막까지 가져갈 수 있는 것은 무엇일지 알 수 있다고 하셨다.
네팔에서 축제기간을 맞아 사람들은 즐거웠지만, 동네의 튼튼한 소 한 마리는 죽음을 맞았다. 소의 마음을 절대 이해할 수도, 대변할 수도 없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래도 소는 동네 사람들에게 행복한 명절의 기억을 선사하고 생을 마감했다. 나의 마지막 순간을 떠올렸을 때, 나 역시 누군가에게 행복한 기억을 남기고 떠날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게 소중한 사람을 행복하게 하는 인생, 지금 나는 잘 살고 있는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