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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지민 May 03. 2019

아가를 만나자 엄마가 되었다

내가 준비가 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아가가 아직 안 내려왔네. 예정일까지 기다려봐야할 것 같아요."

예정일 4일전, 마지막 정기검진에서도 아가는 얼굴을 방긋 잘 보여주었다. 나올 때가 되면 골반 속으로 숨어 얼굴이 보이지 않는다는데 아직도 엄마 뱃속이 좋은가보다. 예정일이 다가올수록 하루가 다르게 몸이 힘들어지니, 며칠만이라도 일찍 나오면 좋겠다는 생각에 무거운 몸을 이끌고 20층씩 계단을 오르고 동네를 산책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오는 날은 아가가 정한다더니 아직 생각이 없나보다.

2월 22일이 생일이면 누구나 생일을 기억해주기 쉬울 거라는 생각에 22일에 나오길 바랐지만, 조금만 더 있다 건강하게 나오겠다면 기다리겠다고 아가에게 말해줬다. 별다른 기대없이 잠들었던 밤, 다음 날 새벽에 싸르르한 통증에 눈을 떴다. 말로만 듣던 이슬을 보았고, 원하던대로 오늘 만날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설레기 시작했다. 거짓말처럼 주기적인 진통이 시작되었다. 20분 간격, 15분 간격, 10분 간격. 진통이 올 때는 어찌할 바를 모르게 아프다 지나간 후에는 또 멀쩡한 순간들이 반복되었다. 중간중간 진통이 없는 순간에 아침도 챙겨먹고 병원갈 가방을 준비했다.

12시쯤 진통주기가 점점 짧아짐에 병원에 갔더니 오늘 내일안에 만날 수 있을거라는 말을 들었고, 왠지 든든하게 먹어야할 것 같은 생각에 점심을 먹고 오겠다며 병원을 나섰건만 밥을 다 먹자마자 양수가 터졌다. 바로 다시 병원을 찾아 3시쯤 입원수속을 진행했다. 허리를 쥐어짜는 듯한 참을 수 없는 진통이 2~3분 간격으로 찾아오며 초산치고는 생각보다 진행이 빨라서 금방 낳을 수 있을 것 같다고 했다.

평생 어디 크게 다쳐본 적도 없어 수술이나 입원이라고는 딱히 해본 적도 없고 아픈 건 끔찍하게도 무서워하는지라 출산에 대한 두려움은 꽤나 컸다. 무수히 많은 다른 이들의 출산후기를 읽으며 나름 마음의 준비도 많이 했다고 생각했지만 실전은 또 달랐다. 생전 처음 겪어보는 진통에 아까 먹은 점심은 이미 다 토했고 몸이 벌벌 떨리는 오한에 정신이 없었다. 금방 끝날 것 같다던 출산은 마지막에 아가 머리가 걸려 3시간이 넘게 지연됐다.

“엄마가 숨 쉬어야 아가가 안 힘들어요. 엄마 눈 뜨고 정신차려야해요!”

아가를 밀어내기 위해 온 몸으로 진통을 겪어내는동안 몇 번이나 정신이 아득해짐을 느꼈다. 그때마다 간호사 선생님들의 호통 소리와 내가 호흡을 제대로 못할 때마다 느려지는 아가의 심장박동 소리에 힘을 낼 수 밖에 없었다. 도저히 못하겠다는 소리가 입밖으로 나오기 직전에서야 간호사들은 배를 눌러가며 아가를 밀어냈고, 결국 병원에 도착한 후 6시간만에 자연분만에 성공했다.

진통을 겪는 내내 옆에서 손 잡아주며 함께 힘들어했던 남편은 아가의 울음소리가 들리는 순간 같이 감격의 눈물을 흘렸다. 아가가 처음으로 내 품에 안길 때 굉장한 감동이 있을거라 기대했지만 막상 현실에서는 실감이 나지 않았다. 땀범벅이 되어버린 나는 눈물조차 날 수 없을 정도로 탈진 상태였기에 이제 끝났다는 안도감으로 멍하니 아가를 바라보는 것 밖에 할 수 없었다.

모든 상황이 종료되고 입원실에서 가족들을 만났다. 출산이라는 상상만 하던 일을 모두 겪어냈다는 사실이 스스로 대견했다. 막상 글로만 보던 과정들을 직접 경험하다보니 뭔가 짜릿한 느낌이 있었다. 몇시간 정도 회복을 하고 새벽에 신생아실에 처음으로 아가를 보러갔다. 아직 퉁퉁 불어있는 얼굴에 올망졸망 자리잡은 눈코입을 보며 엄마아빠의 모습을 찾아내기 바빴다.


아가를 보고왔는데도 사실 엄마가 되었다는게 아직 실감이 나지 않는다. 내가 엄마로서 준비가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엄마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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