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 불안, 수면장애에 시달리던 무렵이었다. 이러다가는 머지않아 내 세상이 무너지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매일을 고통스럽게 사느니 세상에서 소멸하는 것이 낫지 않나 싶은 합리적인 의심이 들었다. 날이 더워지기 시작하던 어느 날, 내가 간신히 붙들고 있던 이성의 끈마저 끊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신경정신과를 찾아갔다.
학부에서 심리학을 전공했다. 몸살에 걸리면 내과에 가듯이 마음이 아프면 정신과를 가거나 심리상담을 받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그것을 실천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조금의 편견도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막상 제 발로 정신과를 찾아간다는 것은 평균 이상의 용기가 필요했다.
이른 퇴근 후, 인터넷으로 열심히 검색하여 찾은 신촌의 정신건강의학과를 찾아갔다. 별도 예약이 필요하지 않은 곳이라는 이유로 선택했다. 별다를 바 없는 흰색의 벽, 대기 중인 두 명의 환자, 나 혼자 어색했던 접수를 거쳤다. 어떤 증상이 있냐는 간호사의 질문에 쉽게 대답하지 못했다. 내가 무엇 때문에 왔더라. 어떤 증상이 있었더라. 아 그게, 그냥 좀 마음이 아파서요.
십몇 분의 대기가 끝나고 이름이 불려졌다. 역시나 별다를 바 없는 진료실로 입장했다.
- 안녕하세요 선생님.
- 네 안녕하세요, 이 쪽으로 앉으세요. 어떤 일로 오시게 되었어요?
전혀 특별하지 않은 질문을 듣자마자 울기 시작했다. 어쩌면 환자용 의자에 엉덩이를 대기 전부터 울기 시작했는지도 모르겠다. 아닌가, 진료실 문고리를 잡을 때부터 울었나. 아니면 접수할 때부터 간호사를 마주 보며 울었었나. 눈물범벅이 되어 일관적이지 않은 호소를 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부모님 때문에 힘들어서요, 마음이 불안해서요, 그런데 잠이 오지 않고요, 집을 나가고 싶은데요, 무서운 생각이 자꾸 들어서요, 같은 떠다니는 말들.
처음 뵙는 선생님께 이 오랜 지옥에 대해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나의 고통은 십수 년의 삽화로 이루어져 있는데, 이 곳은 1차 병원이고, 진료실 밖엔 다음 환자가 기다리고 있고, 선생님과 나에게는 충분한 시간이 없고, 그래서 고해성사를 길게 할 수 없을 것만 같았다. 무엇보다 어디서부터 이야기를 시작해야 할지 몰랐다. 조리 있는 말솜씨를 자랑하던 나는 그곳에 없었다.
십여분 간 나의 울음을 경청하던 선생님은 증상을 좀 더 물어본 후 처방을 해주었다. 이 약을 먹으면 기분이 조금 나아질 거예요, 잠도 이전보단 잘 들 거예요. 우선 일주일 동안 먹어 보고, 다음 주에 다시 와서 기분이 어떤지 알려주세요.
약을 먹은 지 사흘쯤 지났다. 우울감은 미약하게 나아졌지만 불안에 차도가 있는지는 솔직히 느끼지 못했다. 여전히 매일의 퇴근길이 지옥 같았고, 귀갓길에 내가 탄 버스가 뒤집어져 버렸으면 좋겠다고 기도했다. 내가 회사에 있는 사이 지진이 나서 우리 집이 땅 속으로 꺼져 버렸으면 좋겠다고 기도한 적도 있었다. 좋은 선생님인 것 같았지만, 다시 정신과에 찾아가는 것이 나에게 맞는 선택인지 고민했다.
나는 전공자로서 심리상담이 가진 영향력에 대해 충분히 이해하고 있었다. 나의 병은 일시적인 사건으로 인해 발현된 것이 아니다. 이 오랜 어둠을 끄집어내어 뿌리를 보려면, 약이 아니라 불빛이 필요했다. 그래서 다시 정신과를 가는 대신 심리상담을 해보기로 결정했다.
심리상담은 의료행위가 아니니 보험 적용이 되지 않는다. 부족하게 살진 않았으나 높은 상담비 부담에 거뜬할 만큼 풍족한 삶도 아니었다. 우선 10회기만 해보자, 그 정도 횟수면 나의 오랜 역사를 요약하여 전달할 수 있겠지, 상담자도 어느 정도 나의 고통을 이해하겠지, 나는 어느 정도 나아질 수 있겠지. 10주 정도만 하면 좀 괜찮아질 거야.
씩씩하게 상담실을 찾아갔다. 200회기에 육박하는, 4년 간의 내담자 생활은 그렇게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