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2019년 개봉한 영화 <나이브스 아웃(Knives Out)>과 트롱프뢰유(trompe l’oeil)에 관해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트롱프뢰유는 프랑스어로 ‘눈을 속이다’라는 뜻을 가졌습니다. 관객이 실물로 착각할 정도로 정밀하고 생생하게 묘사한 그림을 의미하는데요.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과 작품 속의 세상의 경계가 사라진 것 같은 느낌을 줍니다. 트롱프뢰유는 고대 그리스에서부터 그 기원을 찾아볼 수 있는데요. 제욱시스(Zeuxis)가 그림을 덮은 막을 들추니 생생하게 그려진 포도 넝쿨이 있었어요. 마침 그 곳을 지나던 새가 포도를 먹기 위해 날아들다 그림에 부딪혀 떨어졌어요. 파라시오스(Parrhasius)는 커튼을 똑같이 그려서 제욱시스의 눈 마져 속였다고 하는 일화가 있답니다. 르네상스 시기에 이르러서는, 관객의 눈을 속이는 데 더욱 효과적인, 원근법이 본격적으로 회화에 적용되기 시작합니다. 그 덕분에 건물의 천장을 장식할 때에 무한히 높은 공간이 있는 것과 같은 환영적 그림을 그려넣기도 했어요.
<나이브스 아웃>이란 직역하면 ‘칼을 빼들다(Knives Out)’라는 이지만, 관용적으로는 ‘누군가를 해치려고 하다, 적의를 드러낸다’는 뜻으로 사용되는 말이기도 합니다. 줄거리를 살펴보면요. 베스트셀러 미스터리 작가 할란(크리스토퍼 플러머)이 85세 생일에 숨진 채 발견되고, 그의 죽음의 원인을 알아내기 위해 경찰과 사립 탐정 브누아 블랑(다니엘 블레이크)이 오게 됩니다. 할란의 생일파티에 참석했던 모든 가족을 대상으로 심문을 하지만, 모두의 알리바이가 확인되어 경찰은 자살이 맞으리라고 추측하는데요. 블랑은 누군가가 거짓말을 하고 있음을 눈치채고 수사를 멈추지 않습니다. 그 과정에서 아버지의 책을 제작하는 출판사의 사장으로 일하는 아들, 아버지에게 돈을 빌려 사업을 하는 딸, 가정부, 간병인 등 가족 사이에 숨겨져 있는 비밀들이 하나씩 펼쳐지게 됩니다. 할란은 자신의 유언장에 800억이 넘는 막대한 재산을 간병인인 마르타(아나 디 아르마스)에게 모두 상속하겠다고 하였고, 이를 들은 가족들은 신경질적으로 반응합니다. 반전이 중요한 영화다 보니, 결말은 영화를 통해 직접 확인하시기를 바랄게요.
범인은 할란의 방으로 올라가는 다른 통로를 이용해 범행을 저지르는데요. 바깥과 이루어진 비밀 창문을 이용합니다. 안에서 보면 막힌 벽에 그림이 걸려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그 벽을 당겨 열면 바깥으로 나갈 수 있는 것이지요. 그곳에는 페레 보렐 델 카소(Pere Borrell del Caso, 1835-1910)의 <비평으로부터의 탈출(Escaping Criticism)>(1874)가 걸려 있습니다. 이 작품에서 소년은 옷을 제대로 입지 않은 채로 캔버스 바깥으로 탈출하는 듯 보입니다. 그는 처음으로 현실세계를 보았기 때문에 놀란 표정이예요. 이 작품의 정확한 의미나 의도는 알려진 바 없지만, 보렐은 당대 보수적인 평론가들이 영웅을 다룬 작품 혹은 윤리적인 주제를 다룬 작품만을 칭송했던 것에 반발심을 가졌던 것 같아요. 낭만주의(Romanticism)의 이상을 쫓지 않는 대신, 보렐은 사실주의적(Realism)인 표현에 더욱 집중했습니다.
<나이브스 아웃>에서도 진짜보다 더 생생하지만 사실은 거짓으로 가득찬 것이 무엇인지 지적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할란의 가족들은 마르타를 가족처럼 여기고 잘 돌봐주겠다고 말했지만, 유산이 모두 그녀에게 가는 것을 알고는 협박을 하고 무시하는 말을 서슴지 않고 하고요. 누군가는 바람을 피우고 있지만 그렇지 않은 척을 하기도 하고요. 돈을 이중으로 받아내기 위해 거짓말을 하기도 합니다. 손자 랜섬은 그들의 집이 오랜 전통이 있는 집인 것처럼 말하지만, 30년 전에 매입한 것이고요. 또 궁지에 몰려 누군가를 칼로 찌르려고 하지만, 그 칼이 가짜 칼인 경우도 있고요. 진짜 같은 가짜.. 마치 보렐의 작품 같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