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페드로 알모도바르(Pedro Almodovar) 감독의 영화 <브로큰 임브레이스(Broken Embraces)>(2009)에 나온 미술 작품을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페드로 알모도바르 감독은 <내 어머니의 모든 것>(1999), <그녀에게>(2002), <귀향>(2006)으로 잘 알려진 스페인 영화 감독입니다. 그는 독특하고 아름다운 색감과 비범한 플롯으로 많은 주목을 받았으며, 각종 영화제에서도 상을 수상한 바 있습니다. 페넬로페 크루즈와 호흡을 맞춘 영화가 많아 혹자는 그녀를 감독의 뮤즈라 부르기도 하는데요. 이 영화 역시 주연배우로 페넬로페 크루즈가 열연하였습니다. 줄거리를 간략하게 살펴보면, 백만장자 어니스토(호세 루이즈 고메즈)의 연인으로 살고 있는 레나(페넬로페 크루즈)가 영화 감독인 마테오(루이즈 호마르)와 사랑에 빠지는, 어찌보면 뻔한 치정 막장 드라마입니다. <브로큰 임브레이스>는 14년의 시간을 앞뒤로 왔다갔다하며, 사건의 전말을 조금씩 파헤쳐 보여주는 편집 방식으로 더욱 긴장감을 이어갑니다. 토마토, 빨간 드레스, 붉은 카페트 등 강렬한 원색의 소품과 화려한 미모의 여주인공, 그리고 스페인어 특유의 억양이 더해져 세련된 분위기를 만들어냅니다.
성공한 사업가인 어니스토는 백만장자로 극중 등장하기 때문에, 그의 집 역시 화려함의 극치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 중에서도 세 점의 작품을 볼 수 있었는데요. 세 점 모두 현대미술 작품이예요! 작품이 제작된 연도순으로 나열해보면, 앙리 마티스(Henri Matisse)의 <청색 누드>(1907), 로버트 마더웰(Robert Motherwell)의 <Je t’aime No.2>(1955,) 앤디 워홀(Andy Warhol)의 <Gun>(1981-2)입니다. 세 작품은 각기 다른 시대, 다른 작가의 작품임에도 불구하고 취향의 일관성을 확인할 수 있는 부분이 있는데요. 왜 그런지 한 번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앙리 마티스는 프랑스 야수주의(Fauvism) 화가입니다. 야수주의는 20세기 초 프랑스에서 일어난 회화 운동으로, 색채의 자율적 가능성을 추구한 화가들의 일시적 결합이었다고 할 수 있어요. 이들은 색채를 대상을 묘사하는 데에 사용하지 않고, 표현적, 장식적으로 활용했어요. 다시 말해, 보이는 대로 생생하게 재현하기 위해 색을 사용한 것이 아니라, 격정, 열정, 본능 등을 표현하기 위해 색을 직관적으로 선택하고 쓴 것인데요. 특히 마티스는 강렬한 원색의 색채가 갖는 해방감을 작품 안에서 만끽했고, 자신만의 감성을 자유롭게 분출했습니다. 앙리 마티스의 <청색 누드>는 1907년 프랑스 앙데팡당전에서 대중에 처음 공개됐고, 1913년 뉴욕의 아모리쇼에 전시되면서 더욱 주목 받았습니다. 이 작품이 논란이 된 이유는 모델의 인종을 알 수 없다는 점 때문이었어요. 또한 이 작품은 조르주 브라크와 파블로 피카소에게 강한 영감을 주기도 했다고 알려져 있어요.
로버트 마더웰은 미국의 추상표현주의(Abstract Expressionism) 화가입니다. 추상표현주의는 2차 세계 대전 이후 1950년대 미국 추상회화를 일컫습니다. 형식적으로는 추상적이지만, 내용적으로는 표현주의적이라는 의미에서 사용된 단어라고 할 수 있답니다. 이는 유럽 현대미술사의 다양한 경향을 종합해 미국에서 전개된 새로운 현대미술의 흐름으로, 미국 현대미술의 독자성을 성취한 예로 평가되기도 합니다. 추상 표현주의 작가들은 작가의 내면세계를 중시하는 태도를 가지며, 추상적 형태를 강조하고, 우연한 결과를 작품으로 받아들입니다. 미술의 역사는 시간의 흐름에 따라 각기 다른 사조가 등장하며 변화하는데요. 주지주의(이성이 감정보다 우위에 있다고 생각하는 입장)와 주정주의(이성보다 감정을 중시하는 경향), 다시 말해, 이성적인 시도와 감정적인 시도가 번갈아가며 나타나는 경향이 있습니다. 마티스와 마더웰은 모두 감정의 표현에 더 치중한 것으로 볼 수 있겠지요. <Je t’aime>에서 우리는 붉은색 배경에 Je t’aime라는 프랑스어 문장을 볼 수 있어요. ‘너를 사랑해’라는 의미를 갖는 이 문장은, 그림 위에 직설적으로 새겨져있는데요. 작가에 의하면 이것은 특정 인물을 대상으로 쓴 것이 아니라, 마치 어린 아이가 사랑을 갈구하며 울부짖는 것과 같은 것으로, 내가 너를 사랑하기 때문에 나도 사랑받을 자격이 있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고 합니다. 영화에 등장하는 주인공들이 서로에게 하는 말 같기도 하지요?
마지막으로, 앤디 워홀은 팝아트(Pop Art) 작가입니다. 1960년대 미국에서는 순수미술과 대중문화의 거리감이 커지면서, 대중적 감수성에 부응하는 미술이 등장하게 됩니다. 다시 말해, 예술가들은 현실세계로 눈을 돌려 상업적, 일상적 도시환경을 작품에 도입하기 시작했어요. 일상에서 볼 수 있는 평범함과 비속함을 긍정적으로 수용한 건데요. 그 대표 작가로 앤디 워홀을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워홀은 대중적인 이미지를 가져다가 작품을 손으로 제작하는 것이 아닌, 실크스크린을 이용해 작품을 반복적으로 찍어냈어요. 창작의 고유성을 전면 부정하고, 비개성적인 작품을 의도적으로 만든 것이지요. 이제 미술 작품은 개인의 독자적 창조 행위가 아니라 기계 복제의 산물임을 드러냈어요. 영화에 등장한 <Gun>은 총의 형상을 가져다가 찍어낸 작품입니다. 미국에서는 개인의 안전을 위해 많은 사람들이 총기를 소지하고 있고, 또한 총은 비디오 게임이나 영화 산업을 통해 매력적으로 묘사되기도 합니다. 워홀은 ‘죽음’을 주제로 한 작품을 다수 제작했어요. 워홀은 1968년 실제로 총에 맞아 심하게 다친 적이 있어요. 총의 의미를 개인사적, 사회적 맥락에서 짚어볼 수 있겠지만, 워홀의 작품에서 총은 캠벨 수프캔, 마릴린 먼로, 코카콜라 등 미국적 아이콘으로 사용된 것입니다. 이 영화에서는 누군가의 죽음을 암시하는 메타포로 기능하는 것 같기도 합니다.
영화에 등장한 세 작품은 강렬한 색채를 활용하고 있다는 점에서 공통점을 갖습니다. 감정의 표출이 두드러지는 이 작품들은 집착적인 사랑은 필연적으로 죽음과 맞닿아있음을 보여주고 있는 듯합니다. 작품의 의미에 관해 생각해보시면서 영화를 한 번 감상해보시는 것은 어떨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