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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라보라 Dec 02. 2021

만남은 쉽고 이별은 어려워.

감사합니다. 선생님♥


2021.11.30. 화.


오늘따라 강풍이 불어 수업이 끝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평소보다 서둘러 집으로 돌아왔다.

미술 가방을 내려놓고 씻고 정리하자 갑자기 마음이 허하게 느껴졌다.

나 혼자도 아니고 치즈군이 집에도 있는데도 말이다.

마치 가수가 화려한 무대를 끝내고 집으로 돌아왔을 때 느끼는 공허함이 이런 게 아닐까..


오늘은 6월 1일부터 배운 주 1회 미술 수업 마지막 날이었다.

몇 달을 매주 화요일마다 만나 귀로는 잔잔한 라디오를 들으며 손으로는 자유롭게 그림 그렸다.

그리고 틈나는 대로 마스크 속 수다를 떨며 선생님과 다른 수강생들과 친해졌다.

이제 익숙함에 물들어 가는데 마지막 수업이었다.


내년 1월에 공지가 나오면 2월쯤 수업이 시작될 거라 하니..

참 아이러니하게도 벌써 12월이 왔다고 한 달밖에 남지 않은 지금이 아쉽다 생각했는데 그새 얼른 내년이 왔으면 하는 바람에 부는 갈대보다 더 흔들리는 마음이 들었다.


그림 감상을 좋아하지만 심오하지 않고 그냥 딱 보통의 사람으로 그림에 대한 혼자만의 해석으로 즐거웠다.

그러다 미술 수업을 통해 내가 직접 그리고, 보이는 대로 자유롭게 표현하는 것에 대해 배웠다.

입시 미술도 아니고 노년에 그림 그리는 할머니가 되고 싶다는 생각으로 시작한 미술이었는데 우리 선생님이 정말 딱 그렇게 가르쳐 주셨다.


열심히 하려고 하지 마세요.

슬렁슬렁하고 싶을 때 그리는 게 제일 좋아요.

이까짓것 망치면 어때요? 세상이 무너지는 것도 아닌데 손 가는 대로 그려요.

망치는 건 없어요. 다르게 표현된 거지.

그리고 싶을 때 그림을 그리는 사람이 되면 우린 성공한 거예요.


이런 말씀이 내게는 너무 좋았다.

나와 관계되는 모든 것에 연결된 팽팽한 고무줄이 혹시나 끊어질까, 혹시 느슨해질까 당기고 또는 풀어주기 바빴던 내게 미술 수업 시간만큼은 다 잊고 뭐든 괜찮다고 하는 것 같았다.

낡은 책장, 여름 시골 풍경, 포도 한 송이, 사람 등을 그릴 때 주제와 관련된 기억이나 상상에 빠져 행복했다.

또, 그림을 그릴수록 내가 그리고 싶은 소재가 점점 늘어나 우선순위를 매겨 그려야 할 정도였다.




붙임성 부족한 내가 첫 수업을 듣고 집에 돌아와 치즈군에게 말했다.

"선생님 너무 좋아 딱 내 스타일이야! 이 수업 계속 들을 거야!"


치즈군도 이런 날 응원해 줬고 매주 화요일마다 뚝딱 저녁 식사를 차려주고 뒷정리도 해줬다.

수업에 늦지 않게 내조해 준 치즈군에게도 다시 한번 고맙다.

매번 수업이 끝나고 오면 오늘은 어떤 그림을 그렸는지 봐주고 멋지다, 잘 그렸다, 이건 그리기 싫은 주제였나 보다 그림만으로도 내 기분까지 체크해 주고, 한두 마디씩 해주는 코멘트도 기분 좋았다.




내게 그런 의미가 있는 미술 수업이 올해 끝났다는 게 사실 실감이 안 났다.

하지만 수업 시간이 다가오자 선생님께 어떻게 감사의 표시를 해야 할까 고민하게 되었고, 결국 나는 꽃다발을 준비했다.

학교 졸업 이후 은사님에게 꽃다발을 드린 게 얼마 만인지..

꽃다발을 준비하는 내 마음이 오히려 행복했다.



수업 시작 전 선생님께 꽃다발과 감사의 인사를 전달했다.

깜짝 선물에 놀라워하시며 몇백 년 만에 꽃다발 받는다고 너무 좋아해 주셨다.

마지막 수업은 의미 있게 꽃다발을 안고 수업해야 하는 거 아니냐고 좋아해 주셔서 덩달아 내 기분도 좋았다.


내년 수업 전까지 공백 기간에 선생님 화실에 와서 그림 그려도 된다고 하셔서 다른 수강생들과 시간을 정해서 가보고 싶다.

또, 우리가 전시했던 모지리 카페에서 차 한잔하며 그림 그리고 싶기도 하다.


오늘 마지막 수업은 지난주부터 그렸던 그림으로 마무리했다.



지난겨울 조카들 사진을 보고 색연필로 그렸다.


이 그림은 연말에 조카들에게 보여줄 생각에 들뜨기도 하다.


선생님 감사해요.

선생님 덕분에 그림이 재밌어졌어요.

그림을 못 그려도 잘했다 칭찬해 주시고, 선생님과 친구처럼 나눈 사소한 이야기도 재미있었고, 오늘 하루 힘들었다는 말에도 가엽게 세상 별거 없다 말씀 많이 해주셨는데 그 모든 게 좋았어요. 선생님.

잘 가르쳐주셔 감사드리고, 내년에도 잘 가르쳐 주세요.


선생님과 잠시 이별하고 내년에 만나야겠지만 자꾸 이 노래가 생각난다.

만남은 쉽고 이별은 참 어려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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