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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라보라 Mar 11. 2022

낙첨 없는 자매


월요일 새벽.

맞춰놓은 알람이 울리기 몇 분 전 나는 잠이 깨고 있었다.

'아.. 월요일이지! 업무가 뭐가 있더라.. 견적서 요청한 게 2곳, 인증서 갱신이 있고.. 입고 한 건이 예정이고..'

무슨 꿈을 꿨는지 기억도 나지 않지만 어렴풋이 잠에서 깨어나면서 난 업무 생각으로 깜짝 놀랐다.


가끔 업무 스트레스가 심하면 일요일 밤에 내일 할 일을 미리 순서를 정하기도 하는데..

월요일 잠에서 깨어나면서 떠오른 업무들은 정말 주말 내내 잊고 있었다는 사실에 더 놀라웠다.


정말 신났던 토요일 밤 우리 세 자매의 일탈.


요즘 주말마다 집콕이었다.

공원 산책이나 쇼핑을 하더라도 거의 2시간 내외로 움직였고, 차를 움직이지도 않았고..

특별한 일은 없었지만 편안함이 지속되는 느낌 속 조금 나른함이 밀려오고 있었다.


그런데 한 달 만에 올라온 막내 동생과 만난 우리 세 자매.

일요일 출근을 해야 한다는 막내 동생은 금요일 밤에 올라와 토요일 이것저것 할 일을 하고 저녁에는 내려갈 계획이었다. 그래서 우리 세 자매의 티타임 시간도 겨우 잡았다.

하지만 그 티타임도 작은 조카가 낮잠을 안 자는 바람에 아까운 시간은 뒤로 밀려났고..

막내 동생이 내려가기 바로 직전 30분 정도 티타임을 위해 우리 집 근처 커피숍으로 갔다.


가족이 모두 함께 있을 때와 자매끼리 있을 때 대화의 주제가 달라진다.

일에 대한 이야기 또는 연애사나 부부 싸움에 대해도 마음 터놓고 이야기를 하기 때문이다.


30분 수다는 타임워치를 켜놓은 것처럼 긴박했고 아주 타이트했다.

아쉽게 마무리하고 막내 동생이 이제 출발하려고 하는데..

누가 먼저라 할 틈도 없이 말이 나왔다.


"우리도 너랑 같이 내려갈까? 너 일요일에 출근할 때 우리도 부천으로 올라오면 되잖아."

"언니들이 괜찮다면 나는 상관없어. 형부들을 설득할 수 있겠어?"


바로 나와 둘째는 각자 통화를 시작했다.

결국 우리 셋은 커피숍을 나와 맨몸으로 신나게 막내 동생 집으로 향했다.

고속도로를 달리는데 뻥뻥 뚫린 도로만큼 내 마음도 아주 시원했고 뭔가 콩닥거리며 들떴다.


드디어 도착한 막내 동생 집.

우리는 미리 찾아놓은 식당으로 바로 향했고, 식당을 향해 가는 길 복권방이 보였다.


"언니 저기 1등 많이 나와서 유명한 곳인데 해볼래?"

"하자!! 혹시 알아!!"

"뭐라도 당첨되면 한턱 쏘는 거야!"


신나게 복권방에 들어가 우린 각자 3장씩 로또를 샀다.

그게 뭐라고 또 세 자매 의미 부여해서 3장씩 산 것 같지만 그건 아니다.


식당에 도착한 후 허기진 배를 채우기 시작했고, 우리의 즐거운 수다가 시작됐다.

못 본 사이 우리의 긴 이야기는 술술 나왔다.

막내 동생의 한 달간 파견 업무 했던 이야기, 둘째 동생의 육아 생활, 그리고 마음의 응어리.

나 역시 그사이 엉망이 되어버린 내 계획과 지금 뭔가 하고 있는데 잘하고 있는지 불안한 마음까지 모두 털어놨다.




오래간만에 마시는 소주는 아주 달고 시원했다. ^^

그 틈에 우리는 로또 번호를 확인했는데 어쩜 다들 똥 손인지..



자동 2개, 직접 선택 1개였는데 직접 선택에서는 하나도 맞춘 게 없다.



셋 중 맞춘 숫자가 제일 많은 사람이 나라니.. 꽝이면 어때~이것 역시 추억이지.


우리의 그 회포는 2차로 막내 동생 집으로 가서 진행했다.

여자 셋의 대화는 정말 풀어도 풀어도 끝이 없다.


누군가 말하길.

"여자들 대화에 정작 중요한 말은 없다."


이날 우리의 이야기도 중요한 것이었는지, 아니었는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얼마 만에 느껴본 해방감. 자유로움. 그리고 내일에 대한 아무런 생각이 없었다.

마치, 내일을 생각할 틈이 어딨어? 지금 즐겁잖아~ 이런 생각이었다.

그냥 지금 이 순간 우리가 함께 이렇게 술잔을 부딪히며 서로의 고민을 말하고 응원해 주고 있다는 사실이 너무 좋았다.


토요일 밤새 떠들다 새벽 2시쯤 잠들어 일요일 아침 7시에 일어났지만 몸이 전혀 찌뿌둥하지 않았다.

예전에 친정 아빠는 시골을 다녀오시면 꼭 이런 말씀을 하셨다.

"내 고향이라서가 아니라 시골이 정말 공기가 좋아~ 거기서는 술을 많이 마셔도 다음날 힘들지가 않아."

아빠의 믿을 수 없는 맑은 공기 핑계를 이제 이해하겠다.

맑은 공기가 아니라 그 순간 함께한 이들에 대한 편안함과 즐거움으로 몸의 피로도 이겨낸 거 아니었을까.


아.. 세 자매의 회포.

갑작스러운 일탈.


월요일에 만난 친정 아빠는 날 보자마자 말씀하셨다.

"이 정신 나간 녀석들아~ 일요일에 언제 왔어?"

내가 아주 환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아빠, 가끔 이렇게 무계획으로 정신 나간 것처럼 노는 일탈도 필요한 거야. 우리 아주 신났었어. 좋았어."

나의 명쾌하고 신난 대답에 아빠도 웃으며 말씀하셨다.

"아이고야. 정신 나간 녀석들아~ "


나이가 들수록 정말 동생들과 마음 터놓고 이야기할 수 있어 감사하다.

평소 서로 놀려먹고 당하고 엎치락뒤치락하는 우리 세 자매.

부모님께 감사하다. 이런 피붙이를 우리에게 선물해 주셔서.

다음에 또 어느 틈에 우린 일탈을 꿈꿀지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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