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brunch
매거진
보통 부부 일기
잘 알지도 못하면서.
by
보라보라
May 20. 2021
지난 금요일은 하루 종일 더웠다.
일기예보에서 말한 이른 더위가 이거구나 싶을 정도로 하루 종일 반팔로 움직였던 날이다.
그리고 다음날 드디어 내 돈으로 첫 에어컨을 구입해 설치한 날이다.
우리의 첫 신혼집에서는 벽걸이 에어컨을 사용했다.
친정에서 동생들이 쓰던 구입 한 지 얼마 안 된 벽걸이 에어컨이 내 첫 집으로 들어왔던 것이다.
에너지 효율도 좋고 그사이 고장 한번 난적 없이 잘 썼지만 작년에 새 집으로 이사 오면서 그 녀석을 다시 설치하기에는 무리인 것 같아 새로 구입하기로 했었다.
작년 9월 이사라 에어컨으로 21년형 신형으로 구입하겠노라 생각하고 자리만 빼놓고 지내다 벌써 봄을 맞이한 것이었다.
3월부터 에어컨 동향을 살펴보다 보니 예쁜 디자인 에어컨은 가격이 너무 비싸 이리저리 고민하다 가성비 갑인 W사 에어컨 2 IN 1을 4월에 구입했다.
기존에 썼던 에어컨이 W 사라서 기능에 대한 걱정도 없었고, 시기상 이른 구매라 가격도 많이 할인을 받아 기분 좋게 구입했다.
한 달 먼저 구입한 에어컨을 드디어 5월 15일 설치를 진행한 것이다.
집 리모델링을 할 때 기존 에어컨 자리를 살려두었기에 별다른 타공도 필요 없어 조용하게 설치될 거라 믿었다. 하지만 내가 생각하지 못한 문제가 생겨버렸다.
설치 기사님에게 설치 전날 연락이 왔고, 기사님은 에어컨 설치하는 날 비 소식이 있고 우리 집이 고층이라 제일 먼저 작업하는 게 좋을 것 같다고 해서 아침 8시 30분으로 약속을 했다. 그리고 타공이 되어 있으니 시끄럽지 않게 작업이 될 거라고 했다.
그런데 그날 기사님은 더 빨리 도착했다고 하시면서 우리 집에 8시에 오셨다.
전날 무슨 일인지 모르겠으나 밤잠을 설쳐 피곤하고 컨디션이 좋지 않았지만 부랴부랴 그들을 맞이했다.
작업이 시작된 시간은 정확히 8시 30분.
그런데 갑자기 안방에서 드릴 소리가 나는 거다.
놀라서 기사님에게 벽을 또 뚫으냐고 여쭙자, 벽걸이 에어컨을 매달려면 어쩔 수 없다는 말씀을 하셨다.
맞다.. 벽걸이 에어컨이 어떻게 매달려 있겠는가..
첫 번째 집 에어컨 설치 때 내가 없었기에 난 그 생각은 전혀 못했고, 에어컨 배관 타공된 것만 생각한 것이다.
그사이 고민을 했다.
지금이라도 당장 위 아랫집에 가서 상황을 말해야 하는 게 아닌가.
몇 분 후 관리사무소 직원이 우리 집에 올라왔다.
그분은 문이 열린 것을 보고 그냥 들어와 에어컨 기사님에게 토요일 이른 오전에 무슨 공사냐고 다짜고짜 화를 냈다.
서재에서 고민하고 있던 우리 부부는 당황해서 거실로 나왔고, 그제야 그 직원이 상황을 이야기했다.
그래서 설치 기사님이 사과를 하고, 관리실 직원에게 혹시 어느 집이냐고 묻자 윗집이라고 했다.
잠깐 고민한 사이 예상대로 일이 터진 것이다.
결국 관리실 직원을 보내고 윗집과 아랫집에 잠옷에 카디건만 챙겨 입고 방문을 했다.
리모델링 건으로 미리 인사를 해 놓은 터라 인사를 가는 게 어려운 일은 아니었으나, 이른 시간이고 또 차림이 실례였지만 어쩔 수 없어 초인종을 눌렀다.
그리고 상황을 설명하고 벽걸이 에어컨 설치로 시끄럽게 되었고, 이 부분을 사전에 알지 못했고 그래서 미리 인사도 못했고, 알았더라면 시간을 늦출 걸 그랬다고 사과의 말씀을 전달했다.
다행히 관리사무소에 민원을 넣을 때와는 달리 우리가 직접 상황을 설명하자 위 아랫집은 모두 이해해 주셨다. 너그럽게 이해해 주는 이웃을 만난 게 다행이다는 생각도 들고 평소 인사하고 지냈기에 덕을 본 게 아닌가 싶기도 했다.
위아래 집을 다녀온 후 설치 기사님들도 죄송하다고 말했다.
드릴 작업이 몇 번은 있는데 그 말씀을 공지하지 못해서 이렇게 되었다고 하시니.. 그분들도 비 온다고 하니 급한 마음에 그러시지 않았나 싶기도 하고.. 나도 미쳐 생각 못 한 점이고 이미 일어난 일이기에 잘 마무리해달라고 했다.
나도 잘 알지도 못하면서 비가 오기 전 설치를 해야 한다는 생각에 소음 생각은 고려하지 못했던 거니..
2시간의 작업 후 우리 집에 드디어 에어컨이 설치되었다.
내 돈 내산 첫 2 IN 1 에어컨 설치에 감격해서 가족들 단톡방에 사진을 공유했다.
생각해 보니 우리 집에서 내가 제일 늦게 내 돈 내산 에어컨을 했기에 그 또한 가족들과 이야기하며 축하한다 등 하하 호호 에어컨 설치를 하면서 일어난 해프닝을 이야기했다.
설치 완료된 에어컨! 벽걸이가 어찌 벽에 붙어있는지 왜 몰랐을까.
이후 집안을 정리하고 상황도 모두 정리해 보니.. 갑자기 관리사무소 직원의 행동에 의문이 들었다.
이른 시간 민원으로 관리사무소 직원의 입장을 이해한다.
하지만 엄연히 남의 집에 방문을 했는데 거실에서 일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바로 따진 것이다.
남의 집에 들어왔으면 "관리사무소에서 나왔습니다. 세대주님 계시나요?"라고 먼저 말해야 했던 거 아닌가.
그분도 경황이 없어서 그랬겠지만.. 설치 기사님들에게 다짜고짜 화를 내신 것도 너무 한 게 아니었나 싶은 생각도 들고.. 하지만 우선 토요일 아침 8시 30분에 드릴질을 한건 우리가 무조건 잘못한 행동이니 뭐라 말할 수도 없는 상황이지 싶다.
에어컨 설치 후 낮 12시부터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다행이다 싶었다. 미리 안전하게 설치되어서.. 그래서 이 해프닝도 평생 잊지 못할 것 같다.
에어컨 설치 처음 해본다고 티 내듯, 잠옷 차림으로 사과를 하고 다닐 줄이야.
지나고 나니 잘 알지도 못한 사람티가 팍팍 난다.
다음부터는 이런 설치가 있다면 설치기사님에게 시끄러운 상황은 없는지 미리 점검을 필수로 해야겠다.
keyword
에어컨설치
이사
소음
17
댓글
1
댓글
1
댓글 더보기
브런치에 로그인하고 댓글을 입력해보세요!
보라보라
직업
에세이스트
다행이다 엄마가 내 엄마라서
저자
사랑꾼 치즈군의 아내이자 부부 종합상사를 꿈꾸는 공동 사장. 글보다 숫자가 좋았지만 이제 글이 더 좋아졌다. "다행이다. 엄마가 내 엄마라서" 책 저자.
구독자
101
제안하기
구독
매거진의 이전글
융통성이 필요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