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넷플릭스에서 <동백꽃 필 무렵>을 보기 시작했다.
한참 방영 중에는 타이밍을 놓쳐서 뒷부분만 보고 까불이가 누구인지 엔딩이 어떤지 알지만 앞부분을 잘 몰라서 정주행 중이다.
극 중 황용식이가 소장에게 훈계를 듣는 장면에서 이런 대사가 나온다.
소장 : 너 아이언맨과 헐크의 가장 큰 차이가 뭔 줄 알아? , 유도리여.
아이언맨은 유도리가 있으니께 명품 빼입고 사는 거고, 헐크는 그게 없으니께 헐벗고 다니는 거라고. 마! 우리도 유도리 있게 가야지!
황용식 : 아우 유도리가 아니고 융통성이여 융통성.
이 대사를 듣는데 아이언맨의 슈트와 헐크의 항상 찢어진 옷 사이로 드러나는 초록색 상의가 생각났다.
와.. 이 둘의 옷차림으로 이런 대사가 나오다니, 이런 정곡을 찌르는 이유가 나올 줄이야..
전혀 생각 못 했던 둘의 차이점이다. 아이언맨을 좋아만 했지 헐벗은 헐크의 옷이 없다는 것에는 관심을 두지 않았던 것이다.
드라마에서 이 융통성이라는 단어를 들은 지 얼마나 되었다고.. 난 융통성이 부족한 사람인가 싶다.
월요일 아침 난 기분 좋게 식빵에 꿀을 발라 그 위 치즈를 얹어 전자레인지로 가열한 후 치즈가 녹은 따뜻한 식빵을 반으로 접어 은박 호일로 얼른 포장했다. 아침 식사를 잘 챙기지 않지만 그날따라 전날 먹고 남은 식빵이 보여서 나름 시간적 여유도 있어서 해본 사치스러운 행동이었다.
아침에 빵 먹는 걸 썩 좋아하지 않는 치즈군이지만 두 개를 만들어 출근했다.
그리고 난 따뜻할 때 먹자고 사무실 오픈 후 커피와 함께 아침 식사를 간단히 했다.
뒤늦게 식사에 합류한 치즈군은 식빵을 먹으면서 약간 갸우뚱하는 표정을 보고 난 맛있는데 맛이 없나라는 생각도 했고, 치즈군이 "꿀이 너무 많이 들어간 것 같아."라고 한 번 더 쐐기를 박길래 '오늘 식빵은 내 것만 할 걸 잘못했나 보네.'라고 생각했다.
이후 오전 11시쯤부터 치즈군이 몸 상태가 좋지 않다고 안에서 가스가 차오르고 몸이 아프다고 했다.
체했나 생각하고 얼른 약국에 다녀오라 했다. 이후 간단한 점심 식사를 했고 그는 호전되기보다 몸이 아프다고 해서 혹시나 오한이 오는 건가 싶어서 걱정되었다.
하지만 일은 오전보다 오후에 밀려오기 시작했다.
그래서 얼른 마무리하고 먼저 퇴근하라는 생각도 못 하고 내가 치즈군을 도와 얼른 마무리 짓게 해야겠다고만 생각했다.
그러다 마지막 업무에는 치즈군이 한마디 했다. "급한 게 아니면 내일로 미뤄줘."
아차 싶었다. 내 생각이 짧았구나. 급한 게 아니면 내일로 미루는 게 맞는데 말이다.
그래서 이후 업무에 대해서는 다음날 오전으로 미루었다. 하지만 정작 미뤄진 업무는 딱 한 건이었다.
그사이 치즈군의 상태는 점점 안 좋아지고, 결국 퇴근을 평소보다 십분 일찍 하고 병원을 들렸다가 퇴근했다.
체한 것 같긴 한데 그걸로 오한과 근육통이 온 것 같다고 해서 집에서 얼른 그를 쉬게 하는 수밖에 없었다.
밤새 끙끙 거리를 그를 보며 아침에 빵을 안 좋아하는 그에게 식빵을 권한 것, 일을 쉴 틈 없이 계속 준 것, 쉬게 할 생각을 못 한 것 이런저런 나의 행동들을 돌아보며 아.. 내가 이렇게 일이 더 중요했나.. 융통성이라곤 없네라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다음날 전날의 흐린 날씨가 아닌 화창한 날씨가 너무 반가웠다.
또, 새벽에 일어나 그의 상태를 확인하니 체온은 내려갔고 곤히 잠든 것 같아서 안심이 되었다.
다시 컨디션을 회복한 치즈군을 보니 이제야 마음이 놓였고, 고마웠다.
화창한 햇살 사이 출근하면서 그에게 말했다.
"화창한 해가 나온 것처럼 자기도 얼른 회복해 줘서 다행이야. 고마워. "
"나도 혹시나 다음날도 아프면 어쩌지 걱정했는데 새벽이 되니깐 몸이 편해지더라고. 전날 흐리고 오늘 화창한 것처럼 나도 언제 그랬나 싶을 정도로 지금 편해. 다행이지. "
"내가 융통성 있게 일도 미뤄주고 빨리 병원을 가게 하거나 퇴근하게 했어야 했는데 미안해. 건강이 일보다 중요한데 또 바보처럼 행동했어. 다음에는 혹시나 이런 일이 생기면 그때는 내가 꼭 자기를 먼저 챙길게. "
"괜찮아. 근데 다음에는 융통성을 꼭 발휘해 주길 바라. "
치즈군이 많이 서운했던 모양이다.
하긴, 아픈데 그것도 모르고 그냥 일을 계속했으니..
용식의 "융통성"이라 하는 대사가 귓가에 맴돈다.
아.. 이놈의 융통성 없는 인간 같으니..
미안합니다. 서방님.
융통성 없는 부인이라.. 융통성도 겸비한 부인이 되도록 노력할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