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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이 아닌 셋이면 어떨까 하는 상상을 경험했다.

by 보라보라


큰 조카 범이가 오늘은 어린이집이 끝나고 미술 학원에 가는 날이다.

작은 조카 연이의 하원 시간과 스케줄이 맞지 않아 오늘은 내가 작은 조카를 집으로 데리고 가기로 했다.

미리 하원해서 친정에서 놀다가 집으로 가기 위해 주차장에 내려온 모습이 너무 사랑스러워 얼른 가서 안아줬다.

“우리 연이 오늘도 이쁘네~.” 인사하며 치즈군과 함께 셋이 집으로 향했다.


그리고 1층 동생네에 들렸더니 범이 친구가 집에 와서 같이 놀고 있었다.

동생이 무척 바빠 보여 내가 말했다. “연이는 우리 집에서 밥 먹고 내려보낼게.”

동생이 반가운 소리였는지 흔쾌히 대답했다. “그래도 돼. 언니~”


그래서 치즈군과 나 그리고 연이는 함께 우리 집으로 올라왔다.

치즈군은 연이를 위해 볶음밥과 콩나물국과 무침, 그리고 소시지까지 구웠다.

그사이 나는 연이의 배고픔이 생각나지 않도록 열심히 놀아줬다.


드디어 완성된 저녁 식사.

평소 우리 부부만 앉아서 먹던 식탁에 연이까지 앉아 셋이 식사를 하기 시작했다.


SE-e42d9c8d-710d-11eb-bcb8-bf18cbcf17d3.jpg?type=w1 연이랑 함께한 저녁식사.


나는 연이를 챙기기 바빴고, 연이는 새로운 식기에 적응하지 못한 듯 약간의 어색한 표정도 지으면 맛있게 밥을 먹기 시작했다.

하지만 4살짜리 아이이기에 국물에 옷이 젖기도 하고 밥이 잘 안 떠지기도 하고 흘리기도 하고 그 와중에 물을 마시기도 하고.. 난 혼이 빠졌다.

그래도 배고픔이 혼을 이겼는지 그사이 틈틈이 내 굶주린 배를 채웠다.


밥 잘 먹은 연이에게 디저트를 챙겨주며 어린이 만화를 보는 사이, 치즈군이 설거지까지 했다.

둘이서만 저녁 식사하던 풍경과는 사뭇 달랐다.

정신없었지만 생기는 넘쳤다고 해야 할까.


우리 부부는 연이와 디저트까지 다 챙겨 먹고 조금 놀다가 얼른 연이를 1층으로 데려다줬다.

그리고 내려온 김에 마트를 걸어가며 치즈군이 말했다.


“애 한 명이 아주 혼을 쏙 빼네. 혹시나 안 먹을까 봐 신경 썼더니 나도 저녁을 어디로 먹었는지 모르겠다. ”

“그러게. 나도 배고픔에 먹긴 했는데 어떻게 먹었는지는 잘 모르겠어. 아휴 힘들어.”


“애 한 명 밥 챙겨 먹기도 이렇게 힘들 줄이야. 부부가 역할 분담이 잘 돼야지 안 그럼 정말 부부 싸움하겠어. 누구만 독박 육아하냐는 말이 나오는 게 당연한 것 같아. ”

“그러게. 우리가 조카를 잠깐만 봐서 몰랐는데 어렵다. 엄청 힘든 저녁 식사였어. ”


“근데 기분이 묘했어. 만약 우리가 세 가족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더라. ”

“그래? 난 생각만 해도 너무 힘들 것 같아. 내가 젊은것도 아니고.”

“연이랑 셋이 밥 먹었다고 별생각을 다 하게 된 듯.”

“이제부터 애 데리고 단독으로 밥 먹겠다는 말은 절대 안 할 거야.”

ㅋㅋㅋㅋㅋㅋㅋㅋㅋ


두 식구보다는 세 식구, 네 식구가 더 생기발랄하겠지만, 그냥 지금 평온한 두 식구도 난 괜찮은 것 같다는 생각이 더 들었다.

가까이 사는 조카들과 잠깐씩 보는 것도 일상의 기쁨이라 둘이 아닌 그 이상의 가족을 상상하니 좀 버거울 것 같다는 생각..

본의 아니게 딩크족처럼 산지 9년 차에 상상을 경험해 보니 순간 정전기에 손이 따끔해진 기분 같다.


연아 이모가 당분간 간식은 챙겨줘도 밥은 좀 더 크면 같이 먹자~.

너도 오늘 이모랑 이모부랑 밥 먹은 거 기억해 주면 좋겠다.


SE-5c9ae357-710d-11eb-9acd-2970a5a48c92.jpg?type=w1 춥지만 쾌청한 밤하늘이 예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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