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 나는 엄마가 부엌에서 일하시는 소리가 들리면 상차림을 도와드리거나 식사 후 설거지를 했다.
대신, 음식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에 대한 궁금증은 없었다.
마치 엄마는 나의 전속 요리사고 나는 맛있게 먹는 게 엄마에게 제일 좋은 거라 생각했었다.
그래서 요리는 거의 관심 밖이었다.
그러다 결혼을 앞두고 치즈군에게 고백했다.
"난 밥은 밥솥이 해주니깐 할 수 있고, 라면은 잘 끓여. 근데 계란 프라이는 해도 계란말이는 잘 못 만들어. 그나마 잘하는 건.. 김치 참치 볶음밥이야. 이건 우리 세 자매가 휴일에 간편식으로 자주 먹던 거라 할 줄 알아."
치즈군은 웃으며 말했다.
"괜찮아, 내가 요리 좋아해. 난 어릴 적부터 내가 요리해서 먹었어. 대신 난 설거지 싫어하니깐 자기가 해줘."
"아.. 다행이다. 난 오히려 설거지가 편해."
그때 철렁한 가슴을 쓸어내렸다.
신혼 초 우리 집 요리는 당연히 치즈군이 담당했다.
또, 출퇴근 거리가 먼 덕분에 나는 몸은 힘들었지만 요리를 담당하지 않는다는 생각에 편하기도 했다.
퇴근길에 나는 그에게 출발을 알리면 그는 내게 오늘 저녁 메뉴에 대해 말해줬다.
"오늘은 김치찌개 먹을 거야. 조심히 와."
"와~! 맛있겠다~! 얼른 갈게."
그러다 내가 1년간 백수 생활을 한 적이 있다.
그때 자연스레 요리사가 바뀌었다.
결혼 후 주말에는 가끔 요리를 했지만 그 요리는 간단한 거라 어려움이 없었다.
그런데 저녁식사를 내가 전체 다 준비해야 한다는 압박감이 심했다.
마음은 서두르지만, 손도 서투르고 어떤 재료들의 조합이 이뤄주는 맛인지 몰랐다.
치즈군이 뚝딱 요리를 만들던 부엌이 무척 좁게 느껴졌고 그릇도 부족하고 조미료도 부족하고 하..
요리에 요자도 모르는 사람인지라 하루하루 끼니가 걱정이 될 정도였다.
그리고 노력한 만큼 맛있지도 않았고 시간은 많이 투자해야 했다.
콩나물국을 준비했는데 갈색 콩나물국이었다.
소고기 뭇국을 준비했는데 평소보다 더 시커먼 소고기 뭇국을 완성했다.
물엿을 넣은 멸치조림을 한다고 했는데 멸치 강정이 되었다.
고추장찌개라고 했는데 떡볶이 양념 준비 전 단계처럼 붉은 국물을 만들었지만 쫄지 않은 국물을 준비한 것 같았다.
치즈군은 도저히 안 되겠다 생각했는지 어느 날부터 요리 중간에 거들어주기 시작했다.
조금씩 요리하는 시간이 단축되었고, 옆에 잘하는 사람이 있어서 요리하는 부담이 줄었다.
그리고 요리에 아주 조금 재미를 붙이기 시작했다.
그러자 나의 백수 생활은 끝이 났다.
이후 치즈군과 나는 같이 요리를 하기 시작했다.
이쯤 되면 다들 예상하듯 메인 셰프는 치즈군 나는 주방 보조 역할이다.
지금도 변함없이 치즈군이 맛있는 저녁 식사를 준비해 준다.
그럼 나는 황송한 나머지 맛있다는 리액션이 절로 나온다.
"와~ 국물이 정말 시원하다~", "엄마 음식이 생각 안 나!" "울 엄마꺼보다 더 맛있다."
"지난번보다 훨씬 맛있다." "식당에서 웰던 스테이크를 먹느니, 울 신랑이 해주는 미디엄 스테이크가 더 맛있다."
칭찬은 고래를 춤추게 하듯, 난 리액션과 주방 보조 역할로 치즈군을 메인 셰프로 만들었다.
그리고 나도 서당개 3년은 넘긴 짬밥 있는 주방 보조라서 조금은 요리 실력이 늘었다.
그래서 나는 남편의 요리를 먹으며 산다.
그사이 나도 점점 요리 실력이 늘고 있으니 둘 다 윈윈 아닌가 싶다.
너무 이기적인가 ^^
P.S 엄마와 이런 대화를 한 적이 있다.
"요리 못해서 사위가 해주고, 깔끔해서 청소도 사위가 해주고, 난 네가 제일 부럽다. "
"엄마. 엄마는 너무 잘해서 그래. 엄마는 다 잘하잖아. 그러니깐 아빠가 하나도 안 도와준 거야."
"그러게. 엄마도 못하는 건 못한다고 말할 걸 그랬어. 속 편하게 산다 우리 딸."
ㅋㅋㅋㅋㅋㅋㅋㅋㅋ
엄마가 보기엔 딸내미가 아주 속 편하게 사는 것 같지만, 나름의 고충이 있다는 점.
그래도 엄마에게 큰딸은 속 편하게 잘 산다고 생각하게 한 게 더 효도하는 길이 아닐까 나름 해석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