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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더 독한가.

by 보라보라

사건의 시작은 내 입에서 시작되었다.

퇴근 후 배고픔에 급하게 이것저것 준비한 저녁식사가 생각보다 너무 맛있었다.

치즈군과 나는 서로 배부르다 이야기하면서 내가 먼저 말을 꺼냈다.


"어제 무리해서 걷기 운동했으니깐 오늘은 쉬자고 하려고 했는데 너무 많이 먹어서 운동 가야겠다."

"자기야 그럼 쉬어. 나 혼자 다녀올게."


"안돼! 나도 살 빼야 해! 혼자만 빼시겠다~."

"아니 자기는 힘들다 하니깐, 그리고 난 건강 때문에 하는 거지."

(3개월 전 치즈군이 갑자기 당뇨 진단을 받을 뻔한 간담 서늘한 경험을 말하는 것임.)


"아냐. 나도 이번에 건강 검진하면 살 많이 쪄서 <고도 비만>이라고 나올 것 같아. 운동 갈래."


이후 우리는 식사를 마무리하고 음식을 준비한 치즈군은 쉬고, 난 설거지를 시작했다.

그런데 갑자기 치즈군이 무슨 말을 했다가 말 끝에 넘지 말아야 할 선을 넘었다.


"그래. 이 고도 비만 아줌씨."


난 내 귀를 의심했다.

그의 마지막 말에 충격이 컸는지 앞에 무슨 이야기를 했는지 생각이 나지 않고, 지금 글을 쓰면서도 떠오르지 않는다.


아직 고도 비만이라 서류상 증명을 받을 것도 아니고, 내가 살쪄서 내가 나에게 그렇게 말할 순 있지만 나 아닌 타인에게 매우 기분 나쁜 고도 비만이라는 단어와 함께 아줌마라니! 아줌마..


내가 아무리 아줌마 인건 맞지만 우리 부부는 서로를 존중하는 마음으로 아저씨 아줌마라는 호칭은 거의 안 썼는데..


뭐지 이 남자 갑자기 과식으로 간이 배 밖으로 나온 것인가.

아님 갑자기 포도당 수치가 높아져서 혀가 너무 유연해져 말실수를 한 건가..


짧은 순간이었지만, 그 순간의 놀라움과 실망감 그리고 수치심 모두 느꼈다.

살이 찌는 것 같아라고 확신은 했지만 멀리했던 체중계에 올라가 보니 숫자가 정말 달라졌을 때 놀라움.

또는 매일 거울을 보면서 신경 쓰지 않았던 팔뚝 살이 어느 날 유독 눈에 띄어 다시 보니 밀가루 반죽이 발효된 것처럼 포동포동 해짐을 발견했을 때의 실망감.

건강검진 센터에서 체중계에 올라갔다가 내려왔을 때 언급되는 기계 소리를 듣고 창피한 수치심.


나는 순간 쪽 찢어진 눈으로 그를 흘겨보며 말했다.

"뭐야. 고도 비만 아줌씨라니! 기분 나쁘거든! 아무리 내가 먼저 말했다고 바로 인정하듯 그 단어를 쓰다니!"


치즈군은 당황해하며 웃으며 대답했다.

"아니, 장난이지. 자기가 먼저 고도 비만 어쩌고 했잖아. 그리고 내가 남이냐. 자기가 잘 때 이를 갈아도 얼굴 쓰담쓰담해주면서 이 갈지 않게 하지, 실수해도 내가 엉덩이 토닥여주잖아. 이런 남편이 농담했다고 그렇게 눈을 흘기냐. ㅋㅋ"


"난 기분이 매우 나빠졌거든! 마치 아무리 사랑스러워도 자기가 가끔 지독한 방귀를 뀌었을 때 진정 내가 못 참고 창문 여는 것하고 같은 격이거든! 아냐 지금 내 기분은 이것보다 더 나쁘거든!"

내가 말하고도 너무 웃겨 마구 웃었다.


이제는 치즈군이 내게 어이없다는 듯 말했다.

"뭐라고? 지독한 방귀! 어이없다. 자기나 나나 누가 더 지독한 방귀인지 내가 냄새 측정기 사 온다. 측정해서 누가 진짜 독한지 확인해볼까? 가끔 자기도 지독한 방귀 냄새 풍길 때 나는 자기 속이 안 좋은가 보구나라고 속으로만 생각했지 창문 열진 않았거든!"


순간 서로 얼굴을 마주 보고 멈춰 서는 마구 웃었다.


논쟁의 초점이 흐려졌다.

고도 비만 아줌씨라는 소리에 기분 나쁨이 왜 방귀 냄새 측정기까지 이야기가 나온 거지?


아 맞다. 내가 기분 나쁨을 비유하려다 그렇게 된 거지.

입방정으로 내가 먼저 꺼낸 고도 비만에서 이렇게 됐지.

ㅋㅋㅋㅋㅋㅋ


그래도 분하다. 진 것 같아.

이 기분 잊지 않고, 치즈군이 까맣게 잊고 있을 때 시간차 공격을 해주겠다.

이 돼지 아저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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