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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헤븐 Jan 11. 2024

내 삶에 예술을 들일 때, 니체

서평 같지 않은. 서평.... 

좋은 기획도서라고 생각했었다. '서가 명강' 시리즈를 도서관에서 우연히 접했을 때. 당시 나는 '불온한 것들의 미학'을 빌렸었는데 (당시에 나는 소위 위작이라든가 포르노그래피와 같은 장르의 것을 예술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와 같은 엉뚱한 생각을 하곤 했는데, 그때 얼추 실마리를 제공했던 도발적이고 참신한 책이었지. 그래서 계속 그 시리즈의 신간을 기다리는 독자였었다)  만약 박 교수님의 '이 책'이 먼저 나왔다면 아마 그 책을 읽을 생각은 못 했을 것이다.  다만 미학과 예술. 두 단어가 들어간 책의 제목을 지켜보면서 즐거운 고민을 하며 도서관 서가에서 내내 방황하며 갈팡질팡하고만 있었겠지... (이렇게 처음부터 글이 새어 나가버리고 만다... 요즘 정신이 혼미하다. 진통제 기운이 퍼져서 그런가, 아니면 음악을 들으면서 이 늦은 밤 11시경에 글을 쓰고 있어서 그런가. 아니면 그 모든 것들 때문이던가..) 



'내 삶에 예술을 들일 때, 니체'  (박찬국 지음, 21세기북스, 2023) 



책의 부제는 '허무의 늪에서 삶의 자극제를 찾는 철학 수업'이다. 사실 부제가 더 마음에 들었던 건 아마 '허무'라는 단어 때문이었겠다. 맞다. 허무... 그렇다. 살면서 가끔 - 아니 실은 자주 - 허상하고 공허하다는 생각을 하면서 살게 된 건 아마도 8년 전부터였을까. 내 세상의 지층이 완전히 바뀌던 시절. 나의 인생이라지만 이 인생이 정녕 나의 것인지... 나의 시간이라고 확실히 말할 수 없게 되어 버린 것 같은 시절.  어떤 면에서는 이미 꽤 염세주의적이고도 니힐리즘적인 인간이면서도 한편으로는 '이런 삶'에 지지 않고 싶다는 묘한 분함을 동시에 지니며, 스스로 비극에 가까운 인생이라 자조하면서도 동시에 '비극을 희극으로 돌려놓고 말겠어'라며 어떤 면에서는 격렬한 생의 열정을 내밀하게 품고 사는 '마지막 인간'.  



그리하여 절망이라든가 허무함의 늪에서 빠져나오려는 술책으로서 닥치는 대로 책을 읽어 해치운다거나, 누구도 읽어 주지 않는 글을 혼자 쓰거나 혹은 대놓고 다 보란 듯 부끄러움도 모른 채 글로 감정을 내뱉어 버린다든가. 그중 가장 좋아하는 비법은 이것이다. 음악과 향수... 혼자 있을 때는 언제나 음악을 듣는다. 우울할 땐 도리어 화려한 옷과 향수를 입어버린다. 프루티 한 플로럴 향의 샹스, 오렌지 블로섬과 튜베로즈, 일랑일랑의 조화로 후각을 매혹시켜버리는 가브리엘, 또 어느 날은 자스민과 로즈가 우아하게 어코드 된 부드러운 오리엔탈 계통의 코코 마드모아젤을.  이도 저도 성에 차지 않을 땐 머스크 향 퍼퓸 로션을 몸에 잔뜩 입힌 채 거울을 넌지시 바라보는 여자... 가끔은 그런 내가 정말 어딘가 조금 미쳤나 싶지만 한편으로는 인생이 원래 '미치지 않고서야' 아니던가 하면서 다시 생활 전선으로 뛰어드는 걸 주저하지 않는, 다만 어떤 식으로라도 내면의 무언가를 절대 잃지 않으려 종종 거리며 애쓰는 사람...




참으로 강한 자는 변화와 갈등과 투쟁을 즐기는 자다. 

니체는 예술이야말로 우리 내면에 잠재한 충만한 생명력을 불러일으키는 것으로 보았다. 


아폴론적 예술은 건축 미술 조각 시  조용히 관조하는 태도를 요구하는 조형예술이다. 

디오니소스적 예술은 서정시, 음악, 춤과 같이 감정에 직접적으로 호소하면서 우리를 뒤흔드는 예술이다.


39,40-42




책에서는 '아폴론적 예술' 과 '디오니소스적 예술'을 구분해 주셨지만 구분이야 어찌 되었든 니체는 우리에게 '생명력을 가지고 유희하듯 살 것을 권한다' (p.45)라는 점을 한 번 더 짚어주신다. 맞다. 생명력. 사실 우리에겐 그 '힘(力)' 이 필요한 것이다. 그것은 생(生) 을 밝게 (明) 지탱하고자 하는 자기 자신의 의지일 테니까. 피로한 세상일수록. 거침없이 거칠어지고 있는 상냥한 폭력들이 난무하는 시대일수록. 아무도 믿을 수 없는 세상이 되어갈수록. 무엇보다 나 자신이, 내 인생이, 묘하게 원망스러워서 바닥에 주저앉고 말았을 때... 그럴 때 필요한 것이다. 음악과 향수가. 나로서는 어떤 형용할 수 없는 힘을 소생시켜주는 것만 같은, 일종의 생명수 같은 것. 나로서는 예술일 수밖에 없는 그것들. 생활 속에서 잡고 있던 끈을 더욱 꽉 잡게 만들기도 하면서 동시에 역설적이게도 끈을 '탁' 하고 놓아버리고도 싶게 만드는 양가적 감정을 지니게 만드는 엄청난 세계. '음악'과 '향'이라는 나의 예술 세계...  




언어가 사람들의 두뇌와 지성에 호소할 뿐 내면에는 도달할 수 없는 반면, 

음악은 온몸과 마음을 파고든다. 

음악은 우주적 생명력의 표현이기 때문이다.    p.55




언젠가 퇴근길 버스 정류장으로 달려가다 스텝이 어긋나 그대로 바닥에 대자로 넘어졌었다. 그럼에도 부끄러운 건 쪽팔린 건 둘째 치고 잽싸게 일어나서 스타킹에 구멍이 난 것도 아랑곳하지 않고 당당하게 뛰었던 그 시절의 내가 존재한다. 물론 용수철 같은 끊김 없는 생명력은 사실 나를 향함이 아니었기에 더 강력할 수 있었을지 모른다. 버스 하나를 놓치면 어린이집에 제시간에 도착하지 못하고 만다는. 그러니 '달려야' 한다는 약간의 강박적 생각 덕분일 테다. 그뿐일까. 한껏 청소를 해 두어도 어느새 돌아서면 과자 부스러기와 사탕 봉지, 구겨진 색종이 등으로 난장판이 되어 있는 공간. 먹이고 씻기고 재우고. 쓸고 닦고 치우고 요리하고 가르치고. 형제들 싸움 중재하며 목 터지게 외치다 돌아버릴 지경에 이르러도 어느새 잠든 모습을 보면 뿌듯함과 동시에 묘한 허무함에 잠 못 이루는 밤. 자정이 넘어서야 음악을 들으며 읽고 쓸 수 있는, 겨우 혼자가 된 순간... 귀에 이어폰을 끼고 플레이리스트를 재생시킨다. 그대로 책을 덮고 눈을 감고 소파에 기댄다. 음악에 도취되고 빠져들다 잠들어 버린다... 그리고 새벽. 다시 하루 시작. 파이팅 하면서 러닝머신 위에서 하루를 달리면서 시작하는 강박적 인간... 




염세주의는 세계 자체가 근본적으로 고통으로 가득 차 있기 때문에 생기는 것이 아니라, 사실은 염세주의에 사로잡힌 사람이 힘을 향한 의지가 약하기 때문에 생긴다. 힘을 향한 의지가 강한 자는 자신의 충일한 힘을 시험하고 즐기기 위해 오히려 고통과 고난을 찾아다닌다. 즉 세계가 문제인 것이 아니라 세계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는 힘이 결여되었다는 것이 문제다.     p.157




정말 부끄럽지만 나는 여전히 향후 최소 10년 정도는 각오하고 있다. 각오 해야 한다. 각오가 되어 있다. '이런 생활'에 대해서. 이번 생에 지닌 강력한 책무이자 주어진 역할에 최선을 다하려는 나의 '의지' 가 죽지 않았기에. 꺾이지 않았기에. 그럴 수가 없기에. 실상 너무 질긴 생명력으로 나를 휘감고 있기에. 무한 반복 도돌이표 같은 사사로운 생활적 노고와 부침은 연속이어서 어느새 꽉 잡고 있는 정신의 끈이 탁하고 풀려버리는 순간. 내 버릇은 그때 나온다. 입술을 꽉 깨물고 눈을 지그시 감아 버릴 때. 눈에서는 이미 따끈한 샘물이 주르르하고 볼을 타고 내려오려 하기 직전. 



절대 무너지지 않겠다는 듯. 입술을 깨물며 그대로 음악의 볼륨을 좀 더 높인다. 카카오 미니에서 흘러나오는 멜로디에 나도 모르게 어깨를 들썩인다. 울려다가도 어느새 웃는다. 아이들과 눈을 마주한다. 그가 달려온다. 와락 앉는다. 다시 눈물이 날 것 같다. 그러나 울지 않는다. 대신 흥얼거린다. 그리고 손에 힘을 줘 더욱 세게 앉아 버린다. 품에서 빠져나가지 못하게. 감정의 늪에 빠지려던 찰나, 그렇게 음악으로 달래며 다시 웃을 '힘'을 내 보인다.  생명력... 너무 초라하고 볼품없고 후진 것만 같은 나를...'그럼에도' 사랑하려는. '그럼에도' 나아가 보려는. 그럼에도 포기하고 싶지 않은. 분함의 승화이든 그것이 무엇이든. 나만 아는 명징한 어떤 열정...



예술은 성욕의 상징이라 했던가. 섹슈얼리티만큼 인간의 문명과 예술을 발달시킨 원력은 없다고 생각하는지라. 특히 나로서는 그래서 음악과 향수는 현생에서 뗄 수 없는 '예술' 일 것이고 그것들은 침잠하려는 삶을 다시 일으켜주는 소생수와 같은 것이겠다. 물론 침대에서도 충만한 기능적 역할에 충실한 그 두 가지를 어찌 사랑하지 않을 수 있을까. 음악은 체온의 배경이 되었고 살갗에 묻어있는 향은 에로스의 화룡점정이 되어 주었던 순간을. 아직도 기억하고 있는걸...



너무 책 이야기를 하지 않아서 이것을 도저히 서평이라고 할 수 없겠지만. '초인'으로서 삶의 함정과도 같은 순간들과의 투쟁은 이미 너무 당연하다는 것. 그 사실 그대로 직시한 채 다만 주어진 생을 긍정하며 당차게 자신의 의지로 나아가려는 니체의 패기와 열정을 엿볼 수 있었기에. 이 책은 사실 '비극의 탄생'을 읽어야 조금 더 말쑥하게 읽힐 것 같지만 그 수준까지 가지 못한 나를 책망하면서...



류이치 사카모토의 Merry christmas Mr. awrence . 프리템포의 Epoch

그 외 노을 지는 이른 저녁이 연상되는 적당한 템포의 멜랑콜리적 감각을 자극하는 어쿠스틱 팝들 

가장 최근인 요즘. 그리고 지금도 듣고 있는 후지이 카제의 Hana (꽃) .. 


음악과 향.. 그것들을 내 삶에 들일 때. 나는 비로소 감각하게 된다. 

살아 있음을. 생경하면서도 생생하게. 


향을 몸에 입혔을 때 탑노트의 첫 번째 향기가 전해지다가 두 번째 그리고 마지막 잔향에 이르러

이윽고 몇 시간이 지나 없어지고 마는 것처럼. 


오늘의 고단함은 서서히 없어진다.. 

없어졌다. 감사하다. 


다시 내일을 맞이할 수 있을 것 같다...






https://www.youtube.com/watch?v=SfPkl7lol7g&list=PLNHTyTEbTzvu3pPGRARnGKmH5Wt1Nkkta&index=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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