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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헤븐 May 14. 2024

오늘 하루

세상에 무쓸모한 것은 없다고 생각했었다. 개똥도 약에 쓰인다고 모든 건 다 쓸모가 있는 것들이라 믿고 살았다. 그러나 그 생각은 틀렸다. 확실히 틀렸다. 딱 하나 정말 쓸모없고 도리어 쓸데없이 최악의 쓸모를 낳는 게 있다. 바로 뇌종양. 우리 머릿속에 생겨버리는 정말이지 조금도 반갑지 않은 녀석. 아무 쓸모없는 세포 덩어리. 정음이의 소뇌와 뇌간에 붙어버린 그놈은 제멋대로 증식되는 과정 속에서 아이의 특정 부위를 압박했으리라. 그로 인해 정음은 두통, 메스꺼움, 식욕부진, 구토, 운동 장애, 시력 장애, 정신 성격 변화 등등의 여러 증상을 야기했던 것.... 



정음의 소뇌엔 5cm의 종양이 있었다. 소뇌는 몸의 균형과 걸음걸이를 잡아 주는 곳이므로 이곳에 종양이 생기면 술 취한 것처럼 비틀거리게 된다. 또한 운동거리측정 장애, 손떨림 등의 장애가 온다. 그래서 정음이는 글씨를 삐뚤뺴뚤 쓰기 시작했고, 아이의 새 2학년 담임은 그것을 보고 약간 핀잔을 주신 모양인지 아이는 학기 초부터 주눅이 들고 속상해했었다. 구토도 많았던 아이... 나도 모르게 연속되는 육아에 지쳐 구박했던 나쁜 엄마... 뒤늦은 후회도 쓸모없지만 나는 이제야 알 것 같다. 정음이가 왜 그리 온순해졌는지. 영특했던 아이가 갑자기 글씨 쓰기를 힘들어하고 2학년으로 올라가면서 부쩍 학교 가기를 힘들어했고 학습 따라가기를 주저했는지. 왜 눈이 아프다고도 했는지. 아이가 만약 비틀거리면서 고꾸라지듯 쓰러지지 않았다면... 나는 그때까지도 알지 못했을 것이다... 미련한 엄마. 여전히 나는 자책의 늪에서 헤어 나오지 못한다. 



병력의 기간이 짧을수록 종양이 빨리 자랐다는 결과를 의미한다 한다. 불과 올해 초까지만 해도 아이는 '멀쩡' 했다. (그래 보였다...) 그러나 2주 정도 이내 짧은 기간에 아이의 이상 현상은 감지되었고 결국 악성뇌종양 수모세포종이라는 진단 하, 긴급히 수두증 1차 수술과 개두술 종양제거술 2차 수술까지 연이어 할 수밖에 없었던 상황... 주치의는 말했다. 상당히 오래전부터 증상이 있었을 것이라고. 여기까지 버텨준 게 이 아이는 기적이라고... 그 말이 어찌나 유리 칼날처럼 심장을 찌르던지. 아이는 어떻게 버텼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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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하루는 완벽히 달라졌다. 쌍둥이 중 첫째의 하루와 둘째의 하루는 완전히 다른 시간을 보내는 중이다. 1교시부터 4교시까지. 공부를 하고 집에 와 쉬면서 게임을 하거나 놀다가 태권도 학원을 다녀왔다가 귀가 후 저녁을 먹고 또 가족과 도란도란 대화를 나누다가 잠드는 일상. 정말 평범한 일상에 비해 정음의 하루는 어른도 견디기 쉽지 않은 통증과 각종 주삿바늘과 무엇보다 여러 몸속의 종양들로 인한 이상 현상들과 사투를 벌이는 중이리라. 그리고 아마 앞으로도 그러할까. 기약 없는 투병 후속 치료 생활로 인한 각종 후유증, 신경 운동 장애, 전이와 재발 등등의 사건 사고들과도 맞닥뜨릴 수 있는, 그리하여 정음과 나의 하루는 진심으로 '오늘' 하루만 무탈하면 내내 소원이 없을 것 같은 그런 하루... 




새벽 1시 : 망고 5알, 죽 5스푼, 요플레 1개, 물 3스푼

새벽 3시 : 자세가 불편하고 가래 고통 호소, 석션.... (어른도 견디기 힘든 석션을.. 정음은 견디는 중이다) 

오전 6시 : 죽 5스푼, 요플레 1개, 그 후 항경련제, 해열진통제 

오전 7시 : 주치의 회진, 별말 없이 '어떠니'라는 것과 그저 '오늘'의 경과를 확인하고 5분도 안 되어 퇴장... (속이 타지만 조직검사 결과를 내내 대기하는 수밖에) 

오전 8시 30 : 마취독성예방제, 구토예방제, 스테로이드 투여 

오전 10시 : CT 찍고 옴, 진통제, 죽 5 스푼 

오전 11시 : 오른팔 정맥시술 한 부분으로 피 뽑음 (엄청 많이.... 저 얇은 팔뚝에서 엄청나게 뽑아댐...) 

정오 12시 : 편마비 의심되는, 움직이지 않는 오른발과 오른팔 재활운동 (마사지해 주고 움직여주고... 그 정도밖에 할 수 없는 무능한 엄마) 

오후 2시 : 점심 안 드시고 내내 잠들어 있는 아이, 일어나 해열진통제와, 새어 나오는 소변줄 교체

오후 3시 : 2인실 병실 이동 (특 1인실이라고는 해도 너무 덥고 공간 동선 불편, 쓸데없이 넓기만 한 실속 없이 비싼 42만 원짜리 비급여 1인실보다 18만 원짜리 2인실이 더 낫다...) 담당 간호사분들께 새 간병지침 교육 (소변통 비워내고 매일 의무 기록 내용 및 뇌관으로 연결된 뇌척수액 평형 맞추기 위한 뇌관 on/off 주의 등등) 

오후 4시 30 : 요플레 1개. (내일은 어머니 도움으로 근처 마트 요플레를 싹쓸이해야겠다... 이거라도 먹어주니 너무 감사하다) 

오후 5시 : 션트가 박힌... 정음의 머리 개두술 한 부분의 너덜너덜해진 반창고 드레싱 

오후 6시 : 흰 죽 (간장 참기름 도움으로 좀 더 먹였다) 

저녁 9시 : 운동 후 취침 

새벽 1시 : 초코우유 먹고 싶다 해서 1층 24시간 편의점에서 초코에몽 우유 3개 사서 얼른 먹임. 250ml 한 팩을 다 마셨다. 아.......... 정말 고맙습니다............ 이제야 피 말리는 마음이 좀 살 것 같은 건 왜 인지..




목을 가누지 못한 채 축 늘어져있는 아이...




저 위의 하루 기록은 정음의 5/13일 기록이다. 편마비와 반맹, 인지 저하, 시력 저하와 미열 등 아이의 하루는 다른 아이들의 하루와 너무 다른 시간을 통과하는 중이다. 그리고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 기적(?)처럼 아이는 새벽에 우유가 마시고 싶다는 '문장'을 말해 주었고 잽싸게 알아듣는 엄마는 계속 대화를 유지하면서 '인지력'을 계속 소생시켜 주기 위한 발악질로 계속 대화를 건넨다. 



'다음엔 무슨 우유 먹을까'

'초코'

그럼 초코 다음엔 우리 정음이 좋아하는 바나나 우유 먹을까?

'응' 

바나나 다음엔?

'딸..'

'딸기 우유. 맞아. 엄마도 딸기 우유 너무 좋아해. 그다음엔'

'흰 우유'

'흰 우유 다음엔 우리 민트초코 먹을까?'

'응'

'다시 말해볼까 흰 우유 다음엔?

'민.. 트' 

'민트 다음엔

'바나나' 




오전 10시, 혈관 내 조영제를 빠른 속도로 주입해서 영상을 촬영, 혈관조영영상을 얻으려 아이의 머리에 부착된 카테터. 그것을 곧 뺄 것이라는 통보를 받았다. 오늘이 될지 내일이 될지 알 수 없지만. 그 사이 왼 팔뚝의  PICC 말초삽입중심정맥관 시술한 부위에 드레싱을 한다. 11시. 그토록 빼고 싶어 했던 소변줄을 뺐다. 내내 마려운 느낌과 아픔이 동시에 느껴져서 마시던 딸기 우유도 거부하는 아이. 그리고 첫 소변 250cc. 다행이고 감사하다. 정음 머리 뒤에 달린 카테터도 곧 제거할 예정이다. 그리고 재활치료학과와 협진이 들어갔다는 통보. 아마도 곧 이곳에서 재활 운동도 시작될 듯싶은 예감. 조직검사 결과를 대기하면서, 미리 예약해 둔 삼성서울 외래 진료 초진을 볼 수 있는 시점을 고민하면서. 동시에 아이의 회복 상황을 수시로 지켜보면서. 




매일 보면서도 매일 적응되지 않는..... 애 타는 아이의 몸 구석구석



'하루'라는 시간의 지각변동은 이미 시작되었다. 모든 시간의 지층이 변했다. 매일 매 순간 긴장 하며 애타는 피마름이 계속된다. 아이는 잠든 모습이면서도 내내 중얼거린다. 그리고 나도 그런 아이를 지켜보며 중얼거리다 이내 고인 눈물을 감추지 못하고 만다.



엄마... 

정음아...



이제는 먼 미래를 고민하지 않는다. 당장 오늘 하루하루만을 생각하며 앞만 보고 나아갈 뿐이다. 네 고통과 아픔이 줄어들 수만 있다면. 여기서 더 큰 어긋남이 생기지 않도록. 앞으로 불어닥칠 모든 난관들 앞에서. 그 모든 시간을 감싸앉을 용기가 내게 생길 수 있을까.... 솔직히 자신은 없다. 여전히 무섭고 두렵고 눈물이 난다. 다만 대견하고 기특하게도 매일 조금씩 아픔과 사투하며 회복 중인 아이에게 칭찬 세례를 하며 오늘이라는 시간에 슬픔과 좌절보다 희망과 용기를 주려 애쓸 뿐...



오늘 아이는 7일만에 뺀 소변줄 통증으로 인해 시름시름 앓는 중이다. 아이의 몸에 기저귀를 갈아 넣고 내내 허리를 숙여 끙끙대는 아이의 몸을 바라보며 해줄 수 있는 건 그저 곁에 있는 것 뿐.... 애가 탄다. 피가 마른다. 그럼에도 우리의 오늘 하루는 앞으로 나아가는 중이다. 멈춤 없이. 앞을 알 수 없는 채로. 



내일 우리는 또 어떤 하루를 맞이할까...

사랑해...미안해..고마워 용서해..




파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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