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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헤븐 May 12. 2024

평범한 주말의 간절한 그리움

아이들의 소뇌 부분에서부터 주로 발생하는 악성 뇌종양의 종류 중 하나인 수모세포종. 정음은 뇌압이 상당해서 그동안 경미하게 두통을 앓고 있었던 것이었다. 시력이 좋지 않게 변했던 것도 시신경을 압박하고 있었기 때문... 버티고 있는 게 용했던 아이. 철이 너무 일찍 든 아이는 많은 시그널을 주었지만 나는, 우리 부부는, 그걸 놓쳤다. 보행장애가 심하게 갑자기 오기 전까지 왜 좀 더 세심하게 살피지 못했을까. 바보 같이. 멍청하고 이기적이었던 엄마... 



지난주 목요일 수두증 긴급 수술 이후, 이번주 수요일 소뇌에 약 5cm가량의 종양제거술을 하고 중환자실에 입원. 중환자실은 면회가 제한되어 있다. 오전 9시부터 15분간만. 아이를 깨우던 담당 간호사의 목소리에 눈을 뜨던 순간. 주체할 수 없이 흐르는 눈물을 겨우 마스크 안으로 흘러내린 채 꾹꾹 참아야 했다.



초점 없는 눈동자. 약간의 사시. 복시를 비롯하여 이제 막 개두술을 해 놓은 상태이기에 아이의 열은 내리지 않는 상태... 아무것도 해 줄 수 없이 그저 바라볼 수밖에 없는 나의 무능함은 절망에 가깝고 그렇게 면회 이후 우선 집으로 후퇴. 차 안에서 남편이 오열했다. 결혼 후 그렇게 오열하는 모습은 처음 보았다....



언제 병원에서 전화가 올 지 모르기에 우선 당장 해야 하는 것들을 두서없이 닥치는 대로 하기 시작했다. 우선 소아암, 뇌종양, 기타 환자식 및 식이요법 관련 책을 몇 권 주문했다. 그리고 커뮤니티체에 비슷한 레퍼런스를 지닌 환우가족분과 연락을 하고 상세히 다음 과정들을 미리 예상할 수 있는 정보들을 긁어모으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동시에 집을 알아본다... 앞으로 불어닥칠 수차례의 항암 및 방사선 (양성자) 등등의 후속 치료를 하고 돌아오면 분명 보행장애 및 다리에 힘이 풀려 계단조차 올라가기 쉽지 않을 아이를 위해. 현 거주지는 아이 입장에서는 너무나도 모든 것이 불편한 인프라. 엘리베이터가 있고 초등학교를 품은 친정 근처 아파트를 급하게 돌아보면서. 모아둔 자금과 가계부를 확인했다. 그리고 건강보험공단 사이트에서 급히 산정특례와 의료재난비 등등의 국가 지원 제도 등의 개요 및 서류를 좀 살펴보았다. 벌써부터 머리가 지끈. 그러나 노트북으로 어느새 여러 정보 취합을 하고 있는 나 자신이  좀 신기하고 괴물 같기도 하다...



그리고 미용실을 갔다. 정말 오랜만에 갔다. 허리까지 내려오던 긴 검은 머리를 잘랐다. 아주 짧게. 똑 단발. 긴 머리를 묶은 채 아이병간호를 할 수 없다고 무의식적으로 생각했던 걸까. 아니면 다시 시작하는 마음으로 모든 걸 새롭게 바꾸고 싶었던 걸까. 아니 바꾸고 싶은 게 아니라 완벽히 바꾸어야 한다. 변하지 않는다면 절대 안 된다. 아이를 제대로 그리고 오래.... 함께 하려면 변해야 한다. 변할 것이다. 변하는 중이다. 모든 것들이 순식간에. 완전한 지각변동이 일어나는 기분...






중환자실 2일째. 오후 3시 일반병실로 옮겼다. 아이라서 그런지 여전히 상급 특 1인실을 '통보' 받았다. 실제는 통보이나 서류상으론 '신청'이라는 게 내심 마음에 걸리지만 원래 병원에서 약자는 환자의 보호자... 병원에서 하라는 데로 할 수밖에. 원무과와 중환자실을 몇 번 오 가 고난 이후에야 아이의 입실 상태를 확인. 아이는 내내 자고 있었다. 실밥으로 꿰맨 개두술 부위 자국 위에 반창고가 눈에 보인다. 그리고 그 밑으로 실리콘 느낌의 고무줄관이 연결되어 아이의 머리로부터 뇌하수체를 뽑아낸다. 뇌압 관리 때문일 테다. 초행자라면 긴장할 수밖에 없는 간병 지침을 듣는 동안 심장이 쿵쾅거렸다. 몇 번이나 되묻고 또 되묻고. 아이의 머릿속에는 이미 션트가 박혀 있기 때문에. 게다가 이젠 관까지 꽂혀 있어서.... 무엇이든 긴장을 하지 않을 수가 없다....




미처 자르지 않은, 피가 묻어 그대로 굳은 상태의 피딱지와 머리카락이 엉켜버린 다른 머리 부분들... 물손수건으로 계속 닦아 주었고 머리끈 하나로 묶어 주었다. 보는 사람이 답답해서 묶은 머리가 조금 귀엽게 보이기도 하다. 물론 현실은 전혀 귀여운 상황이 아니지만... 아이를 보는 내내 여러 생각과 감정을 다스리는 데 아직 실패한다. 자꾸 무너진다. 그이가 잠시 첫째를 데리고  왔다 간 이후, 다시 아이와  둘이 남겨진 채 잠든 아이얼굴을 바라보며 물수건으로 몸을 닦아주며 이야기를 시작한다. 아이는 잠은 들었지만 엄마의 목소리를 들려주기 위해 여러 이야기를 만들고 내뱉는다. 그러다 자꾸 북받쳐 오른다. 자꾸만 울고 싶다... 결국  운다. 다행히 아이는 잠들어 있다. 눈물을 그친다. 그리곤 자책한다. 진작에 동화책을 많이 읽어줄 걸. 진작에 대화를  좀 더 많이 나눌 걸. 진작에 네가 보는 유튜브에 관심 갖고 함께 동참해줄 걸. 모든 지난 것들은 그저 후회 뿐.



네 머리에서 나오는 저 액ㄷ,ㄹ을 보며....여전히 이 시간들이 꿈 같기만 해...... 그래서 눈물이 난다.






종양을  제거한다 해도 절제 범위가 크면 평생 그에 따른 후유증 및 각종 전이 등으로 인해 새롭게 발생되는 장애 및 불편함 등을 안고 살아야 한다. 감각, 운동, 언어, 감정, 인지, 기억, 호흡, 체온 등. 인간이 살아 숨 쉬는 모든 기능을 통제 주관하는 컨트롤타워인 뇌. 그 무엇도 중요하지 않은 곳은 없는데 하필 그놈의 종양은 우리 아이의 뇌, 그것도 치명적인 뇌간에 붙어 아이의 생활을 모조리 침범하려 한다. 아니 이미 시작되었을지도 모를. 막막하다. 무섭고 두렵다. 그럼에도 묘한 의지가 샘솟는다. 어떻게 해서든 악성 뇌종양의 통계적 생존율 방어를 해 낼 것이라는 일념. 아이가 빼앗긴 일상을 되도록 원상복구 시켜야 한다는 남은 생 전부를 바칠 각오...악마와 계약을 해서라도 그럴 수만 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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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의 열은 수술 4일차임에도 여전히 안 떨어지고 있다. 하루 3회의 해열 진통제, 수시로 투여되는 스테로이드, 구토 억제제, 하루 2회 만니톨, 수액과 영양제. 그리고 뇌관을 통해 빠져나오게 만든 뇌척수액... 무엇보다 가래. 스스로 뱉어낼 힘조차 없어서 내내 막혀있는 목 안의 가래를 석션으로 겨우 빼낼 때마다 아이의 눈에선 어느새 눈물이 흐르고 헛구역질을 한다. 그걸 지켜보는 게 가장 고통스러운 요즘. 현재는 그렇다. 제발 가래 석션 언제 없어지지....앞으로 첩첩산중일테지만...



뭘 먹지 못한 채 내내 자고 있는 아이. 그래도 오늘은 총 요플레 2개와 딸기 1알을 먹일 수 있었다. 그 조차 겨우겨우. 숟가락으로 잘게 으깨거나 몇 시간에 걸쳐 먹은 양. 물은 숟가락으로 떠 주어도 침과 함께 옆으로 흘러내려오는 형편이지만... 그래도 중간중간 아이와 대화를 나눌 수 있음에 감사할 뿐이다. 네 목소리가 이토록 그리워질줄은....




'엄마 목소리 들리면 눈 떠볼까'

(아이는 눈을 뜬다. 약간의 사시 현상이 있지만 위치는 점점 돌아올 테니...) 

'배 고프면 오른손 들어볼까' 

(아이가 손을 든다) 

'요플레 먹어볼까' 

'으으...' (가래 끓는 목소리) 그러다 갑자기 짜증을 내며 울부짖는다. '으으으으....' 

(다행히 그 후 의사표현이 문장으로 바뀌었다. 가령 '티비 틀어줘' 라든가. '응가' 라든가....) 



안면 장애가 오는 것인지, 아니면 기력이 없어서 그런 것인지, 아무튼 아이는 미숙한 표현으로 자신의 불편함을 호소한다. 나는 아이의 말을 알아듣지 못했지만 대략 눈치껏 달래 가며 다독이며 그렇게 알아듣고 여러 액션을 취한다. 말미엔 먹이려 애쓰는 나. 먹어야 회복이 되니까. 1인실이라 해도 모든 동선과 가구 등이 너무 불편해서 허리를 내내 굽혔다 폈다 - 이러다 허리 금방 나갈 것 같지만 아무렴 아이보다야 아프겠는가 - 그럼에도 이 고생이 묘하게  감사한 건. 아이에게 이렇게 헌신적이며 절절하게 사랑하려 애쓴 기억이 아주 오랜만이기 때문이었다. 부끄럽지만... 왜 예전에는 아이의 사랑스러운 모습을 발견하려 부단히  노력하지 않았을까. 당연해서였을까. 그 존재가 너무 당연해서. 사실은 당연한 건 아무것도 없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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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ICC 시술했던 오른쪽 팔뚝 안쪽에 드레싱을 하러 누군가 병실 문을 연다. 아이지만 상냥하거나 봐주는(?) 건 없다. 그에게 그건 그저 '일' 일 뿐, 무뚝뚝한 표정, 차가운 소독약을 아이 팔에 툭툭 묻힌다. 내심 야속하고 화가 나려  한다. 얇은 팔목에 저 소독약이 분명 따끔할 것임에도 아이는 이미 체력이 바닥이어서 저항하거나 울 힘도 남아 있지 않은 상태.... 내 심장은 또 두근거릴 뿐. 




8시간 간격으로 해열 진통제를 투여함에도 열은 내리지 않는다. 아이는 힘 없이 누워만 있다. 말을 걸었을 때 눈을 뜨고 '응' 이라든가 우는  목소리를  3초 정도 낼뿐. 피가 마른다. 애가 탄다. 눈물이 나려 한다. 참는다. 갑자기 예전 생각이 난다. 먹을 너무 많이 먹는다고 구박하던 나를 원망한다. 아이의 몸을 물수건으로 닦아주면서도 예전 생각이 난다. 뛰어놀 너무 장난꾸러기라고 구박하던 나를 한없이 자책하고 비난한다...



4인 가족의 평범한 주말 식탁은 이제는 꿈같은 현실이 되어 버렸다. 첫째와 그이, 둘째와 나. 네 명이 한 공간에 언제나 함께 있을 줄 알았는데. 당장 며칠 전까지만 해도 나는 깨닫지 못하고 살았다. 평범하게 사는 게 이렇게 절실히 그리울 줄은. 아이들과 산책을 하고 식사를 하는 삶. 네 명이서 한 공간에서 하하호호 깔깔대는 시간...



평범한 네 사람의 주말이 너무나도 그립다. 

평범한 주말을 다시 만들 것이다...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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