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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헤븐 May 11. 2024

10일의 악몽, 깨지 않는 꿈의 기록

5/1일 수요일

- 판교 EM brain 검사 상급병원 소견서 접수, 차병원 외래 예약 pull in, 서울대 예약 실패(의료파업)



5/2일 목요일

- 차병원 소아청소년과 외래, 긴급 MRI 및 차트 상 종양 발견, 입원 및 신경외과 협진 주치의 배정

- 악성뇌종양 수두증 진단 접수, 1차 긴급 수술 일정 confirm, 1인 특실 이동 입원, 응급 수술 대기



5/3일 금요일

- 수두증 긴급 수술, 뇌압 기계치 맥스 초과되었다 함 (40...) 이런 사례 처음 봄, 주치의선생님 말씀

- 수술 자체는 잘 끝남. 뇌압을 낮춰야 본 수술인 종양제거 수술 돌입이 가능

- 2차 개두술 종양제거술 일정 확인

- 만니톨 (뇌압 낮추는 액), 스테로이드, 진통제, 수액, 영양제, 기타 등등.... 아이의 혈관 고통 시작



5/4일 토요일

- 수술 대기, 만니톨 고통 최악. 15분 들어갈 때마다 너무 아파함...

- 먹고 싶었던 피자빵 1개, 이후 아무것도 먹지 못함 (더부룩, 구토감)



5/5일 일요일, 어린이날...........

- 과일 몇 조각, 병원밥 거부. 죽 조금. 물 몇 모금, 병원 특식으로 나온 햄버거샐러드빵 한 조각

- 만니톨 통증 여전....

- 아이가 좋아하는 유튜버의 사인본과 영상통화 일정 기적처럼 긴급 수배/확보, 정음 처음으로 웃었음. 그러나 다시 수술에 대한 걱정 시작, 울먹이고 또 울부짖음 (그놈의 만니톨....)



엄마 선물 마음에 들었을까... 곤충하모니 같이 갔을 때..... 크리스티게코.. 그게 얼마라고.. 그걸 못 사줬어.... 난 바보다........



5/6일 월요일

- 스타벅스 샌드위치 (네가 가장 좋아했던 것), 시그니처 핫 초콜릿 세 모금, 외할머니표 깨주먹밥 2알

- 쌍둥이 형의 면회, 아이는 역시 아이다. 형제가 오니 그제야 같이 게임 이야기를 하며 기뻐한다. 그것도 잠시였지만...

- 하루 3회 만니톨 투여 중 밤 시간대 가장 극심한 통증 및 눈물, 혈관통 극심..

- 아이 머리에 션트 확인. 앞으로 요주의... 머리 자석 절대 금지

- 물 필요 없는 샴푸 1층 의약품 약국에서 구매... 얼마나 힘들까.... 못 씻고 아프고 못 먹고.....



5/7일 화요일 본수술 D-1

- 아침 죽 두 모금, 이후 금식

- 수술 전 CT, X-ray, MRI 추가 진행

- 항경련제, 진통제 먹는 약으로 변경 (혈관통이 심해서 주사액 들어가는 걸 견디지 못한다... 아이의 팔은 여리고 약하고 주사액은 괴물같이 엄청나게 들어간다.................)



5/8일 수요일 수술

- 새벽 6시 기상. 수술 전 먹는 물약 (간호사와 주치의 선생님까지 병실 총동원. 보통 이 약 먹으면 성인도 구토 사례 발생하여 응급 시 조치를 위하는 것 같았음...) 다행히 잘 복용 폭풍 칭찬

- 7시, 글리올란 (2,317,500원) 비급여 약제 투여 동의서를 비롯한 각종 서류 사인, 해당 약물의 부작용인 빛의 과민성 등을 방지하기 위해 아이 얼굴/팔/다리에 선크림 발라줌

- 7시 30분, 수술실 입성, 수술 준비 시작

- 9시 30분. 2시간 여의 수술(마취 등) 준비 후 수술 시작

- 오후 3시 5분, 수술 종료. 주치의 선생님 짧은 면담

- 나오는 아이는 입에 호스를 물고 눈물 자국이 있었고... 모자를 쓰고 있었다....



5/9일 목요일 중환자실

- 새벽 6시 30분 도착, 내내 대기, 주치의 선생님 회진 후 뵙기 위함. 짧은 복도에서의 면담 (7시)

- 중환자실 아이 면회 (겨우 15분.....)

- PICC 시술 (주사액 또 엄청 들어가니 통증 완화 등을 위해 임시방편적 시술...)

- 복시와 사시 현상, 눈동자 위치는 곧 돌아온다 함

- 경련 증상

- 저녁 10시 뇌 MRI. 아이 한번 더 보기 위해서 냉큼 중환자실 담당 간호사에 간청, 내려갈 때 볼 수 있다 해서 저녁 9시부터 대기조. 다행히 MRI 실부터 끝나고 중환자실 입실까지 같이 있을 수 있었다... 혼자 보내지 않길 잘했다... 가뜩이나 철들고 착하고 그렇지만 무서움 많은 너를... 그렇게  혼자 둘 수 없다...



5/10일 금요일 일반 병실 이동 (1인실)

- 오전 9시 면담, 내내 자고 있는 아이, 미열과 기력 체력 바닥...

- 오후 3시, 일반 병실 이동, 여전히 잠든 아이, 소변줄 꼽고 기력 바닥, 초점 없는 눈동자, 말 조금 함

- 간단한 간병 교육 (뇌압 상승 요주의를 위한 행동지침교육)

- 가래 석션...........

- 해열진통제, 구토 울렁거림 저하용 주사액, 만니톨, 스테로이드, 수액과 영양제

- 아이의 머리에 연결된 관과 뇌척수액이 빠져나오는 관을 확인, 핏물이 고여 있다. 귓불과 10cm 정도 높이 맞춰야 하고 간병 요주의... 아이 팔에 부착된 반창고를 떼 보니 여기저기 주사 구멍이 보인다.... 무너진다. 언제나 매 순간 매 번, 아이를 지켜보며...



-



소뇌 쪽 5cm가량의 종양 95% 제거, 뇌간 쪽 유착 종양은 잔여, 제거 불가, 놈이 핵심.... 향후 전이, 재발 그리고 종양의 성장 등의 부작용 야기, 후속 치료로 제거하는 수밖에 없음, 그야말로 뽑아도 뽑아도 잡초 같은 놈....



지피지기여도 백전불패 아니 백전 일승 하면 다행일까 싶은 수모세포종과의 싸움 앞에서. 나는 틈틈이 바로 원초적으로 움직였다. 뇌종양 관련 서적 3권을 구매하고, 커뮤니티체에 가입, 실경험담과 환우 및 환우가족분들의 경험담 정보 수집, 전원 고려 및 항암과 양성자 동시에 한다는 삼성서울 외래예약을 닥치는 대로 시간대에 맞춰 예약 (나중에 병원에서 전화가 왔다; 몇 개 취소했지만 혈액종양과 교수님 것은 반드시 받아야 하기에 간청, 일단 keeping... 안도. )



기타 후속 치료를 위한 자금 확보 및 관리를 위해 산정특례 (이게 있는 줄도 사실 몰랐다....) 및 보험약관 확인.... 기타 등등 등등....



10일.

내내 깨지 않는 꿈이 계속 지속되는 기분을 느낀다... 여전히 기록으로 남기면서도 이게 꿈인가 싶다. 아이의 수술은 잘 되었다지만 진단명인 '악성뇌종양 수모세포종'으로서, 뇌간의 유착 종양 부분의 제거를 하지 못한다면 이건 결국 '시작'에 불과하겠지..



아주 많은... 생각과 문장들이 계속해서 밀려온다.

항암과 방사선을 아이가 견딜 수 있을까. 그건 몇 회차가 될까. 양성자로 하는 게 좋다던데. 비용이 비싸도 돈이야..... 집 팔면 되고... (설마 그러기야 하겠는가 싶지만 그럴 각오도 사실되어 있다. 뭐든. 너만 원상복구 시켜놓을 수 있다면.....) 조혈모까지는 가지 않았으면 좋겠는데 일단 각오는 하고 있다....그 전에. 케모포트 히크만... 아프겠지..견딜 수 있을까. 견뎌야 하는데. 부작용은 없을까. 없어야 하는데. 일상생활 다시. 학교 가고 싶어하는 네게... 몸을 반드시 돌려 놓겠다. 내가 망가뜨린 네 소중한 몸. 나의 철이 일찍 든 너무 착한 아이..너무 착해서 도리어 그 점이 못내 괴롭고 고통스러운 나....넌 왜 그렇게 일찍 철이 든 건지. '엄마 울지마' 라고 끝까지 말했던 너....



수술 3일 차에 여전히 잠을 자고 아무것도 먹지 못한 채 누워있는 너를 옆에서 보며 내가 할 수 있는 건 잠들 수 없는 밤. 내내 정보를 찾고 후속 치료 관련해서 시뮬레이션을 하고, 무엇이 아이에게 최선일지 넥스트를 고민하고. 종양 공부를 하고. 섭식 식이요법 암환자 식단 등을 고민하고. 이 와중에 엘리베이터가 있어야 하는 집과 친정어머니 도움이 절실하기에 친정 근처로 이사도 알아봐야 하고... 집을 내놔야 하고..... 아파트 이사 알아보기, 기타 등등 등등. 친정 없었다면 정말.......



-


새벽 2시가 지나가고 있다. 5월 11일이 되었다. 오늘은 뭘 좀 먹어야 하는데. 입에 플라스틱통 깊숙이 넣고 가래 석션하니 어른도 힘든 이것. 토하려고 하며 그대로 눈물이 볼을 타고 흐르는 아이 얼굴을 보는 게 무척 괴롭고....한없이 죄스럽고 참담하다. 가래 석션만이라도 덜 하게 어서 가래 스스로 뱉고 뭘 좀 먹어야 하는데. 요플레부터 제발 먹을 수 있는 기력이었으면 좋겠다...


아이의 이름을 부른다. 잠시 눈을 뜬다. 눈동자에 초점은 없다. 평소 정음이가 좋아하던 음악을 잔잔히 틀어 놓았다. 계곡물소리자장가 10시간 반복 재생...


너는 내게 울지 말라했다. 약속하라 했었다. 그래서 나는 울지 않는다. 네 앞에서는 절대 울지 않을 것이다. 그래야 너의 멘털 관리와 면역력과 회복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기에.


눈물도 나지 않는 지경에 이르는 중이다. 지금 필요한 건 감정이 아니라 이성이고 넥스트를 향해 계속해서 나아가야 하는 것뿐이다. 마치 거대한 프로젝트가 K/O 되었고 이슈 관리와 치료 종결 및 완치 (완벽히는 아니더라도.. 최소한.... 정상생활 가능한 정도라도.....)라는 프로젝트 goal을 향해 필사적으로 움직여야 하는 PM이 된.... 느낌이다 (이 와중에 프로젝트라는 표현을 쓰는 나란 년은... 천하의 미련하고 멍청하고 몹쓸 인간... 아이를 애지중지 키웠어야 했는데... 더 일찍 알아야 했는데. 더 세심하게 살펴야 했는데. 아무것도 하지 못했고 아무것도 하지 않았던 이기적이고 못된 여자. 엄마 자격 없는 인간이 이렇게 착한 아이의 엄마라니...........


잠든 아이를 지켜보며 쭈그리고 키보드를 두드리는 중이다.

잠든 얼굴은 예나 지금이나 같은데, 우리의 공간은 아주 많이 달라져있구나...

무너진다.... 그러나 울지 않는다. 눈물이 나지 않는다. 다음을 생각한다. 오늘만 생각하고 곁을 지킨다.... 나도 뭘 좀 먹어야 하는데 뭔가 안 먹힌다..... 오늘은 뭘 좀 먹어야겠다.... 그이에게 빵을 사 오라고 해야겠다.... 단팥빵이 먹고 싶다... 먹지 못하는 아이 옆에서 허기를 느끼는 내가 괴물 같다....








본 수술 전.... 네 청명한 목소리가 너무 듣고 싶다......................



오늘은 뭘 좀 먹을 수 있기를..........가래 석션.. 멈출 수 있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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