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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헤븐 May 16. 2024

우리 몇 시에 갈까

안면 장애 때문인지 아이는 여전히 표정은 없고 눈동자가 좌우로 돌아가지 않는다. 허리와 목은 가누지 못하며 왼발과 양손은 움직이지 못한다. 다만 '으으' 하고 말하는 상태에서 현재 입은 트였다. 문장으로 발화하는 시간이 제법 늘었다. 그래서일까... 아이는 새벽 내내 자지 않았다. 저녁 8시부터 새벽 1까지. 우유를 찾았고 적당량을 먹였음에도 5분도 되지 않아서 계속 여러 통증과 호소를 대었다. 



가래..

음식물이 있어

가래! 

음식물! 

초콜릿우유... 흰 우유.. 바나나 우유.. 바나나 우유! 왜 안 줘! 


문장이 늘어나는 건 반가운 일이지만 동시에 두려운 일이기도 하다...



자면 죽어?

호흡 곤란

숨 쉬기가 불편해

숨이 잘 안 쉬어져. 호흡 곤란! 가래! 

왜 안 와

왜 불렀는데 안 와 

왜 안 깨워줘

깨워줘야 해

왜 안 깨웠어

깨워 주라고 했잖아! 

힘들어 

나 살았어?

나는 언제 끝나

나는 몇 시에 가

나는 몇 교시야

나는 몇 시에 가! 몇 시! 


...........



-


아침저녁으로 스테로이드. 뇌압 낮추는 만니톨, 항경련제인 케프라. 해열 진통제와 영양제인 오마프원페리주. 아이의 몸속에는 매일 같이 수차례 약물들이 투여되는 중이다. 소아 뇌종양에 대해서 공부하면서 나는 점점 느끼게 된다. 종양 자체뿐 아니라 그로 인한 후유증과 약물 부작용으로 인한 각종 '변화' 들이 더 두려울 수 있음을....



아이의 소뇌의 종양은 대부분 제거되었다고 하나 핵심인 '뇌간' 쪽 종양은 잔존, 결국 항암과 방사능 치료 등을 받을 수밖에 없다. 또한 흔히 골수이식이라는 무시무시한 단어로 쓰였던 조혈모세포이식도 각오해야 한다. 그 과정을 통해서 여러 부작용과 후유증은 예상되는 바... 항암요법으로 오는 구강궤양, 항암치료에 의한 면역력 저하로 생기는 대상 포진, 항암제 정맥주사 시 항암제가 피부로 새면 나온다는 심한 통증. 그뿐일까. 항암제를 맞으면 암세포도 죽지만 골수의 조혈모세포도 줄어서 적혈구 백혈구 혈소판이 감소. 백혈구가 감소하니 호중구도 감소, 또한 재발 가능성이 농후한 우리 아이의 '수모세포종'이라는 종양의 특성상 재발 종양은 수술제거가 힘든 경우엔 생존예후가 불량할 수 있고 더 강한 치료로써 항암제의 용량을 올리기 위해 어쩔 수 없이 결국 고용량 항암요법과 자가조혈모세포이식을 통한 치료를 동반해야 한다.



그렇다 보니 병을 예방하기 위해 '치료'를 하지만 그 치료가 동시에 또 다른 '후유증'과 '장애'를 낳게 하는 '병치레'를 하게 만드니. 이처럼 모순과 같은 병이 또 있을까... 대부분의 뇌종양 환자에게선 학력 저하, 기억력 감소, 정신 집중의 어려움 등 신경인지 기능의 저하가 올 수 있다고 한다. 정음도 피할 수는 없겠지... 그렇다면 방법은 하나, 그것을 최대한 줄여보는 것. 최대한 어긋남 없이. 나는 매일 같이 마음속으로 외친다. 다 떠 앉을 것이지만 최대한 어긋남 없이. '치료'도 중요하지만 사실 더 중요한 것은 '삶의 질' 일 테니까. 환우와 환우 가족이 가장 바라는 건 어쩌면 그것이 아닐까... 인간 다운 삶. 삶의 질.... 



아이는 밤새 두 시간도 못 잔 채 내내 기면 상태 혹은 일종의 섬망 증세로 보이는 행동을 보이다가 아침 5시가 돼서야 죽과 요구르트 하나를 먹고 조금 감정이 누그러졌다. 그 세 문장력은 더 늘어나 있어서 반가웠지만 나는 여전히 늘어난 문장력이 무섭다... 아이의 문장은 나를 아프게 만들기 때문에. 뾰족하고 날카롭게. 심장의 폐부를 찌르는 듯한 그런 문장이라서



왜 안 왔어

왜 불렀는데 안 왔어

엄마는 너무 늦어

엄마는 바쁘잖아

불렀는데 안 와 

나 버리고 갈 거야

엄마 나 버리고 갈 거야 

깨워 줘야 해 

나는 몇 시에 집에 가

나는 몇 시에 가

너무 늦어

몇 시에 가냐고! 

왜 대답을 안 해! 

엄마는 왜 안 와! 

혼자 가지 마

나 두고 혼자 가지 마 

나 깨워 줘야 해 

안 깨도 깨워 줘야 해.... 

내 소원이야. 



하루에도 몇 번씩 무너지는 순간은 이렇게 찾아 온다. 흘러 들어온 문장은 폐부를 찌른다. ....




새벽 내내 아이의 비위를 맞추고 기저귀를 간다. 물과 우유를 나르고 죽을 데운다. 간호사를 호출해 가래 석션을 견뎌내는 모습을 지켜본다. 새벽에 호출한 간호사는 피곤한 기색이 역력하다. 소아가 견디기 힘든 가래 석션 시 사용하는 길고 무시무시한 플라스틱 기구 대신 다른 방법은 없는지 나는 묻는다. 소아병동에서는 어떻게 하시냐고. 그녀는 대답한다. 여기는 신경외과 병동이라 자세히는 모르겠다고.... 호흡곤란을 호소하는 아이이지만 산소포화도는 정상이라는 사무적인 말투. 나는 이 모든 병원의 일상적인 장면들에서 묘한 분노를 느낀다. 분노는 점점 증가하고 있다. 세차게 급속도로. 아마 앞으로도 내 속에 쌓이는 병원과 병원 관계자들의 융통성 없는 사무적인 태도에 대한 은은하고도 사나운 분노는 계속되지 덜하진 않게 될까...그들은 치료를 하지 치유를 하려 하지 않으니까....참 안타깝고 통탄하며 분노가 차오르는 순간. 입술을 깨물고 그럼에도 나는 그들에게 고개 숙여 인사한다. 


잘 부탁 한다고. 감사하다고 .............. 





저 빌어먹을 가래 뽑을 때 사용하는 플라스틱을.... .소아에게 사용하는 무자비함을 나는..견딜 수가 없다....



35kg의 축 늘어진 몸을 잘 지키면서 침대 시트 가는 것을 돕거나 기저귀를 채우거나 아이의 옷을 갈아입히는 일. 목을 가누지 못한 채 자꾸 떨어지려는 머리 뒤 쪽의 엉망진창으로 너덜너덜해진 드레싱 부분. 새벽에 잠 못 드는 아이. 내내 한숨 자지 못하는 날이 이 주가 되어 가는 동안 피곤해서 나도 모르게 아이에게 혼잣말로 짜증을 내어 버린 나.... 


아침 7시. 밤 새 자지 못한 아이는 그제야 잠에 들었다. 잠든 아이를 쳐다보며 나는 혼자 중얼거린다. 



우리 몇 시에 갈까...

우린 몇 시에 집에 갈 수 있을까. 

늘 옆에 있다고 생각했는데, 내가 너무 늦었구나.

우리는... 서로에게 늦었을까..... 

미안해.... 미안해....

다 내 탓이다.... 다 내 탓이다... 



낮과 밤이 바뀌었다. 

우리의 삶의 순식간에 바뀌어버린 것처럼....



우리 몇 시에 갈까... 정음아... 미안해. 잘 자.. 





아이가 잠들 때 글로 감정을 휘발 시킨다. 그래야 버틸 있을 것만 같다. 

이제 시작인데... 지금부터 지치면 곤란한데. 이렇게 약해서야. 아직도 한 참 멀었다. 나란 인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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