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지 마, 버리고 가지 마

by 헤븐

81 병동 805호 2인실에서의 우리는 나름의 하루 루틴(?) 이 생겼다. 아침 점심 저녁. 우선 세끼를 챙긴다. 아이가 활동 없이 먹기만 해서 이미 위는 가스로 가득 차 있는 상태. 아이는 더부룩함을 느끼며 계속해서 말한다.



호흡곤란. 숨이 잘 안 쉬어져.

가래. 가래.....



아이의 얇고 여린 목구멍 속으로 깊숙이 투여된 석션은 이미 아이의 잇몸과 치아, 목 구석구석을 상처 입혀서 결국 침에서 피가 나올 지경이어서 나는 석션을 되도록 하지 않으려 여간 애를 쓴다. 그렇게 달래 가며 중간중간 투여되는 약을 챙긴다. 아침에 물수건으로 보이는 몸들을 깨끗하게 닦아낸다. 그럼에도 2주간 씻지 못한 아이 본인은 얼마나 답답할까... 원래 깨끗하고 깔끔하고 영특한 아이였는데. 정음은 이제 반 체념한 듯 가끔 한숨을 내쉰다. 약을 먹고 난 후, 초점 없는 눈동자로 허공을 응시하며. 좌우 돌림은 되지 않고 여전히 운동장애가 심하게 와서 허리와 목을 가누지 못한다. 주치의는 연신 재활과 휠체어에 억지로라도 태우라는 말만 하고 사라질 뿐... 2인실에서 병원이 해 줄 수 있는 건 영양제와 때에 맞춰 약을 투여해 주며 상태를 주사기와 제거된 카텔 터에 드레싱을 해 주는 일. 단지 그것뿐. 결국 정음과 내가 헤쳐 나가야 할 일들만 가득하다. 아마 앞으로도 그러할 것이다. 치료 이후 '치유'와 '삶의 질'을 위한 모든 것들은 아이와 내가 만들어 나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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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 대장인 너에게 정말 고마운데...나는 그런 너에 비해 너무 모자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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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음은 낮과 밤이 바뀌어 버렸다. 아니, 다시 말하자면 낮과 밤이 바뀌어 버리고 있는 중인 것 같다. 저녁 10시. 퇴근 후 그이와 함께 아이 재활을 위해 연신 땀을 쏟아가며 몸을 가누지 못하는 아이를 휠체어에 태워서 몇 시간을 운동을 시켰다. 그리고 그이는 귀가하고 남겨진 아이와 나. 그리고 나는 그때 알지 못했다. 내가 그렇게 변할 줄은 정말 몰랐다.... 어젯밤. 기어코 나는 '괴물'이 되어 버렸으니까. 갑자기 눈을 뜨더니 아이는 더위를 호소했다. 더위뿐 아니라 가래를 비롯한 기타 등등의 여러 대화를 걸어왔다. 다 받아주어야 했는데 나는 그러지 못했다. 나는 나를 이기지 못했다. 나는 이기적인 나를 이기지 못했다. 지난밤 1시간을 채 자지 못한 채 내내 허리와 목을 수구려가며 24시간 풀가동한 내 심신 체력과 에너지는 이미 만신창이에 고갈된 상태.... (브런치에 글을 쓰고 있는 게 신기할 정도.....)



내 목소리는 이미 변해 있었다. 그리고 아이에게 차가운 말을 해 댔다.



네가 자야 엄마도 잘 수 있어

나 안 자. 잠 안 와. 안 잘래. 내 애기에 대답만 해 주면 돼. 더워 호흡곤란. 가래. 엄마.

... 그래. 그럼 우리 운동하자




저녁 10시. 아이를 겨우 일으켜 팔다리를 주무르며 신체 재활을 시키다가 갑자기 허리와 목의 찢어지는 통증을 느꼈다. 그리고 나는 고개를 푹 숙이며 한숨을 쉬었다. 그리고 나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 미치겠다 정말.....



아이가 들었다. 그 이후에 아이는 갑자기 연신 문장을 쏟아냈다.



선생님 불러줘. 엄마 미쳐버리는 거 싫어

.... 아니야 엄마 안 그래.

선생님 좋아. 선생님이랑 같이 있고 싶어

...

아빠 불러줘. 아빠랑 같이 있을래.

... 정음아... 엄마 너무 졸린데 우리 좀 자면 안 될까

엄마는 내가 안 자면 미쳐버릴 거잖아.

.... 엄마가 정음이 불안하게 했구나...

호흡곤란. 숨쉬기 힘들어. 가래.

.. 목에 상처가 많이 나서 석션은 안 돼.. 그리고 호흡곤란이 아니라 배에 가스가 가득 차서 그래서 그래...

선생님이 엄마가 미치는 걸 알았으면 좋겠어.

.....

엄마 나 버리고 갈 거잖아

... 아냐 엄마 정음이 옆에 있잖아. 계속 있었어.

엄마 매일 늦잖아. 나 버리고 도망갈 거잖아

....

엄마 나 버리고 도망갈 거야?

... 아냐

나 버리고 갈 거잖아. 엄마 미쳐버릴 거잖아. 나 잠 안 와. 안 자면 나 버리고 갈 거잖아

아니라고 했잖아! 아니라고! 너무 졸려서. 너무 힘들어서. 너무 아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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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병실 안에 있는 화장실로 들어가 오열했다. 문 밖으로 아이의 목소리가 들렸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이미 나는 괴물이 되어 아이에게 호통치고 아이의 애착인형을 바닥에 내팽개치려 했었다는 걸 알았다. 차가워진 목소리와 거칠어진 행동. 몸을 가누지 못한 채 누워서 그런 미쳐버린 여자의 모습을 보고 있는 아이는 얼마나......... 힘들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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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리고 나는 말했다...


'.... 나 좀 살려줘........ 너무 졸린데... 또 안 자...... 너무 허리가 등이. 너무 아픈데 또 일어나 있어야 해.....'


남편이 달려왔다. 그리고 상황 종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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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 잠들었는지 모르게 새벽이 되었고 남편은 병원에서 바로 출근을 하고 나는 아이를 맞이했다. 그러나 이미 아이의 머릿속엔 어제의 내가 들어 있었다



나 버리고 갈 거지 엄마

.. 아냐. 어제 엄마가 너무 미안해

나 버리고 가도 돼. 나 버리고 가.

... 아냐... 엄마가 너무 미안해... 안 그래. 안 가.

나 버리고 갈 거잖아

....

내가 자야 엄마가 안 미쳐

....

찍 소리 안 하고 잘 거야. 그래야 엄마 안 미쳐

... 미안......


목이 메어서 자꾸 눈물이 나려 했다. 아이는 내 목소리를 감지했을까.



울지 마. 나 버리고 가지 마.



나는 말했다.


엄마, 갈 데도 없어... 정음이야말로 엄마 버리고 가지 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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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심시간. 누군가의 정오는 누군가의 낮잠 시간이다. 오전에 휠체어를 타고 몇 가지 재활을 하고 간식과 아침으로 소량의 죽과 소고기 뭇국 몇 스푼, 달걀찜과 요구르트 1개를 먹은 아이는 여전히 이 말을 하면서 어느새 잠들어 있다.



울지 마. 나 버리고 가지 마. 내가 자야 엄마가 안 미쳐. 아빠 불러줘. 아빠 보고 싶어. 아빠랑 같이 있을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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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 목과 등이 여전히 찢어지게 아프다. 그리고 오른쪽 침대엔 예쁜 숨소리를 내며 아이가 반쯤 입을 벌린 채 고이 낮잠을 자고 있다. 그리고 나는.... 노트북을 연다. 그리고 손가락을 움직인다. 눈물을 그칠 줄 모른다. 오늘 밤이 무섭다.... 그리고 중얼거린다. 나는 사람도 아니다. 나는 나를 용서할 수 없다. 뇌종양과 사투를 벌이는 중인 반불구의 아이 앞에서 나는 이미 괴물이 되어가는 중일까. 자격 없는 인간에게 도대체 신은 왜 이토록 착하고 철이 일찍 든 아이를 선물로 내려 주셨을까. 귀하게 여겨도 모자랄 아이의 존재를 너무 늦게 깨달은 어리석은 인간에게 신이 이렇게 큰 벌을 내리시는 걸까...



눈물을 닦는다. 오늘 아이의 약은 바뀌었다. 진해거담제로 바뀌었다. 석션 대신 효과가 있었으면 좋겠다. 그러면서 생각한다. 진작에 바꿔주지 왜 목에 연신 피가 나고 상처가 나서 혓바닥이 얼얼해진, 체념한 듯 숙련된 듯 자기도 모르게 입을 벌리고 눈물을 어느새 흘리고 있는 아이에게... 어른들은 언제나 너무나도 늦다. 아이에게 무자비한 괴물이 되어 버리는 어른... 괴물 같은 나.





시간이 약 일 텐데... 오늘 밤이 여전히 불안하고 두렵지만, 대신 나는 생각한다.

휠체어를 태우자고, 차라리 재활을 하자고. 이 악물고 몇 바퀴 돌다 보면 시간은 지나가 있겠지라고.....


.......



KakaoTalk_20240517_130822042_01.jpg 미안해... 그리고 그 말은 내가 하고 싶은 말인걸.... 울지 마.. 나 버리고 가지 마.



아이의 낮잠 시간. 유일하게 울 수 있는 병실의 시간.... 우리는 언제 퇴원할 수 있을까... 너의 몸은 언제 일어나 걸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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