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말 4차 항암에서부터 11월 말 5차 항암에 이르기까지. 정음이는 항암 이후 이상하게도 션트 기준숫자가 자꾸 어긋나 있었다. 그로 인해 뇌척수액이 빠지지 못한 채 뇌실에 차 버려 수두증이 지속 발생했다. 그로 인해 아주 심했을 땐 단기간 내 눈동자 사시 현상을 비롯하여 단기기억 및 인지 저하까지도 잠시 찾아왔다. 뇌 CT를 일주일 간격으로 계속 찍으며 신경외과 외래를 기다리는 동안 내내 좌불안석.... 이루 말할 수 없는 심장의 참담은 내내 이어져왔었다. 그렇게 12월은 금세 다가왔고 5차 항암 이후 CBC 수치들이 모두 급락기에 계속 혈액종양내과 외래를 보고 적혈구 혈소판을 계속 수혈하며 지내고.
12월 중순에 다다른 이번주가 돼서야 약간의 안도를 할 수 있었다. CBC 수치들은 조금씩 상승기에 접하고 ANC 수치도 500에서 1천에 가까운 숫자가 찍히고. 무엇보다 신경외과 외래 결과 우선 션트 리비전 수술을 보류한다는 선생님 결론을 들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수술을 해도 안 해도 좌불안석이다... 하지 않는다면 그 이야기는 반대로 수두증이 언제 또 생길지 모른다는 뜻이고 외관으로는 정음이가 이상 현상이 발생하는 걸 발견하지 못한다면 션트가 제 기능을 하고 있는지 여부를 판단할 수 없는 노릇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외과 주치의선생님은 '환자의 이상 현상이 발견되지 않으면 굳이 머리 건드리지 않는다'는 의견이 강하셨다...
무엇보다 나를 불안하게 만든 건 혈종과 외래 시 들었던 이야기였다. NS 외래 보고 바로 혈종과 외래 가서 주치의선생님께 정음은 션트 리비전 하지 않고 일단 지켜보는 것으로 결과 났다 하니 주치의 선생님 왈.
일장일단이 있어요. 나중에 고용량 조혈모이식 할 때 수두증 나면 그건 더 쥐약입니다.
일장일단, 항암 지속
사실 저 말 듣고 말을 이을 수 없이 잠시 일시정지 되었다. 도대체 어쩌라는 것인지. 외과적 의학적 판정을 일반인인 보호자가 할 수 없다. 다만 '의사결정' 이라든지 '의견'을강하게 개진할 수는 있을 터. 그럼에도 그 '의사결정'이라는건 어떤 객관적 근거에 의해 이해득실 상 환자가 수혜를 입어야 비로소 해야 하는 바. 뇌 CT로 일단 조금씩 호전을 보이는 뇌실 내 뇌척수액 분포도... 솔직히 정말 없어졌다고는 할 수 없는 수두증 컨디션이지만 일단 외과 판단에 의해 일단 증상 호전 되었다면 함부로 수술하지 않기로 했으니 그대로 일정에 맞춰 우리는 다시 항암을 진행해 나가는 것...
이해는 한다. 각 교수님도 보호자에게 알려줘야 하는 각자 과에 대한 '리스트'에 대해서 전언해야 했을 입장이라는 것을. 다만 NS 소견과는 달리 혈종과의 저 한마디가 내내 머리에 맴돌며 계속해서 불안은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는 중이다. 그러면서 우리는 그라신 주입을 끝으로 이번주 외래 방학(?)을 짧게 맞이했다. 다음 6차 항암 전에 맞이하는 아주 작은 병원 휴식기랄까.
휴식기를 맞이해서 집에서 작은 이벤트를 시행했다. 다름 아닌 '사진 찍기'였다. 사실은 이전에 모 정부기관 행정지에 사연 하나를 보냈고 그 사연이 당선되어 가족사진촬영권을 얻었다. 어쩌면 크리스마스에도 소아암병동에서 지내야 할 정음이를 위해. 그리고 엄마 없이 또 외할머니와 지내게 될 남은 첫째를 위해. 아이들께 너무 죄송하고 또 미안하고 늘 그런 손주들 보느라 자신의 건강도 돌보지 못한 채 살아야 하는 친정어머니를 위해. 아니 사실은 이기적인 나는 '나'를 위해 우리의 사진을 남기고자 했다... 정확히 말하자면 나의 두 사람의 멋진 모습을. 무엇보다 긴 암투병을 잘 견뎌내고 있는 정음이의 현재를 오롯이 담고 싶었달까.
너의 최애 애착인형과 누구보다 너를 생각하는 게 다름 아닌 네 쌍둥이 형제라는 것. 두 사람을 보면 이젠 그냥 눈물이 난다...
그 외 정음이를 위해 학교에서 만들기 재료를 하나 더 챙겨 오는 기특한 쌍둥이 형제 (그리고 감사한 아이의 담임선생님...) 우리만의 크리스마스트리에 전등 켜 보기도 하고. 활짝 웃어보기도 하고....
내년 새해가 지나면 바로 미국으로 안식년을 떠날 남동생이 정음이를 보러 달려와주었다. 지방에서 국립대 교수로 재직 중인 남동생은 수도권이나 집 근처로 학회나 일이 있으면 언제나 아이들을 챙기러 온다. 언제나 아이들과 누나 생각을 해 주는 엄청난 지원군 같은 존재... (그래서 한편으로 속이 상하기도 한다. 부족하고 비루한 나의 빈약한 생각은 그로 인해 시댁 생각을 하게 되고 말고. 여전히 자기들 살 궁리 하기 바쁜 사람들이니 소아암에 걸린 둘째 아들네 걱정은 안중에 없을 - 있어도 말 뿐인 포장식뿐이라는 걸 다시금 체감하게 될 뿐... 어쩌겠나. '그렇게' 사는 사람들은 바뀌지 않는다...)
병원 가지 않는 며칠이 너에겐 휴가같았겠지....
6차 항암은 입원
병원 방학은 길지 않다. 이번주가 지나면 입원 항암이 곧이다... 다만 차주 월요일 입원을 할지 말지 미지수. 그래도 외래 볼 때 입원 가방을 준비해 올 것. 판단은 정음 피검사 수치 등 컨디션 보고 결정되는 것. 이제 입원 가방 싸는 건 일도 아니게 되었다. 아주 간소하게 몇 가지 정음 관련된 필수 위생용품만 준비하면 되는 것. 그보다 사실은 6차 항암은 낮병동일 줄 알았는데 입원이라는 말씀에 여쭤보니 조혈모세포이식 전에 검사들이 많기에 입원을 한다는 걸 알게 되었다.
2025년, 다가오는 조혈모세포이식....
그렇다. 사실 10월부터 은은하게 내 마음을 좌불안석 불안으로 점철된 사유는 다름 아닌 이 고용량 항암과 조혈모세포이식 때문이다. 예상해 볼 수 있는 일정대로라면 6차 항암이 끝나면 남은 치료는 2회에 걸친 고용량항암과 조혈모세포이식이다. 급성백혈병을 비롯해서 정음이와 같은 악성뇌종양과 같은 고형암 질환은 표준용량의 항암치료로는 치료가 어려운 경우가 다반사란다. 정음도 마찬가지.... 그래서 정음이의 표준치료계획에도 마지막 두 관문은 고용량 항암과 자가 조혈모세포 이식이 셋업 되었다. 항암 초기 정음이는 히크만을 통해 이틀에 걸쳐 자신의 말초혈액의 조혈모세포를 채취했다. 모두 내년에 있을 조혈모세포이식 때문이다. 정음이는 고용량의 항암제로 인해 골수부전 상태가 올 터, 그를 위해 자신에게 미리 채집해서 냉동보관되어 있는조혈모세포를 다시 주입시키고 그것이 생착이라는 과정을 거치는 시기를 지내게 된다. 일종의 자가면역체계를 새롭게 구축해 내게 되는 것인데. 괜한 생각은 자꾸만 앞선다. 생착 전후로 부작용이 상당하다던데 괜찮을까. 고용량 항암전후로 정음이와 내가 앞으로 경험하게 될 또 다른 후폭풍들은 무엇일까. 무엇보다 이식편대숙주병들은 괜찮을까.... 이런 생각들.
남들은 연말과 새해를 준비하며 심기일전하고 부푼 희망과 새로운 꿈을 향해 달려 나갈 테지만 나와 정음은 다른 세계와 시간을 지낼 테다. 솔직히 연말이고 크리스마스고 새해고 나발이고 그런 숫자가 와닿지 않은 지 이미 오래되었다... 어린이날에도 병원에 있었고 여름휴가랄 것도 없이 병원에서 꼬박 양성자 치료 하느라 장마철에 매일 병원을 오고 갔었다. 어느새 가을이 되었고 그렇게 겨울을 맞이했던 우리다. 생일날에도 병원에 있었고 모든 연휴기간도 정음과 나는 병원을 오고 가며 숱한 약 냄새와 병동의 인파를 구경하며 지냈다. 그리고 아니나 다를까 곧 다가올 크리스마스에도. 입원하지 않음 그나마 아이의 마음이 편할까... 글쎄. 새로운 한 해가 지났어도 우리는 그저 다음 항암을 위해 나아가는 것뿐이다. 달력의 숫자는 이미 힘을 잃은지 오래다. 그저 무균실 입성을 위해 간병 교육도 다시 받아야 한다는 생각. 길자면 한 달을 꼬박 병원 무균실에 갇혀 지내야 한다. 마침 겨울 방학 기간이라 첫째 아이와 오랜 시간 떨어져 있어야 하고.... 친정어머니는 무슨 죄로 또 손주 몇 달간 밀착하며 보살피며 본인 병원 다니시고 살림 대신 해 주시고...
상대적 박탈감.
바보 같은 나는 어제 이상하리만치 상대적 박탈감에 사로잡혔다. 정음이 누워 있는 모습 지켜보면서, 식탁에서 문제집 펴 놓고 첫째 아이의 수학 연산 학습 시키고 국어 문제집 펴서 문해력 봐주고 남은 영어학원 숙제를 봐주고 학교 숙제와 준비물을 챙기고. 그러는 와중에 묘하게 이런 생각의 급류에 휘말리고 만 것이다.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까.... 언제쯤이면 우리는.... 언제쯤이면 너희들은...
나는 그렇다 쳐도 아이들을 생각하면 더더욱 그랬다. 다른 아이들이 가족들과 해외여행 가고 국내 여행 가고 크리스마스 선물 받고 파티하고 그렇게 좋은 공간에서 좋은 시간을 보내고 있을 때. 우리 아이들의 현재를 떠올렸을 때 이상하게 눈물이 나고 마는 것이었다. 네가 원하는 로벅스 충전. 네가 원하는 음식. 너희들 부족함 없이 키우려 그야말로 애씀과 분투로 점철되는 이 시절. 그럼에도 아무리 잘해주려 애써도 우리가 할 수 없는 한계와 장벽이 지금 너무 많아서 느껴지고 마는 상대적 박탈감.....
그저 곁에서 사랑으로 보듬으며 있어주는 것만으로 충분한 것이 '부모' 라지만. 말이 좋아 그렇지 현실적으로 엄마 입장에서 현재의 나의 아이들의 현실을 돌이켜봤을 때 지금 너무 부족한 것들 투성이 같기만 하다.... 치료 종결이 되면 나아질까. 솔직히 장담할 수 없다. 이미 생채기난 상처는 회복기가 필요하다. 우리에겐 재활도 필요하고 건강장애학생으로 등록된 정음의 넥스트가 솔직히 상상이 잘 되지 않는다....
그렇지만 한 가지 자명한 방향은 확실하다. 미래에 대한 상상은 언제나 잘 되지 않았고 넥스트도 흐릿해서 잘 보이지 않을지언정. 멈추지는 않는 것이다.....
멈추지 않는 것이다. 그냥 나아가는 것이다. 오늘 하루 나라는 인간이 할 수 있는 걸 해 내는 것뿐이다. 아이들을 웃게 만들고 조금이라도 정음이를 먹게 만들고. 두 아이와 잠들기 전에 시시콜콜한 우리만 아는 대화를 나누며 사랑한다는 말을 한번 더 해 주는 것. 한번 더 껴앉고 인사하며 아침을 맞이하는 것. 되도록 불협화음 없이 댁 내 현재의 화평을 유지하는 것...... 그러기 위해 인내하고말을 아낄 것. 아이들만 생각하고 정음이의 현재 치료와 후속 치료를 위해 병원을 오고 가고 간병하며 너와 함께 나아가는 것. 열체크와 대소변양. 너의 일거수일투족 상태와 현상들의 모든 투병 시간을 기록하는 것... 남은 아이를 어머니께 맡겨 두어도 너의 학습과 정서와 건강 상태를 지속 살피고 대화하는 것....
상대적 박탈감을 느껴도 괜찮다......
정음이와 나만 아는 이 힘겨운 투병 시절 속에서... 결국에 네가 오래 내 곁에서 살아내준다면. 그 어떤 정서적 결핍과 상처도. 괜찮다고 생각한 건 다름 아닌 정음이가 어제저녁에 웃으며 누워서 내게 조용히 했던 어떤 한 마디 덕분이었다.
맞서 싸워 엄마.
.............
엉엉 울었다..... 화장실에서 숨죽이며 샤워하며 울고 또 울었다..... 아이는 무슨 생각으로 그런 말을 했을까. 정음이도 말 못 할 아픔과 고통과 힘듦이 분명 있을 텐데. 그걸 여전히 나는 얼마나 알아주고 있는가. 암투병하는 환자 자신만큼 내가 아플 순 없을 텐데...... 다만 널 곁에서 밀착해서 24시간 간병하는 입장에서 같이 마음이 병들어 가면서도 동시에 환자와 같이 사투해 나갈 뿐인데.
스스로 다짐한다. 상대적 박탈감이 와도. 맞서 싸우자며. 여전히 울보지만. 좀 더 노력할 것이라고.
그러니 정음아. 새해 되면 더 큰 치료 앞두고... 너도 맞서 싸워 주기를.
맞서 싸우자. 우리.
다 괜찮다. 괜찮아질 것이야.
다음 주 항암도 파이팅. 이식 전 검사들도 무탈히........... 파이팅.
씩씩한 정음이는 이제 내 인생의 방향이 되었다...
- 악성뇌종양 수포세포종 투병 기록 -
2024년 5월
5/1 : 보행장애, 동네 병원 뇌 MRI 및 정밀 검사 소견서 입수
5/2 : 분당차 MRI 및 긴급 입원 (소아청소년과 - 신경외과 이동)
5/3 : 1차 개두술, 수두증, 션트 (스트라타 1.0)
5/8 : 수모세포종 진단, 2차 종양제거 개두술
5/9 : 중환자실, PICC 시술
5/10~22 : 일반실, 병동생활
5/22 : SMC 대리 진료, 긴급 전원, 퇴원과 입원 수속
5/22-23 밤부터 새벽까지. MRI, CT, X-ray 등 모든 재검사 진행
5/24 : MTX 항암제 1차 투입, 히크만, 골수검사, 요추천자
5/27~6/3 : 1차 항암 A플랜 입원
2024년 6월
6/6~15 : 응급실 재입원.... 열남, 균배양검사 - 중심정맥관 포도상구균 발현
6/20~25 : 2차 항암 B플랜 입원
2024년 7월
7/4 : 혈소판 수혈, 그라신 수치주사
7/7~10 : 조혈모세포 이식을 위한 조혈모 채집 입원
7/19 : 양성자 마스크 제작 및 모의 치료
2024년 8월
7/29~9/2 : 양성자 25회 차 (전뇌전척수 : 13회 차 / 이후 부분 양성자 12회 차)
이후 일주일 간격 피검사-수치주사-헤파린 주입 등 기타 중심정맥관 관리
2024년 9월
9/25~28 : 3차 항암 A플랜 입원
2024년 10월
10/2 : 빈크리스틴, A플랜 주입 끝
10/6~10/12 : 급 응급실 입원 (균배양검사 2회, 기타 항생제 및 수치주사, 적혈구, 혈소판 수혈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