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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루미 Feb 28. 2020

세계의 크기

어떻게 해야 사람들을 신뢰할 수 있을까?


'배신'이라는 단어가 머릿속에 크게 자리한 뒤로는, 모든것이 다 그것으로 해석되는 것 같다. 누구를 만나도 불신의 눈초리로 보게 된다. 처음엔 '그 사람들이 정말 나빠' 로 시작되었다. 그러나 모든 사람들을 그런식으로 해석하는 나를 발견하게 되니, 이건 틀림없이 내 문제구나 싶다.


의심하려면 멀쩡한 사람에게도 정말 수 많은 꼬투리를 잡을 수 있다. 수년만에 연락온 친구에게는 ' 얘는 내게 대체 뭘 바라고 연락을 했을까' 싶고, 잘 모르는 사람이 놀러오라고 하면 '날 불러서 어떻게 하려고?' 하는 생각부터 떠오른다. 사소하게는 아주 작은 말 한마디 한마디에 대해서도 그 저의를 의심하고, 앞뒤가 맞는 말을 하고 있는 지 체크를 한다. 이 모든것들이 아주 즉각적으로 이루어진다. 정신병이 따로 없다. 그런 나 자신을 인식하고 나서는, 이제 역으로, 모든것이 다 내 문제라고 생각을 하려고 했다. 하지만 생각을 그렇게 먹는다고 바로 바뀌지 않는다. 그리고 이제는 그러려고 하는 자체가 두렵다.


원래는 무작정 좋아하면 된다고 믿었다. 사람은 자신에게 상냥하고 진심으로 대하는 사람을 배신할 수 없다고, 받은만큼 돌려주게 되어 있다고 믿었다. 겁많은 성격에도 불구하고 홀로 많은 곳을 여행할 수 있었던 것도, 내심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낯선 핀란드의 밤 기차역에서 만난 그 청년도, 으슥한 인도의 뒷골목에서 만난 그 아저씨도, 무섭긴 했지만 그런 마음으로 대했고 온전히 좋은 기억으로 돌려받지 않았던가? 그러나 지금은 두렵다. 예전에는 잘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 조금 낯설고 두려울 뿐이었지만 이제는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친구들까지 모두 의심하고, 그들에게서 받을 상처에 두려워하고 있다. 그렇게 나의 세계는 자꾸만 갇혔다. 


사실, 작은 세계는 한동안 내게 꼭 필요했다. 나는 이미 모든 사람들을 잠재적인 적으로 간주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당시에는 친구도, 심지어는 심리상담사나 정신과의사도 나를 온전히 이해할 수는 없었다. 결국 세계를 닫고 혼자만의 시간에 갇혀 있을 필요가 있었다. 수많은 생각을 하고, 책을 읽고, 남들은 줄 수 없는 위로를 스스로에게 주었다. 누구에게나 한때는 그런 시간이 필요하다고 믿는다. 그리고 아마 세계가 다시 내게 커다랗게 열려 있을때도 때때로 그런 시간이 필요하리라. 그러나 너무 편안하다 못해 안락한 나만의 세계에서는 '삶'이 이루어지지 않는다. '삶'이란 누군가와 무언가를 나누는 것이 아니던가? 


이제 상처가 얼추 아물고, 드디어 나의 세계를 넓히려는 중이다. 세상은 여전히 무섭고 두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포기하고 싶음에도 불구하고, 나를 이대로 주저앉지 않게 하는 것은 역시나 사람들이다. 매몰차게 내친 친구가 그런 나를 이해해 준것. 근거없이 의심하고 까다롭게 구는 나를 사람들이 포용해 준것. 작은 세계에서 바둥거리는 내 안부를 종종 물어봐 주고 기다려 준 것. 그런 작은 사건들이 작은 신뢰의 씨앗이 되어 아직 아물지 않은 나의 상처를 조금씩 치유해 준다. 세상 사람들을 모두 내쫓을 순 없다는 사실을, 결국은 다시 나는 그들을 이해하고 사랑할 것이라고 말해 준다. 나의 이 쓰라린 배신의 상처를 야기한 이들도 지금이야 어찌 됐든 한때 사랑했다는 것을, 애정을 나누었다는 것을, 힘들었지만 그것마저도 거짓말은 아니라는 것을 알려주었다. 지금은 아프고 또 힘든 일이 생길지라도 다시 사람들과 애정을 나누게 될 것이라는 사실을. 그게 삶이란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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