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순신 장군의 처절한 9번의 시련
하늘이 장차 그 사람에게 큰 임무를 내리려 할 때는
반드시 먼저 그의 마음과 뜻을 고통스럽게 하고,
그 힘줄과 뼈를 괴롭게 하며, 육체를 굶주리게 하고,
그 몸을 궁핍하게 한다.
그가 하고자 하는 바를 어긋나게 하며
마음을 동하게 하여 성격을 참게 함으로써
그가 할 수 없었던 것을 할 수 있게 함이다 .
-맹자
우리들이 흔히 쓰는 말 중에 하늘이 그 사람에게 큰 임무를 주려고 할 때는 반드시 시련을 주신다고 하는 말이 있다. 이것은 『맹자』에 나오는 말이다. 사람들은 누구나 역경 보다는 순경을 원한다. 하지만 역사적인 위인들의 전기나 최근 성공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 보아도 반드시 시련을 극복한 뒤에 성공한 사례가 많다.
예전에 어떤 고전 강의를 듣는데 교수님께서 하신 말씀이 기억에 남는다. 젊어서 성공한 사람이 가장 불행한 사람이라고 말이다. 25년 가량 인사분야에 몸을 담그면서 이 말이 정말 와 닿는다.
젊어서 벤처를 창업해서 성공했는데 자신이 왜 성공했는지 정확하게 분석이 안 된 분들은 사업을 확장하다가 큰 실패를 경험하는 것을 많이 보았다. 그런데 고생하던 사람은 그 실패를 다시 극복할 수 있는데 쉽게 생각했던 분은 그 실패가 너무 커서 다시는 일어서지 못하는 경우를 많이 보았다.
공부를 잘해서 엘리트 코스로 쭉 달려 오던 분들도 자신이 잘 경험하지 못한 조직내 대인관계에서 실패하여 몇차례 이직을 하다가 깨달음을 얻고 다시 길을 찾은 사람도 있으나 찾지 못하여 좌절을 겪고 계신 분들도 많이 보았다.
사람의 에고나 무의식이라는 것이 그리 쉽게 바뀌지 않고 누구나 자신만의 무지와 아집이 있기 때문에 잘 하는 분야도 있지만 잘 못하고 계속 실수하는 분야도 있다. 그 실수하는 분야에서 보통 삶의 자극이 온다. 그것을 참아내고 극복하면 큰 길이 열리나, 그것을 참아내지 못하고 남의 탓을 하는 사람들은 결국 실패를 하게 되는 원리가 삶에서는 있는 것 같다.
시련 극복의 대표적인 인물이 바로 이순신 장군이 아닐까 싶다. 이순신 장군의 일대기를 보면서 몇번의 시련이 닥쳤는지 한번 살펴 보자.
첫 번째 시련은 28세에 첫 응시한 무과에서 말에서 떨어져 죽을 뻔한 상황이 있었다. 얼마나 심하게 다쳤냐면 단재 신채호 선생님의 『조선영웅전』을 보면 말에서 떨어진 장군이 죽은 줄 알았다고 한다. 그래도 일어나서 나뭇가지로 부러진 다리를 동여 매고 그 과목을 마무리 하였다고 하니 대단한 정신력이 아닐 수 없다. 그 뒤 4년동안 장군은 어떤 마음이었을까? 울분도 넘치고 신중하지 못했던 자신을 탓하면서 다시 공부에 공부를 더했을 것이다. 올림픽에서 메달획득에 실패하고 다시 준비하는 운동선수의 마음이 이렇지 않을까?
두 번째 시련은 잘 나가던 종사품(4급)의 전라도 발포 수군 만호에서 병조정랑 서익의 사사로운 원한에 의하여 파직되었을 때이다. 다시 복직이 되어서 종팔품(8급) 훈련원 봉사가 된 일이다. 이 시련을 통해서는 어쩔 수 없는 상황에서 받아들이고 참는 능력이 생겼을 것이다.
세 번째 시련은 39세때 권원보의 권관이 되어 오랑캐 두목 울지내를 잡고 훈련원 참군(정7품)이 되었으나 부친상으로 3년동안 벼슬을 쉬게 되었다.
네 번째 시련은 43세에 함경도 조산보 만호가 되고 녹둔도 둔전관이 되었으나 여진족의 기습을 받고 병사 이일의 모함을 받아 파직되어 백의종군을 하게 된 것이다. 이 때 미리 올렸던 꼼꼼한 보고서(장계)로 큰 죄를 받는 것을 면하였으나 좀 더 신중하지 못한 자신을 탓하고 더욱 더 신중해지면서 더욱 자신을 갈고 닦았을 것이다.
다섯 번째 시련은 1594년 한산도에 기아와 전염병이 돌아서 수많은 병사와 백성이 사망한 사건이다. 그래도 이순신 장군은 둔전을 설치하고 무과를 자체로 치러 어려움을 극복해 간다.
여섯 번째 시련은 1592년 전쟁 발발시 거둔 승리를 몇년 뒤 조정의 왕과 대신들이 폄하하기 시작하면서 결국 1597년 모함을 받아 파직되어 고문을 받고 죽을 뻔 하다가 겨우 살아나게 되고 백의종군을 하게 되었다. 장군의 일대기를 읽다가 보면 이 부분에서 울분이 쌓인다. 이런 어려움에서 장군은 무엇을 배웠을까? 나 같은 범인이 감히 상상하기 어렵다.
일곱 번째 시련은 1597년 옥살이를 하고 나오자 마자 자신을 보러 오던 어머님이 배에서 운명을 다하신 것이다. 하늘이 무너지는 느낌이 아니었을까? 자신이 잘 나가는 모습에서 부모님이 돌아가시길 누구나 바라지 않을까? 진짜 가슴이 찢어지는 괴로움이었을 것이다.
여덟 번째 시련은 1597년 원균이 칠천량 패전을 통해서 자신이 7년동안 가꿔온 수군을 모조리 바다속에 수장시킨 것이다. 수군의 복구를 위해서 위험을 무릅쓰고 2천리 길을 돌 때의 그의 마음은 어떠하였을까? 아무도 도와주지 않는 이 길을 나는 왜 가야 할까라는 고민이 많이 들었을 것이다.
이런 시련을 통해서 이순신 장군은 1597년 9월 명량에서 12척(기록에는 13척이라도 함)으로 수백척의 일본군을 쳐부수는 역사의 기적을 만들어 낸다. 앞서 겪은 수많은 시련속에서 신중해지고 깊은 통찰이 생기게 되고 군신軍神이라는 칭호를 받을 장군의 인품과 능력이 만들어지지 않았을까 한다.
그러나 시련은 끝나지 않았다. 아홉 번째 시련은 원한을 품은 일본군이 장군의 본가로 쳐들어가 셋째 아들 면을 죽인 것이다. 이 때 이순신 장군은 밤새 간담이 찢어지는 마음으로 통곡했다. 마음은 죽고 껍데기만 남았다고 일기에 적고 있다.
이순신 장군 앞에서 시련을 이야기하는 것은 번데기 앞에서 주름잡는다는 속어와 같을 것 같다. 역사상 어떤 인물도 이런 시련은 받아 보지 못했을 것이다.
장군은 결국 노량해전에서 일본군을 물리치며 자신의 할 일을 다 마치고 순국하게 된다. 장군의 살아온 모습이나 성품을 볼 때 은은한 희열을 느껴며 마지막 길을 가셨을 것 같다.
현대의 우리들에게도 세상은 끊임없이 시련을 주고 있다. 코로나19라는 전대미문의 전염병과 정체된 경제성장. 스마트 혁명이 일어나 물질문명이 극도로 발전하면서 개인주의는 심화되고 전문성이나 능력이 부족하면 바로 도태되는 엄청난 경쟁의 사회에서 살고 있다. 너무 숨이 막히게 돌아가는 현실에서 많은 사람들이 고통을 겪고 있다.
이런 현실에서 우리가 취할 태도는 무엇인가? 사회를 비판하고 웅크러 들어야 하는가? 아니면 내 이익을 위해서라면 무엇이든지 해야 하는가?
필자가 항상 생각해 오던 것인데 배운다는 자세로 임하면 어떨까 한다. 끊임없는 시련이 나를 배우게 하고 성장하게 한다는 자세로 임할 수 밖에 없을 것 같다. 스펜서 존슨이 지은 『누가 내 치즈를 옮겼을까』에 나오는 생쥐처럼 운동화끈 동여 매고 자신감 있게 뛰는 것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일 것 같다. 두렵기도 하지만 항상 마음속에 희망을 품고 달려 보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우리는 반드시 배우고 성장하게 되어 있다.
인생을 같이 가는 여러분! 부디 역경에도 포기 하지 않고 장군처럼 자신의 길을 가시길 간절히 기원한다.
그림 : 텐 오브 소즈. 위키백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