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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윤석 Jul 24. 2022

소인은 소인을 좋아하고, 군자는 군자를 좋아한다

당신이 양심적인 삶을 산다면 역사와 세상 사람들은 당신을 응원할 것이다

무엇을 소인이라고 하고 무엇을 군자라고 할까?


군자는 공익을 추구하고 사는 사람이다. 나와 남 모두의 이익을 위하는 양심에 따라 사는 사람이다.


소인은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는 남에게 피해를 주고도 별로 신경을 쓰지 않는 사람이다. 회사내에서 이런 사람이 한 명 있으면 주변이 초토화된다. 요즘 말로는 이런 부류의 사람들을 '소시오패스'라고 한다. 다른 말로는 '씩은 사과'라고 한다. 하나만 있어도 주변이 다 썩게 된다.


소인들은 말이 참 논리 정연하고 날카로운 경우가 많다. 그리고 목표달성능력이 좋다. 왜냐하면 그 말이나 행동이 누군가에게 피해 줄 것을 아예 고려하지 않기 때문에 그냥 질러버리는 경우가 많고 목표달성을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안 가릴 때도 많게 때문이다. 이럴 때 경영진도 같은 부류라면 그들의 옹호자가 될 우려가 많다. 몇 년전에 나온 미첼 쿠지. 엘리자베스 홀로웨이가 지은 『당신과 조직을 미치게 만드는 썩은 사과』라는 책을 보면 소시오패스들의 옹호자가 조직의 경영진일 경우가 많다고 이야기하고 있다.


가장 나쁜 경우는 리더 그 자체가 소인인 경우이다. 이런 경우는 어떻게 해결을 해 볼 방법이 없다. 선조를 리더로 모시고 있는 이순신 장군이 살았던 시대가 이렇지 않을까 한다.


소인의 가장 나쁜 점은 이익을 좋아하는 같은 부류의 인물들은 '너도 그렇구나.'라고 하면서 뭔가 편안함을 느끼는지 등용해서 쓰지만, 군자를 만나면 '저 자식을 만나면 내가 왜 위축되지.'라고 생각하면서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 인간이 나의 이익을 가장 먼저 훼손할 것이라는 생각에 군자를 밀어내려 최선의 노력을 다한다. 그래서 소인들이 모여든 곳에서 군자는 가장 먼저 떠나게 되는 것이다.


선조가 그랬다. 선조는 끊임없이 이순신을 좋아하지 않았다. 나머지 대신들도 그랬다. 이순신과 원균을 동급으로 만들어 서로 공을 탐하는 것 때문에 관계가 나빠졌다는 프레임을 만들었다. 이 프레임의 틀안에서 보면 이순신은 공을 탐하는 진짜 소인같이 보일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그럼 진짜 그랬을까? 조일전쟁 초기에 원균은 배를 다 바다속에 수장시키고 본인 배 1척, 부하들 배 3~4척해서 4~5척으로 이순신 장군과 전쟁에 참여하였다. 30여척을 준비한 이순신과는 차이가 많았다. 그리고 이순신 장군은 수급을 베어서 공을 인정받는 것 보다는 하나라도 적군을 죽이는데 노력하라고 했는데 원균은 수급을 모아서 보내는데 집중했다. 나중에는 우리나라 고기잡이들까지 죽여서 수급을 얻으려고 할 정도였으니 이미 말로 할 수 없는 수준이었다.


그런데 선조는 왜 이순신을 미워했을까? 자신은 아무 준비 없이 의주로 피난을 가게 되었을 때 준비를 철저히 해서 전쟁을 승리로 이끌었고 백성들의 신망을 얻게 된 것이 첫번째 이유가 같고, 두번째 이유는 자신과 대신들이 지시한 아마추어 적인 공격 전략을 이순신이 따르지 않았던 것, 그리고 동궁(광해군)이 전주에서 부르자 자리를 뜰 수 없다고 해서 가지 않았던 것 등이 아마추어 선조에게는 이순신이 자신을 무시한다는 느낌을 강하게 준 것 같다. 이것을 잘 아는 이순신의 반대파는 원균을 등에 업고 선조를 끊임없이 부추겨서 결국 이순신을 파직하게 하였다. 그 결과는 여러분이 아는 칠천량 해전에서 원균이 대패하여 그 자신과 수군 대부분이 죽게 된 것이다.


솔직히 이 정도 되면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고 이순신을 믿고 따라야 했던 것인데 나중에 보면 더욱 못된 선조의 모습을 실록에서 발견할 수 있다. 명나라 최고 지휘관이 이순신을 자주 칭찬할 때 대꾸를 안 하면서 이 모든 것이 명나라의 덕이라고 말하는 장면이 많았고, 이순신이 죽었다는 보고를 받았는데 아무런 감정동요조차 없는 선조의 모습, 그리고 나중에 공을 논할 때 억지로 원균을 1등공신으로 밀어 넣기까지 한다. 이 때 얼마나 열이 받았는지 사관도 실록에서 선조에게 “사정(私情)에 빠진 군주”라는 한 마디를 한다.


자신이 원균을 선택한 실수를 인정하지 않기 위해서 노력하는 왕과 대신들이 참으로 안 쓰럽다. 그 당시는 어떻게 넘겼을지 모르나 수만년 동안 역사에는 문제인물로 남을 행동을 하는 이유는 바로 자신을 객관적으로 보지 않고, 자신의 실수를 인정하지 않으며, 남 탓을 하는 욕심이 가득해서 벌어진 일이 아닐까 싶다.


이러한 일들은 오늘날에도 정부, 기업체에서 흔하게 발생하고 있다. 공자님도 하지 못한 일을 우리 같은 일반인이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그렇다고 좁은 소견으로 이익을 탐하다가 나가떨어지는 '소인'이 되고 싶지는 않은 것이 많은 분들의 생각일 것이다.


그래서 부족하지만 제안하는 것이 방어운전이다. 자신의 일에 최선을 다하면서 소인들에게 공격할 틈을 주지 않는 것이다. 항상 자신의 일이나 주변 관계를 점검하고 찜찜한 부분이 있다면 깊게 고민해서 해결하고 명확한 근거들을 잘 보관하는 것이다. 중요하다. 이순신 장군도 함경도 조산보 만호 겸 녹둔도 둔전관 일 때 여진족의 기습을 받고 병사 이일의 모함을 받아 파직되어 백의종군까지 하게 되었으나 이 때 미리 올렸던 꼼꼼한 보고서(장계)로 큰 죄를 받는 것을 면한 사례가 있다.


이글은 여러분에게 힘을 드리고 싶어 쓴 글이다. 필자에게도 열심히 양심적으로 살자는 말 밖에 답이 없다. 왜냐하면 인류의 역사가 그렇게 흘러왔고 군자중의 군자인 성인인 '공자'조차도 결국 소인들에게 밀려 났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당신이 양심적인 삶을 산다면 역사와 세상 사람들은 당신을 응원할 것이다." 라고 말이다. 당신이 양심적으로 살다가 피해를 보았어도 우리의 양심과 역사는 당신을 지지해 줄 것이다. <채근담>에는 군자는 한 때 적막할지언정 만고의 처량함을 취하지 않는다라는 내용이 있다. 누구나 죽는다. 죽을 때 아름다운 죽음(善終)을 맞이하려면 후회되는 바가 적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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