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순신, 즐거운 세금으로 최악의 순간을 반전시키다
12척으로 수백척의 배를 무찌른 명량해전! 조선 수군은 최선을 다해서 적을 무찔렀으나 약한 군세가 개선이 된 것은 아니다. 무기, 식량, 병사 그 무엇도 충분치 않았다. 이런 상황에서 적군이 다시 들이 닥친다면 조선 수군은 궤멸될 수 있는 상황이었다.
정말 답답한 이 상황을 이순신 장군은 어떻게 극복을 하였을까? 이러한 어려운 상황을 극복하는 방법만 배울 수 있다면 현대를 사는 우리들에게도 큰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한다.
명량해전이 끝난후 1년이 약간 넘은 시기에 조선수군은 수백척의 배를 확보하여 노량해전에서 마지막 결전을 치른다. 조카 이분이 지은 『충무공행록』에는 이 때 장군을 의지하여 생활하는 사람들이 수만호에 이르렀으며, 군세는 한산도의 10배에 이르렀다고 이야기한다. 정부의 도움도 없이 이런 것이 어떻게 가능했을까 항상 고민이었다.
이순신의 절친 류성룡의 『징비록』에는 이러한 어려움을 극복한 핵심적인 내용이 나와 있다. 그것은 바로 ‘해로통행첩海路通行帖’이다. 위기를 극적으로 반전시키는 한 수였다. 해로통행첩은 연해를 통행하는 배는 공사선 모두 통행첩을 가져야 하고 이것이 없으면 간첩선으로 간주된다는 정책이었다. 통행첩을 받으려면 배의 크기에 따라서 1~3섬을 군에 지급하게 했는데 열흘만에 1만여석의 곡식을 확보했다고 전해진다.
백성들도 수군의 보호를 안전하게 받을 수 있으니 즐거운 마음으로 세금을 냈다고 한다. 당시 피난민들은 배에 곡식과 재물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큰 부담을 아니었다고 전해진다.
지난 세월호 사건에 전국민은 분노하였다. 우리의 세금이 저렇게 허술하게 쓰여지고 있다고 말이다. 지금부터 400여년전 이순신 장군은 진도라는 같은 지역에서 나라를 위기에서 구해냈고, 현재의 어떤 사람들은 자신의 평안함과 살길만을 추구하다가 수많은 젊은 생명들이 죽어가는 것을 막지 못했다. 세금은 어떻게 써지느냐에 따라서 국민을 행복하게 할 수도 있고, 불행하게 할 수도 있다는 것이 이 두 가지 사례를 비교해 보아도 자명한 것 같다.
궁하면 통한다는 말이 있다. 이순신 장군의 ‘해로통행첩’이 바로 그것이 아닐까 한다. 이 정책을 바탕으로 식량을 확보하고, 다시 군사를 충원하였으며, 배를 만드는 기반이 되었을 것이다. 조직은 새로운 흐름을 타면 자연스럽게 다시 발전을 하게 된다. 이런 흐름이 결국 10배의 군사력과 수만호가 살 수 있는 터전을 만들 수 있었다.
최악의 순간이라도 생각을 하고 또 하면 그것을 해결할 좋은 방안이 나오는 경우가 많다. 우리가 이순신 장군에게 배울 것은 포기하지 않고 최선을 다해서 그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는 정신이 아닐까 싶다.
독자여러분이 지금 어떤 힘든 상황에 처해있다고 해도 최선을 다해 고민한다면 이렇듯 한줄기 빛은 어디든 항상 비추어 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