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은 이순신을 배웠고, 조선은 이순신을 잊었다
임진왜란이 끝난 후 300여년 후 결국 일본은 다시 조선을 침략하였고, 조선은 일본의 지배하에 놓이게 된다. 역사적으로 조선의 문물을 배우고 받아들이던 일본이 어떤 이유로 이렇게 강해졌으며 조선은 왜 또다시 점령을 당하게 된 것일까?
핵심은 배우려는 마음, 도전자의 마음을 일본은 가지고 있었던 것 같다. 조선에서는 그 이름도 희미해진 이순신 장군을 일본에서는 배우고자 노력하였다. 한 예로 1892년에 일본 육군 보병 대위 시바야마 나오노리(柴山尙則)가 지은 『조선 이순신전』이다. 당시에 조선에 와있던 그의 친구 석향생惜香生이 조선의 여러 자료를 참고하여 지은 『수군통제사 이순신전』을 받아 보고 이를 참고하여 책을 저술하게 되었는데 일본인의 입장에서 임진왜란의 실패 원인을 자신들의 수군水軍의 패배에 두고 있으며, 이순신 장군의 업적을 솔직히 표현하고 있는 책이다.
이순신을 존경하고 그의 전략과 전술을 연구하여 러일전쟁에서 러시아의 발틱함대에게 승리한 도고 헤이하치로는 승전 축하연에서 자신을 넬슨에 비교하는 것은 괜찮으나 이순신에게 비교하는 것은 감당할 수 없다는 이야기를 한 것으로 유명하다.
세계에 이순신 장군을 알리고 오류를 시정하고 있는 반크 이순신 사이트(yisunsinkr.prkorea.com)에 보면 역사 작가 시바 료타로와 해군전략 연구가 가와다 고오의 이야기가 나와 있다. 이들의 이야기를 보면 일본은 이순신을 연구했고, 조선은 이순신을 잊었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이순신은 청렴한 인물로, 그 통솔력과 전술능력으로 보나 충성심과 용기로 보나 이러한 인물이 실재(實在)했다는 자체가 기적이라고 할 수밖에 없는 이상적 군인이었다. 영국의 넬슨 이전에 있어서의 이름난 장수이기도 하거니와 세계 역사상 이순신만한 사람이 없으며, 이 인물의 존재는 조선에 있어서까지도 잊혀지지 않겠지만, 도리어 일본 사람의 편에서 그에게 존경심이 계승되어, 명치유신 기간에 해군이 창설되기까지 하였으니, 그 업적과 전술이 연구되어져야 한다. <역사 작가, 시바 료타로(司馬遼太郞)>
도고가 혁혁한 전공을 세운 것은 사실이지만, 이순신 장군과 비교하면 그 발가락 한 개에도 못 따라간다. 이순신에게 넬슨과 같은 거국적인 지원과 그 만큼의 풍부한 무기와 함선을 주었다면, 우리 일본은 하루 아침에 점령을 당하고 말았을 것이다. 대단히 실례인 줄 알지만, 한국인들은 이순신 장군을 성웅이라고 떠받들기만 할 뿐 그 분이 진정으로 얼마나 위대한 분인가 하는 것은 우리 일본인보다도 모르고 있는 것 같다.<일본 해군 전략 연구가, 가와다 고오( 川田功 )>
자료출처 : 반크 이순신 세계화 사이트(yisunsinkr.prkorea.com)
1653년 조선에 표류하여 14년간 억류 당했고 하멜표류기로 조선을 유럽에 알린 하멜의 일화를 보더라도 당시의 일본과 조선의 접근법이 많이 달랐다. 조선은 폐쇄적이었고, 일본은 보다 개방적이었다.
1543년 일본 규수 지방에 명나라와 무역을 하던 포르투칼 상선이 표류하였다. 명나라 사람이 배에 1명 타고 있었는데 이를 통해 일본인들과 필담을 나눌 수 있었다. 다네가시마의 영주 토키타카는 포르투칼인이 가지고 있던 화승총을 보고 화승총 2정을 지금의 가치로 10억원의 돈을 주고 구입하였다.
이 영주는 장인에게 시켜서 이 화승총을 복제하도록 하였는데 1년후 수십 정의 조총이 완성되었고, 그 뒤 전국으로 제조기술이 퍼져갔다. 일본인의 배우려는 마음이 돋보이는 장면이다.
일본과 조선의 차이는 이렇듯 적에게도 배우려는 마음이 있었다는 점에서 차이를 보이고 있다. 조선은 계속 그깟 왜국이라고 무시하고 있을 때, 일본은 힘을 키워 러시아, 중국에 승리하고 조선을 자신의 지배하에 둘 힘을 키우게 되었다.
일본은 제국주의 침략과 비인도적인 행위로 현재 역사의 비난을 받고 있다. 이 부분은 우리가 영원히 기억을 해야 할 부분인 것 같다. 하지만 16~20세기까지 이어진 일본의 끊임없이 배우려는 노력은 우리가 배워야 할 중요한 부분일 것 같다.
우리는 이순신을 잊었고, 그들은 이순신을 분석하고 공부했다. 영화 『명량』, 『한산 : 용의 출현』 등으로 이순신 장군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지만, 막연한 동경보다는 이런 위인의 삶을 우리가 삶속에서 작지만 재현해 보려는 노력이 필요할 때가 아닐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