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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간감 Sep 28. 2022

[어땠어요?]<사랑할 땐 누구나 최악이 된다>

부단히도 사랑했던 삶의 한 단락 <사랑할 땐 누구나 최악이 된다>


<라우더 댄 밤즈>와 <델마>로 칸의 주목을 받았던 노르웨이 감독인 요아킴 트리에의 작품이 작년 오스카와 칸에서 화제였습니다. <사랑할 땐 누구나 최악이 된다>가 그 주인공인데요. 엉뚱하게도 국내에선 <나의 결혼 원정기>의 정재영 배우가 기쁘게 뛰어가는 씬(택배 왔다 짤로 잘 알려진)과 국내개봉 포스터가 비슷한 걸로 입에 오르내리기도 했습니다. 쉽게 접하기 힘든 유럽 영화, 그 중에서도 노르웨이의 영화를 오랜만에 만나기 위해 택배를 받듯 기쁜 마음으로 극장으로 향했습니다.


20대 후반, 아직 혼란스러운 율리에는 사랑도 학업도 정착하지 못하고 떠도는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의학을 배우다 심리학으로 또 사진작가로 이런저런 일을 경험하던 율리에는 우연히 40대 만화가 악셀을 만나 사랑에 빠집니다. 또래와 다른 안정감을 주는 악셀이지만 이내 둘이 가진 시간 차는 율리에에게 묘한 거리감을 느끼게 하고 율리에는 일탈 아닌 일탈을 겪으며 또 한 번 삶의 파도에 휩쓸리기 시작합니다.


<사랑할 땐 누구나 최악이 된다>는 아주 묘한 경계에서 줄타기하는 영화입니다. 우리에게는 연어로 익숙한 노르웨이의 작품이지만 아주 친절한 연출을 가지고 있는 작품이고, 연인과의 사랑을 유쾌하게 다루는 로맨틱 코메디의 성질을 품고 있지만 아주 철학적인 대화가 오가죠. 또 국내 개봉관이 아주 적고 섬세한 감정을 다루는 작품이지만 아주 상업적인 말투로 관객에게 말을 걸어옵니다. 언뜻 아주 다른 향의 재료들을 조화롭게 묶어주는 건 바로 율리에가 가진 솔직함이란 조리법입니다. 우리가 익숙하게 봐왔던 워킹타이틀 표 로맨틱 코메디처럼 적당한 성장과 적당한 이별을 내어놓을 것 같던 영화는 사뭇 아주 깊은 고민들을 꺼내어 날 것 그대로 관객에게 전달합니다. 연애와 섹스, 출산과 육아, 시간과 죽음 같은 무거운 삶의 요소요소들을 거리낌 없이 묻고 답하기를 이어 나가죠. 율리에의 행동과 악셀과의 대화, 에이번스와의 교감과 주변인들을 통하되 뻔한 방식보다 때론 이기적인 율리에 본연의 모습을 생생하게 전달합니다. 번역된 제목처럼 우리가 사랑할 때 추해지던 그 모습 그대로 말이죠.


이런 율리에의 솔직함이 숨 쉬고 걷는 공간도 영화의 매력을 더합니다. 오슬로 3부작을 연출하며 대표적인 노르웨이의 감독이 된 요아킴 트리에의 장점은 이 작품에서도 걸음을 같이합니다. 북유럽의 따스한 빛깔을 잘 살려낸 촬영과 이를 잘 떠받쳐주는 영화의 배경은 뉴욕에 대한 환상을 만들어 냈던 90년대 헐리우드의 로맨틱 코미디가 그러했듯 노르웨이와 오슬로가 가진 매력을 전달하는데 성공했습니다. 


결국 <사랑할 땐 누구나 최악이 된다>가 좋은 영화로 관객의 품에 안길 수 있었던 건 단순히 율리에의 솔직함과 오슬로의 매력을 잘 잡아낸 것만이 아니었습니다. 삶의 한 단락을 고스란히 떼어내고 정성스레 다듬어 전달하는 것이 영화가 할 수 있는 귀한 일이란 것에 동의하신다면 이 영화는 그 일을 아주 잘 소화해낸 작품입니다. <벌새>와 <네 번의 결혼식과 한 번의 장례식>과 같은 영화를 떠올리시면 쉽습니다. 무례와 솔직 그 어딘가에 존재하는 율리에는 몇 번의 계절 동안 사랑을 통해 삶의 구석구석을 헤메입니다. 때때로 누군가의 손을 잡거나 놓거나, 자신과 상대를 속이거나 화내거나, 낯선 불행을 떠안거나 밀어내고 선택하는 그의 모습은 우리의 어제와 비슷해서 연민이 가고, 다르기에 돌아보게 만드는 묘한 경험을 함께하게 만듭니다. 설명하기 보단 대화하고 싶어지는 영화고, 본다기 보단 느끼게 되는 영화입니다. 상영관을 찾기에 조금 힘에 부쳐도 놓치지 마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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