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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청설모 Jan 18. 2024

'공부하기 싫다'는 편지를 받았다

모두가 훌륭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착각

"고등학교 시험에서 낙제를 했어요. 공부하는 게 너무 어려워요. 제 학업을 위해 기도해 주세요"


몇 년간 후원하고 있던 필리핀 소녀로부터 이런 내용의 편지를 받았을 때, 나도 모 본심이 고개를 내밀었다. 공부를 잘해야지. 너는 그 집안의 희망과 같은 존재잖아. 좋은 대학에 가서 제대로 된 직장을 얻고 빨리 가난에서 벗어나야지. 답장을 쓰기도 전에 이런 생각들이 줄줄이 이어졌다. 내가 제일 싫어하는 극성 엄마들의 모습과 다를 것이 없었다. 무의식 중에 잔소리로 가득 찬 답장을 쓰다가, 다시 정신을 차리고 뒤로 가기 버튼을 눌렀다.


몇 줄만 읽어도 공부에 대한 스트레스가 느껴진다


후원자들과 함께 현지를 방문하면 가끔 난감한 상황에 부딪다. 후원자들이 기대하는 어린이들의 모습과 실상에서 오는 간극 때문이다. 우리는 후원을 받는 어린이들이 모두 다 착하고, 성실하고, 모범적인 삶을 살고 있을 것이라 기대한다. 그러나 그들가끔 시험에 떨어지거나, 방황거나, 심지어 후원의 울타리에서 벗어나고 싶어 할 때가 있다. 그런 모습을 발견한 후원자들은 동행한 직원에게 스윽 다가와서 얘기한다.


"애들 모습은 한국이랑 똑같네요 ㅎㅎㅎ"


왜 우리는 후원 어린이들이 모두 성공할 것이라는 착각을 하는 걸까? 우선 후원 기관의 잘못이 크다. 원의 결과로 "잘 자란" 어린이들의 모습을 보여줘야 할 때, 우리가 으레 소개하는 케이스는 의사나 변호사, 기업인 등 사회적으로 성공한 아이들의 모습이다. 이 타이틀만으로도 더 이상의 설명이 필요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실제로 모든 아이들이 그렇게 자랐을까?


한 후원자가 개인적으로 태국에 놀러 갔다가, 우리 단체의 후원을 받고 졸업한 사람을 우연히 만났다고 한다. 그녀는 동네 작은 가게에서 일하고 있었다.  너무 기쁘고 행복한 모습으로 일하고 있는 그녀의 모습을 보며, 후원자는 지금까지 자신의 생각이 완전히 틀렸다는 것을 인정했다고 고백했다. 그는 '후원 아동이 행복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내심 '그래도 사회적으로 어느 정도는 성공해야'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그러나 태국에서 만난, '성공이라 볼 수 없는' 삶을 살고 있는 구멍가게 직원에게서도 충분히 행복한 모습을 발견한 것이다.


실제로 내가 목격한 졸업생들의 모습도 그렇다. 후원을 받는다고 해서, 모두가 대학을 졸업하고 집안을 먹여 살릴 '기둥'으로 자라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어떤 모습으로 살고 있든, 그들은 자신의 삶이 '완전히 변화되었다'고 말한다. 겉으로 보기엔 달라진 것이 전혀 없어 보일 수도 있다. 여전히 가족들에게 빚이 남아 있고, 여전히 공동묘지나 쓰레기 마을에서 살고 있을 수도 있다. 그러나 그들에게는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는 회복탄력성(resilience)이 있다. 이것은 지구 반대편의 누군가가 나를 지켜보며 끝까지 응원하고 있다는 사실에서 비롯된 자신감 덕분일 것이다.


'공부가 하기 싫다'는 내 후원어린이에게 나는 어떤 답장을 해줘야 할까. 우선, 네가 하고 싶은 일을 꼭 찾았으면 좋겠다고 말해야지. 포기만 하지 않는다면, 삶은 얼마든지 바뀔 수 있다고. 그러니 어떤 모습으로 살고 싶은지 천천히 생각해 보라고 말해줘야지. 외로움과 막막함 사이에 어떻게든 좋은 것들을 꾸역꾸역 끼워 넣어보라고. 그리고 꿈이 생기면 나에게 꼭 알려달라고 말해야지.


"맞아요 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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