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가 손꼽아 기다리고 있던 경력직의 입사였다. 그러나 입사 예정일 며칠 전에 비보가 날아왔다.우리가 찾던 경력을 갖춘 사람이 지원했는데, 연봉을 듣고 최종적으로 고사했다는 이야기다. NGO에서 일하다 보면 종종 이런 일들을 겪게 된다.
'아니, 그 정도 각오도 없이 지원했어?'하는 생각이 들다가도, 왜이렇게 우리는 월급을 적게 줄 수밖에 없는지 다시 고민해 보게 된다.나는 첫 직장 동기들을 만날 때마다 영리와 비영리 기업의 연봉 격차를 '눈으로' 확인하고 있다. "좋은 일을 할 거야"라며 야심 차게 회사를 박차고 나왔지만, 막상 인센티브를 받을 때마다 자동차가 바뀌는 전 직장 동기들의 모습을 보면, 부러움과 자기혐오의 양가감정이 동시에 밀려온다.
나도 후원자였을 땐, 기관 직원들의 월급에 대해 깊게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그냥 원래 이런 일 하는 사람들은 후원금에서 월급을 충당해야 하니 박봉일 수밖에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회사에 들어와 보니, 더러 이런 얘기도 듣게 된다.
"헐. 돈받고 하시는 일인 줄 몰랐어요. 그냥 봉사자인 줄 알았어요."
내가 풀타임 자원 봉사자인 줄 알았단다. 월급을 받는 직원들이 있는 줄 몰랐단다. 그럼 저는 메뚜기 잡아서 먹고 사냐고 되묻고 싶은 것을 꾹 참았다.
"여기 직원들 만나면서 놀란 게 뭔지 알아? 다들 생각보다 고학력이더라고~ 아니 좋은 대학 나온 사람들이 어떻게 여기서 일해애~?"
60대 후원자분께서 웃으시며 이 얘기를 할 때 나는 그냥 울고 싶어졌다. 사회적 통념 상, 우리는 비영리단체가 돈을 쓰는 걸 용납하지 못한다. 그래서 소위 말하는 '고급 인력'들이 이곳에서 일하는 것도 말이 안 되는 것이다. 돈을 쓰는 게 업무인 마케터로서 이런 사회적인 인식을 뛰어넘는 것이 가장 어렵고 힘든 일이라는 것을 느낀다.
"제 기부금이 광고비로 쓰이지 않았으면 합니다."
NGO에서 마케팅을 하며 제일 많이 들었던 피드백이다. 어떤 마음으로 이런 이야기를 하시는지 나는 100% 이해한다. 내가 낸 기부금이 온전히 필요한 곳에 쓰이길 바라는 마음에 깊이 공감한다. 그러나 그럴 때마다 나는 이렇게 설명할 수밖에 없다.
"후원자님의 기부금 만 원 100%를 어린이들에게 쓸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중 20%를 광고비로 쓰기로 하고, 새로운 후원자 네 명을 찾았다면, 결과적으로 어린이들은 4만 원의 혜택을 받게 됩니다. 제가 하는 일은 후원자님이 하는 선한 일의 임팩트를 키우는 일이에요."
한국의 기부금 총액은 연간 15조 원으로, 조금씩 늘어나고 있는 추세이다. 그러나 이 규모는 여전히 국내 총 생산(GDP)의 0.8% 규모에 머물러있다. (미국은 2.2%다) 비영리단체가 돈을 쓰는 것을 꺼리게 된다면, 능력 있는 사람들을 채용하기 위해 '사명감'만을 강조해야 하며, 좋은 매체에 광고를 하는 기회도 만들 수 없다. 결과적으로 기부 시장의 파이는 커질 수 없게 된다.
감사한 일은, 후원을 오래 경험하신 분들 중에는 이 상황에 공감하며 기관 운영만을 위한 '운영비 후원'을 해주시는 분들이 있다는 것이다. 전기세를 아끼기 위해 화장실 불도 끄고 다니는 직원들을 짠하게 여겨, 매년 전 직원들에게 근사한 한 끼를 쏘시는 후원자도 있다. 여전히 갈 길이 멀지만, 그래도 아주 조금씩은 변하고 있는 것 같다. 물론 변화의 물결을 위해선, 기부단체의 재정 투명성과 신뢰도 확보가 우선되어야 하겠다. (사고치자 말자 엔지오 친구들아(?) 제발 ◜◡◝)
"좋은 일"을 하는 사람들이 좋은 대우를 받았으면 좋겠다. "좋은 일"의 파이가 커질수록,언젠가는약자(노인)가 될 우리 모두의 사회가 좋아질 것이다. 사명감과 열정만으로 "좋은 일"을 계속하기엔 인생이 너무 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