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드게임을 챙겨서 출근하는 나의 뒤통수에 엄마의 장난 섞인 말이 꽂혔다. 팀원들과 함께 점심시간에 보드게임 하는 일에 빠져, 게임 몇 개를 당근마켓 키워드 알림으로 등록해 둔 날이기도 했다. 한때는 퇴근 후에 회사 근처 맛집들을 돌아다니느라, '회사에 먹으러 다닌다'는 소리를 듣기도 했고, 몇 해 전에는 다 함께 뜨개질에 빠져서 점심시간마다 뜨개질 공방이 열리기도 했다.
요즘 우리팀은 보드게임에 진심이다
나도 회사 사람들과 아무것도 공유하지 않던 때가 있었다. 내가 어디 사는지, 주말엔 뭐 했는지조차 알려주기가 싫었다. 회사 사람들에게만 공유하는 용도로 SNS 계정을 따로 팠던 적도 있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니, 나의 사적인 정보들이 내 약점으로 작용하는 것이 싫었던 것 같다. 집이 회사와 가까우면, 비상시에 나와서 일하라고 시킬까 봐 알려주기 싫었고, 주말에 교회를 갔다고 하면 갑자기 '목사가 세금을 안내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냐는 질문이 쏟아지는 게 싫었다. 그래서 나는 점점 폐쇄적이고 고립되어 갔다. 업무 이야기를 제외하고 하루종일 아무 말도 안 했던 날도 있었다.
그러다 이곳에 오니, 갑자기 이 사람들이 아무렇지 않게 무해하고 뻔뻔한 얼굴을 하고 내 철옹성을 부숴버렸다.
연이어 쏟아지는 사적인 질문 폭격을 받으며, 어머나 참 무례하기도 하지.. 하면서도 어느새 하나씩 다 대답을 하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그렇게 신상조사가 끝나고 나니 며칠 뒤엔 회사 주차장에서 패드민턴 대회를 할 예정이니 응원도구를 같이 만들잔다. 단체복을 맞춰 입고, 정식으로 네트를 깔고, 구석에서 인터넷으로 생중계(근데 시청자 n명)까지 했던 패드민턴 대회는 성황리에 종료됐다. (너무 뜨거운 열기에 시끄럽다는 민원이 들어와서 대회는 1회를 마지막으로 사라졌다.) 정신을 차려보니, 이런 리트리버 같은 사람들 사이에 동화되어 나도 같이 퇴근 후에 영화를 보러 다니고, 맛집 투어를 하고, 주말엔 국내 여행을 같이 다니면서 살아가고 있었다.
회사 동료는 절대 사적으로 친해질 수 없다는 어른들의 말을 비웃기라도 하듯이, 우리 회사는 신나게 각자의 삶을 침범하고 같이 즐거워하고 같이 아파한다. 많이 아파서 오래 재택근무를 해야 하던 시절, 몇몇 동료들은 오지 말라는 집 앞에까지 굳이굳이 찾아와서 우리 엄마와 함께 울었다. 요즘 팀장님은 독거청년의 노후가 걱정되시는지 부동산 투자에 대한 유튜브를 갠톡으로 보내신다. 이사를 앞둔 나에게 누군가는 모 브랜드 티비를 사라고 푸쉬하고 있고, 누구는 거리뷰로 주변 골목길을 찾아보며 치안을 대신 걱정해 준다. 여기는 '누가 많이 아픈데 병원비가 모자란다'는 소문이 돌면, 전 직원이 모금을 해서 병원비를 보태주는 곳이다. 이렇게까지 사생활을 다 공유하는 사회 집단에 속한 적이 없어서 지금도 당황스러울 때가 있지만, 이들의 진심을 알기 때문에 이 관심이 싫지 않다.
학창 시절, 야자를 버틸 수 있었던 힘은 하굣길에 사 먹었던 초코 푸딩이었다. 회사 친구들은 어느새 초코 푸딩과 같은 존재가 됐다. 이럴 계획은 진짜 아니었는데, 어쩌다 보니 이렇게 됐다. 이왕 이렇게 된 거, 힘들 때마다 '동료'라는 힘센단어에 맘놓고 기대어볼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