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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청설모 Feb 16. 2024

과장은 누구한테 물어보죠?

신입사원 3일 차, 개발자 출신의 대리님으로부터 숫자로 꽉 채워진 엑셀 파일을 받았다. 셀을 클릭해서 열어보니, 걸려있는 수식만 6줄. vlookup 정도만 활용했던 나에게 그곳에 적힌 모든 함수들은 그저 외계어였다.


"그거 보시고, 어떻게 보기 좋게 고치면 될지 고민해 보세요."


그렇게 떨어진 과제 앞에서, 수식을 네이버에 검색해 가며 한 시간을 끙끙댔다. 그렇지만 아무리 검색해 봐도 이게 어떤 목적의 파일인지, 무슨 지표를 보여주고 싶은 건지 알 수가 없었다. 다시 대리님에게 메신저로 SOS를 보내자, 1초 만에 답장이 왔다.


"포기가 너무 빠른 거 아닙니까."


아니 뭐 제대로 알려주지도 않고 구박하냐! 애초에 이제 막 대학 졸업한 애한테 데이터 분석 파일의 개선점을 찾으라고 하는 게 말이 되는가.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개떡 같은 업무지시였지만, 그때는 너무 어려서 감히 따져볼 생각도 못했다. 그냥 나중에 절대 저런 선배는 되지 말아야지 다짐하며, 씩씩거리면서 야근을 했더랬다.


그렇게 사회생활 10년 차를 넘긴 지금, 나는 어느새 그때의 사수보다 훨씬 나이가 많은 중간관리자가 되어있었다. 쥬니어 시절엔 질문하는 것이 어렵지 않았다. 모르는 게 당연했고, 같은 질문을 반복하지만 않는다면 사수를 괴롭히는 게 미안하지 않았다. 그렇게 새로운 것들을 배워가는 과정 재밌었고, 6년 차쯤 될 땐 이제 내가 다 안다고 생각했다. 러다가 연차가 점점 더 쌓여가니 내가 아는 게 1도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밑천이 드러난 느낌이라고 하는 게 더 정확할 것이다.


지식이 쌓일수록 자신감이 하락한다는 것은 '더닝 크루거 효과' 이론으로도 알려져 있다.  처음 이 이론을 들었을 때, 무릎을 치며 공감했다. 그런데 문제는 '절망의 계곡'에서 더 나아가기 위해, 주변에 도움을 요청할 연차는 이제 아니라는 것이다.

한때 위로가 됐던 더닝 크루거 효과 그래프인데 실제 그래프는 완전 다른 모습이라고 한다. 그냥 공감짤로 여겨주시길

사원 시절, 상사에게 뭘 물어봤을 때, '모르겠네'라는 대답을 듣는 게 제일 싫었다. 모르는데 아는 척하는 건 더 꼴 보기 싫었다. 근데 이제 나도 '확신 없는 것들'이 점점 많아지기 시작한다. 계속 바뀌는 마케팅 관련 툴, 공식을 알 수 없는 온라인 광고 효율, 이제 진짜 알 수 없는 Z세대 갬성 등등.. 쏟아지는 새로운 정보들 속에서 이걸 누구한테 물어봐야 할지 몰라 발만 동동 구르고 있는 모습이었다. 그와 동시에 사원 시절에 마음껏 미워했던 '모르겠다 팀장'님들에게 죄송한 마음이 들었다. 이래서 다 겪어봐야 한다고 하나보다.


이대로 모르는 채 지내는 건 너무 가오(?) 떨어지는 일인지라, 원들과 같이 스터디를 하기 시작했다. 다 같이 모여서 GA4 강의를 듣고, 브랜딩 관련 영상을 보고, 실무진들의 강의를 들으며 인풋을 쌓고 있다. 여전히 확신이 없는 것들 투성이지만, 고민되는 것들을 빨리 모두에게 공유해서 집단 지성의 힘을 빌려본다. 나도 이런데, 리더십들은 또 얼마나 힘들까. 그래도 모르겠다고 하지 말고 결정은 잘 내려주셨으면 좋겠다. ◜◡◝... 일단 나부터 잘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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