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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청설모 Mar 07. 2024

어려운 길이 우리에게 어울려

우리도 마케팅 예산 좀 팍팍 써보고 싶다는 생각을 종종 한다. 영리 기업에서 몇 억짜리 마케팅 캠페인을 집행하고 있는 친구들의 모습들을 볼 때마다 드는 생각이다. NGO라는 업의 특성상, 우리는 산을 넉넉하게 쓸 수 있는 형편이 아니다. 그러나 수치로 성과를 증명해야 하는 것은 다른 회사들과 동일하다. 말 그대로 500원으로 피자를  만들어야 하는 격이다. 그런데 이게 아주 불가능한 이야기는 아니다. 의외로 세상에는 대가 없이 좋은 일을 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옆자리 동료가 새 캠페인을 기획하며 굿즈 제작에 난항을 겪고 있었다. 문제는 늘 그래왔듯이 '비용'이었다. 가격을 후려쳐서 이상으로 할인해 줄 수 있는 브랜드를 찾아야 했다. 그 와중에 제품 퀄리티와 디자인 어느 것도 포기할 순 없었다. 우리는 맨땅에 헤딩하듯이 여러 업체에 제안서들을 보냈다. 이렇게 제안서들을 보내다 보면 "엇 사실 저희도 좋은 일 하고 싶었어요. 저희랑 합시다."라고 답하는 곳 등장한다. 이번에도 한 브랜드가 손을 들었다. 가벼운 발걸음으로 체와 미팅을 하러 떠나는 동료의 뒷모습을 보며 생각했다.


'음, 역시 어려운 길이 우리에게 더 어울려'


만약 우리에게 마케팅비가 넉넉했다면 어땠을까. 이런저런 제안할 것 없이, 그냥 퀄리티 좋은 회사들 몇 개를 선정해서 가격 경쟁을 통해 계약을 하면 된다. 만약 우리 회사에 마케팅 구루(guru)가 입사했다면 어땠을까. 하는 캠페인마다 대박이 나며 새로운 성공 신화를 써 내려갔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돈도, 사람도 부족한 우리는 매번 캠페인을 함께 도와줄 협업자들을 아주 간절한 마음으로 찾는다. 그 과정에서 혜성과 같이 등장하는 조력자들이 있다. 그들은 때론 재능 기부로, 때로는 말도 안 되게 적은 비용을 받고 우리와 함께 프로젝트를 만들어간다. 좋은 일에 동참하게 되어 기쁘다는 말과 함께.


처음 이곳에 입사했을 땐, 이렇게 적은 숫자의 사람들이 큰 사업을 벌이는 것이 신기해 보였다. 그러나 일을 시작하고 바로 깨닫게 됐다. 이 일은 우리만 하는 게 아니다. 우리가 벌이는 캠페인과 사업들은 여러 분야에 있는 평범한 사람들이 지탱해주고 있다. 돈과 어벤져스(?)가 있다면 좀 더 빠르고 쉽게 갔겠지만, 지금처럼 결과물이 소중하고 고맙진 않았을 것이다. 구불구불한 길을 헤쳐가며 함께 걸을 사람들을 찾는 것이 우리에겐 더 어울린다. 멀리 돌아가는 것처럼 보여도, 이 과정에서 얻게 되는 사람들은 우리의 소중한 자산이 된다. 곡선 길인 줄 알았는데, 지나고 보니 직선이었다는 것을 인정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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