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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청설모 May 25. 2024

위장에 빵꾸가 났다

나이가 들면서 건강검진 소견지의 길이도 점점 길어진다. 이번에는 식도염+위궤양 직전 단계라는 진단이 나왔다. 이것에 대해선 할 말이 많다. 는 꽤 좋은 식습관을 갖고 아왔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이 모든 걸 지키며 살아왔다 - 1. 과식 안 함 2. 야식 안 먹음 3. 맵고 짠 거 싫어함 4. 세끼 잘 챙겨 먹음 5. 천천히 먹음 6. 먹고 바로 눕지 않음 6. 술 안 먹음 7. 커피 안 마심


내과에 가서 여기서 더 뭘 해야 하냐며 억울함을 토로하니 의사 선생님은 방긋 웃으시며 "스트레스받으면 먹는 거 다 소용없어요^^"라고 하셨다. 스트레스를 받으면 위산이 쫙쫙 나오고, 위 점막에 상처를 입히고, 그런 상태에서 또 위가 움직이면서 상처가 커지는 악순환이 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아빠 같은 얼굴로 "회사에서 일이 잘 안 풀려도 그러려니 하세요"라고 하셨다.


나는 또다시 억울했다. 나 스트레스 안 받는데? 금의 삶에 꽤나 만족 중인데 스트레스라니요? 본인이 자각하지 못하는 스트레스도 있나요?  얘기를 주변에 하고 다니니 친구들은 내가 틀렸단다.


"너 층간소음 때문에 잠 못 잔다며"

"너 예민해서 밖에서도 잠 못 자잖아"

"맞아, 쟤 옛날에 내가 쳐다만 봐도 시선 느끼고 잠에서 깨더라"

"너 운동하러 가면 항상 과긴장 됐다는 얘기 듣는다며"

"옛날에 공황도 왔었잖아."


주변인들이 바라보는 나는 굉장히 스트레스에 취약한 사람이었다. 내 멘탈이 이렇게 개복치라니. 내가 스트레스 관리를 이렇게 못하는 사람이었다니..? 다시 위산이 분비되는 것만 같았다. 그러다가 다른 주치의 선생님께서 재밌는 얘기를 해주셨다.


"님이 척추수술 하셔서 그래요."


어릴 때 했던 척추수술 덕분에 내 등뼈는 지금 전부 철심으로 고정되어 있다. 척추의 나열이 고정되고 뒤틀린 사람들은 자율신경계에 영향을 줄 수밖에 없단다. 척추와 두개골은 뇌와 척수로 이뤄진 중추신경계를 담고 있고, 우리 몸의 기능을 자율적으로 조절하게 하는 자율신경도 중추신경계에서 뻗어나간다. 여기에 문제가 생기니, 자연스레 자율신경과 연관된 내부 장기에도 이상이 생기는 것이다.  


특히 척추엔 교감신경이 위치하는데, 교감신경 활성화되면 몸이 긴장을 느끼는 상태가 된다. 불안감도 커지 계속 과하게 항진되면 공황장애가 생길 수 있다. 여기까지 들으니 그간의 내 질병 히스토리가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다 척추 때문이었어!?


이미 수술은 했고 어떡하겠는가. 그렇다고 평생 이렇게 살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울상을 짓고 있으니 선생님께서는 말을 이어갔다.


 "그래서 호흡 운동을 잘하셔야 해요."


나처럼 척추가 틀어져있는 사람은 호흡 근육(횡격막)부터 문제가 생긴다. 이럴 땐 호흡을 깊이 해서 횡격막을 자꾸 움직여줘야 한다. '숨쉬기 운동'이 진짜 운동이었다니... 어찌 됐건 식습관도 멘탈 문제도 아닌 근골격의 문제가 원인이라는 걸 알게 되니 마음이 편하다. 이제 방향성을 찾았으니 좀 더 신경 써서 숨쉬기 운동을 해야겠다. 부디 올 가을즈음엔 다시 밀크티를 마실 수 있게 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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