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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청설모 Sep 05. 2024

나는 인간이 진짜 싫어

"나 이제 NGO로 이직할 거야"

처음 동기들에게 이직의사를 밝혔을 때, 나를 가장 잘 알고 있는 언니 오빠들은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되물었다. "니가? 동물이 아니라 사람을 돕는 곳으로 간다고?" 다른 사람이었다면 왜 나를 그런 시선으로 보느냐고 열을 냈겠지만, 평소에 "인간이 싫다"고 외치던 사람이 나였으니 그건 응당 나올법한 반응이었다. 그러게. 왜 매일 물고 빨고 애정했던 동물들이 아니고 어린이였을까. 아이들을 썩 좋아하는 것도 아니면서.


그러다가 한 친구가 최근에 또 다른 분석을 내놓았다.

'너는 사실 인간을 싫어하는 게 아니라, 인간을 너무 좋아해서 싫어하는 것 같아'

이건 또 무슨 소린가. 이야기를 들어보니, 내가 평소에 인간 세상에(?) 너무 신경을 쓴다는 얘기였다. 반도체 공장에서 일하다가 간이 녹아버린 청년의 기사를 공유하고, 정치인들의 부당한 일에 대한 국민청원 링크를 퍼 나르고, 음주운전으로 사망한 아이를 위한 탄원서를 쓰고, 전쟁이 난 지역 어린이를 후원하고, 가리왕산 복원을 위한 서명에 동참하고, 노동자들을 죽게 만든 식품사의 제품을 불매하고, 무차별 폭행을 저지르는 범죄자들의 모습에 분개하며 산다는 것이었다. 눈을 감고, 휴대전화를 끄면 닿지 않을 완전한 타인의 불행에 개입하길 좋아한단다.


"남들은 안 그래??"

"대부분은 안 그래..."

나는 여기서 약간 충격을 받았다. 내가 오지라퍼 기질을 갖고 있다는 건 알았지만, 그래도 다들 이렇게 사는 줄 알았다.


누군가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우리가 기후변화를 피해 갈 수 없는 이유는 80억 명이 다 같이 조별과제를 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찰떡같은 비유긴 하지만, 이것 때문에 나의 노력이 의미 없다고 여길 필요는 없다. 물론 일개 회사원인 내가 아무리 노력하고 애써봤자 세상은 바뀌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빌런들 때문에 답이 없으니 그냥 이렇게 다 같이 침몰합시다'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눈에 밟히고 마음에 걸리는 순간이 있다면, 외면하지 말고 손을 뻗어야 한다. 내가 움직여도 세상은 바뀌지 않는다는 무력감이 찾아올 때면, 내가 어떻게 바뀌었는지를 생각해 보면 된다. 나도 누군가의 외침으로 인해 변화된 사람이니까.


다시 말하지만 나는 인간이 정말 싫다. 마치 세상은 악인의 형통을 위해 존재하는 것 같다. 선한 사람들은 항상 지는 것처럼 보이고, 악인들은 수치를 모르고 점점 더 큰 목소리를 내는 것 같다. 이럴 땐 어쩌라고 정신이 필요하다. 세상이 나쁜데 어쩌라고. 그래도 나는 오늘 옳다고 생각하는 일을 계속해야지. 이토록 미약한 내가 매일 한계와 무기력을 마주치더라도, 실수와 후퇴를 거듭하더라도, 계속 올바른 선택을 하면서 살아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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