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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채민씨 Jul 04. 2019

우리 삶에 해 뜰 날은 언제든 다시 온다

<수영장으로 간 남자들>을 보고

스포 없는 간단한 리뷰 : 살다 보니 찌질해진 아저씨들의 유쾌한 집단 힐링 프로젝트. 예상보다 훨씬 빵빵 터졌다. 드립은 넘지 않을 선 직전일수록 멈출 때 팡 터지는 게 있는데, 의외에 포인트에 종종 있다. 한 편에 7~8명의 스토리를 보여주다 보니 영화가 조금 길게 느껴는 면도 있다. 11년 동안 캐릭터를 쌓아온 어벤저스 시리즈도 길게 할 수밖에 없었던 걸 생각하면, 넘어갈 만하다.


아래에서부터는 스포 있는 리뷰




시작부터 별 이야기 아니라고 한다. 정말 별 이야기 아니다. 상황이 힘든 아저씨들이 수중 발레 하면서 힘을 내고, 금메달 따서 행복해진 이야기일 뿐이다. 그런데 이 별 이야기 아닌 게, 특별하게 다가온다. 단순히 아저씨들의 이야기만이 아니라 어쩌면 우리의 이야기이기 때문에.


동그라미와 네모, 곡선과 직선은 맞지 않는다. 영화에서 전자들은 개개인의 자아, 후자들은 사회가 요구하는 규격을 의미한다. 남자들이, 그것도 각자 삶에 문제가 있는 이들이 수중 발레를 하는 것은 사회가 정한 암묵적 규격에 맞지 않는다. 수중 발레를 하는 것에서 여자들이 하는 운동을 남자들이 한다고 '남성성'이 없다고 조롱당하고, 수영장을 빌리는 시간도 정식으로 빌린 게 아닌 비어있을 때에 맞춰서 해야 한다.


영화의 영어 제목은 'Sink or Swim' 가라앉거나 헤엄치거나. 아저씨들은 네모와 동그라미 사이에서 버티다가, 곡선과 직선 위에서 줄타기를 하다가 쓰러진 이들이다. 각자 삶을 포기하지 않았지만 벅참을 느끼고 있었다. 외로웠고, 힘이 나지 않았고, 즐겁지 않았다. 가라앉고 있었다. 그때 베르트랑이 수중 발레 모집 광고를 보고 주저 없이 택했던 건, 더 이상 가라앉을 수 없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다른 이들도 모두. 삶에서 허우적거리던 그들이 이제는 헤엄쳐 나간다.


삶에 인정, 열정, 미소 채우기

주인공 '베르트랑'이 시니컬한 왕재수'로랑'에게 이렇게 쏘아붙인다. 너는 인정, 열정, 미소가 결핍됐다고. 그건 로랑뿐만 아니라 그들 모두에게 그리고 우리들에게도 아픈 이야기다. 인정받지 못하고, 열정이 없는 삶은 힘들다. 미소는 혼자 짓는 게 아니라 관계에서 지어진다. 인정을 주고받고, 열정을 함께 쏟을 수 있는 사람들이 모인 곳에 미소가 생긴다. 아저씨들의 수중 발레처럼.



그들은 수중 발레 후 사우나를 갔다가 술 한 잔을 꼭 한다. 그러면서 서로 무슨 이야기를 하든 잘 들어주려 노력한다. 너무 썰렁한 이야기를 하면 한 소리 듣기도 하지만. 거기에선 우울증에 걸린 이야기, 사업을 망친 이야기, 뭐든 이야기한다. 가족끼리도 하지 않는 이야기를 숨김없이 하는 모임이다. 서로 받아주고, 함께 매진하며 웃는 모임. 그 속에서 그들은 네모의 틀에 맞추며 깎였던 부분을 회복해서 동그라미가 되고, 서로가 모여 원을 이룬다. 서로가 서로에게 동그란 구명조끼가 되고, 서로가 모여 수중 발레로 원을 만들게 된다. 인정과 열정, 미소가 함께 있는 곳이 된다.



사람들이 알아주지 않거나, 뭔가 좀 다르다 싶으면 하고 싶어도 못 했던 적은 대부분 있을 것이다. 최근엔 스스로 덕후임을 드러내는 '덕밍아웃'이 퍼지고 있지만, 이 단어 자체가 생긴다는 것에서 '네모'의 취향이 아닌 건 특이하게 여겨지는 걸 알 수 있다. 같은 취향끼리 모이면, 열정이 생기고, 도전할 용기 불붙기도 한다. 초짜에 가까운 이들이 프랑스 대표로 나가기를 결정한 것처럼.



아이들은 많이 실패한다. 그래도 괜찮다. 아이들이기 때문에. 그런데 점점 커갈수록 우리는 성공해야 한다는 압박에 놓인다. 그 압박은 삶 전체에 퍼져서 무엇이든 성공만 해야 한다는, 완벽주의로 커져간다. 완벽하지 않은 우리들이 계속 실패하면 할수록 무기력함에 빠지게 된다. 다들 괜찮아 보이지만, 보이는 게 다는 아니다. 사우나에서 속내를 털어놓는 이들뿐만 아니라 선생일 델핀도 힘든 게 있긴 마찬가지다.


그럴수록 실패해도 괜찮은, 안전한 곳에 있어야 한다. 그리고 작은 성공이라도 성공의 경험을 어떻게든 갖는 것. 게임으로 치면 게임 실력이 느는 이유는 많이 해봤기 때문이다. 져도 안전하기 때문에 계속할 수 있다. 잘하는 이들의 팁도 따라 하면서 조금씩 승리할 때 성장하게 된다. 삶도 크게 다르지 않다. 꾸준히 조금씩 성공하는, 성취의 경험이 쌓일수록 가라앉지 않고 나아갈 수 있게 된다. 혼자는 힘들지만 함께라면 해낼 수 있다. 함께 동그랗게 모인다면, 충분히 네모를 뚫고 지나갈 힘이 생긴다. 가끔은 '프랑스팀'처럼 하이라이트를 받을 일도 생기게 되고.


나이 들수록 이런 말을 자주 듣는다. '내 전성기는 지났어', '내 황금기는 그때였는데'. 보통은 2~30대를 지칭한다. 때론 특별히 뭘 했다기 보단, 젊었던 그 시절 자체를 칭송하는 듯하다. 정오의 시기가 지나고, 일몰만 기다리는 사람처럼.


하지만 우리 삶은 길다. 뭐라도 하면 할 수 있다. 물론 지금부터 내가 축구를 한다고 호날두 선수처럼 된다는 말이 아니다. 기타리스트 시몽의 딸이 시몽에게 아빠는 데이비드 보위가 아니라고 한 것처럼. 하지만 뭘 한다고 할 때 꼭 그렇게 높은 지점을 기준 삼지 않아도 된다. 각자에게 맞는 기준을 찾으면 된다. 그들은 수중 발레를 열심히 하면서, 더 중요한 것들을 이뤄낸다. 딸과 친해지고, 아들과 벽지를 칠하는 것처럼 소소하지만 그것만으로도 충분한, 인정받고, 열정적으로, 웃을 수 있는 것들.


우리 삶에 일출은 계속 찾아온다. 단 일출이 계속 온다고 믿는 사람에게만. 일출과 일몰을 얼핏 닮아있다. 일몰만 기다리는 이에겐 그저 울적한 노을이 되고, 새로운 일출을 기다리는 사람에겐 반가운 여명이 된다. 선택은 자기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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