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사진작가의 에세이
건축을 사진으로 찍기 시작하면서, 나는 일상에서 그냥 지나쳤던 것들을 새삼스럽게 다시 보게 되었다. 건축은 늘 주변에 있었지만, 그저 배경처럼 여겨왔다. 그런데 카메라를 들고 건물을 마주하면, 그 순간부터는 배경이 아니라 탐구의 대상이 된다. 설계자의 의도, 재료의 질감, 빛이 머무는 방식, 사람의 움직임까지… 모든 게 새롭게 다가온다.
나는 종종 생각한다. 사진은 단순히 건물을 담는 행위가 아니라는 것을. 그것은 내가 세상을 어떻게 바라보는지 드러내는 관찰 훈련이고, 나 자신을 확장해 나가는 교양의 과정이다.
건축 사진을 찍다 보면 의도치 않게 공부하게 되는 것들이 있다. 재료의 특성을 이해하려고 건축 자재에 대해 찾아보고, 건물의 배치를 보면서 도시 계획의 흐름을 느끼기도 한다. 때로는 철학적인 질문도 떠오른다. "이 공간은 왜 이렇게 고요한 걸까?" "여기서 사람은 어떤 존재감을 느낄까?" 그 질문들이 나를 조금 더 깊은 곳으로 끌어내린다.
나는 건축 사진이 내 교양을 넓혀 준다고 믿는다. 지식을 얻는다는 것보다, 시선이 확장된다는 의미에서. 내가 몰랐던 것들을 배우고, 이미 아는 것조차도 새롭게 바라볼 수 있게 된다.
익숙한 건축물이라도, 그 안에는 늘 새로운 표정이 숨어 있다. 같은 건물이 새벽에는 고요하게, 오후에는 활기차게, 비 온 뒤에는 질감이 진하게 드러나고, 겨울의 차가운 공기 속에서는 또렷하게 선을 드러낸다. 그래서 나는 늘 겸손해야 한다.
“나는 이 건축을 다 안다”라는 생각은 오만이라는 걸 안다. 건축은 끊임없이 변하고, 나의 시선은 언제나 제한적이니까. 사진은 그저 단면을 기록할 뿐, 건축 전체를 다 담아낼 수 없다. 이 사실을 받아들이는 태도, 그것이 겸손이다. 오히려 그 겸손함이 나를 더 깊이 탐구하도록 만든다.
그리고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건축 사진은 전문가만 할 수 있는 게 아니라고. 누구나 카메라나 스마트폰을 들고 건축을 바라보고 기록할 수 있다. 중요한 건 장비가 아니라 시선이다.
벽의 색, 창의 비율, 빛이 들어오는 각도, 의자가 놓인 자리… 이런 작은 관찰이 바로 해석이 된다. 그 순간 우리는 이미 건축을 읽고 있는 것이다. 사진은 그 읽기의 흔적을 남기는 기록이다. 건축가의 거대한 의도를 모두 알지 못해도 괜찮다. 오히려 각자의 시선으로 남긴 해석이 모여 더 풍성한 이야기가 된다.
건축 사진은 설명의 언어가 아니라, 민주적인 언어다. 누구나 할 수 있고, 누구나 의미를 발견할 수 있다. 나는 이 사실이 참 좋다.
결국, 건축 사진은 내게 삶의 태도를 가르쳐준다. 세상을 조금 더 주의 깊게 바라보는 법, 사소한 공간에도 의미를 부여하는 법. 새로운 것을 탐구하는 호기심, 완벽히 담아낼 수 없음을 인정하는 겸손, 그리고 누구나 해석자가 될 수 있다는 열린 마음.
나는 건축 사진이 나에게 이렇게 속삭인다고 믿는다.
“공간을 이해하는 일은 곧 자신을 이해하는 일이다.”
그리고 이 말은 사진가인 나만이 아니라, 누구에게나 해당되는 말일 것이다. 일상의 건축을 바라보며, 우리는 스스로를 조금 더 알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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