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기취준생의 읍소
나는 꽤나 긴 취준생활을 하면서 내가 취업을 못할 줄 알았다.
지금이야 은둔고립청년에 대해 사회적으로도 관심도 생기고 위급함을 느껴 여러 지원정책도 있고 직장을 포기한 MZ세대가 그리 새롭진 않지만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히키코모리, 프리타 등 일본에서만 앞서서 유행하던 개념이었다.
그래서 외로운 점은 '나만 문제 있는 사람'처럼 여겨진 박탈감이었다.
내 친구들은 다들 적절한 시기에 졸업과 취업을 했다.
반면 아주 오랫동안 뭘로 먹고살지 갈피를 못 잡은 나는 전공으로도 취업하지 못했고, 그 밖에 뭘 하고 싶은지, 뭘 잘하는지에 대해 졸업하고서 생각을 하다 보니 막막했다.
나는 남들보다 늦게 시작했고 당연히 모은 돈도 적고 커리어도 낮았고 결혼도 늦게 했다.
느린 인생이었기에 그럼에도 좋아요!라고는 말 못 하겠다.
일찍 시작하는 게 좋긴 좋다.
나보다 어리지만 착실히 돈 모으고, 집 사고, 사회적 지위도 달고, 자식도 있고 이런 사람들을 보면 솔직히 부럽다.
그래도 나는 늦게라도 발걸음을 뗀 느린 인생도 가치가 있다고 해주고 싶다.
남들이랑 비교하면서 휩쓸려도 결국 내 인생의 주인공은 나니까
다른 사람들과 섞여 있는 사회에서 내가 주변인물일지라도
느려도 어찌 됐든 나아가면서 내 인생을 움직이고 있다.
내가 자식이 있다면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
너무 범생이로 공부하면서 살지 말고 내가 뭘 좋아하는지 다양한 경험을 해보자
해외여행, 어학연수 이런 거창한 게 아니어도 좋다.
코딩하기, 유튜버 이런 남들이 다 꾸는 꿈이 아니어도 좋다.
어른들에겐 키자니아가 없다.
직업체험이 쉽지도 않다.
그럼 꿈을 대체 어디서 꾸나
나 같은 경우는 알바를 하면서 식당, 카페 요식업은 정말 나랑 안 맞는군
아이들 돌보거나 관광객 안내하는 건 재밌군
이런 식으로 겪어보면서 내가 재밌는 일이 뭔지 알았다.
이거 아니라도 체험형 청년 인턴 이런 거 요즘 잘 나와있다.
신기하게도 취업을 한 이후로 이건 안 맞고 저건 잘 맞고
연결연결되면서 이직도 되고 분야를 좁혀갈 수가 있었다.
시작까지 그 한걸음을 떼기가, 어느 방향으로 두느냐가 정말 힘들었다.
그냥 해보고 느낀 점은
어린 게 유리하고 더 좋은데
늦었다 해도 그때가 그나마 제일 빠를 때니까
너무 나를 한심하게 취급하지 말자
어딘가에선 나도 쓰임새가 있을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