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산부 배려석
나도 임신하기 전엔 크게 의식하지 못했던 지하철의 현란한 핑크색 자리
임신 전에 나는 생각했다.
'남들 다 하는 임신. 난 임신하면 유난 떨지 말아야지.'
현 임산부로서 말하는데 내 맘대로 되는 게 별로 없다.
임신초기에 나보고 회사에서 "너 주말 근무 괜찮아? 당직 괜찮아?" 했을 때
"네! 그럼요. 제 임신으로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 주고 싶지 않아요." 씩씩하게 대답했지만
그 주에 바로 출혈로 병원 가고 유산끼가 있으니 누워있으라는 청천벽력 같은 말을 듣고 바로 택시를 타고 귀가하여 휴직하게 되었다.
당연히 주말근무는 할 수 없었고 수습할 틈도 없이 들어간 휴직으로 인한 공백에 다른 분들이 내 업무를 해줬다.
그때 확실히 알았다.
'아 나는 이제 이전과 다르구나'
임신 전 나는
남에게 싫은 소리를 할 바엔 내가 다하고 말지
남에게 피해를 줄 바에는 혀를 깨물지
이런 사람이었다.
하지만 이제 임신을 한 나는 약자가 되었다.
비어있는 핑크색 자리에 앉는 게 싫었다.
임신은 누가 시켜서 한 것도 아니고 나와 남편의 지극히 개인적인 사정일 뿐이라고 생각했다.
남들이 그 수고로움까지 알아줄 필요가 없다.
배려를 강요하지 말자.
그런데 임신을 하고 나는 멀미가 무척 심해졌고
심지어 지하철을 타도 멀미를 하게 되었다.
가끔은 아무 짓도 안 했는데 미친 듯이 숨이 차서 헐떡이기도 하고 기절할 거 같기도 했다.
그래서 알았다.
아 핑크색 자리가 이래서 필요한 거구나.
그리고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핑크색 자리를 비워두지 않는다.
내가 겪은 비워두지 않은 사람의 80% 여자였다.
내가 배지를 달고 앞에 서있어도 비켜주지 않았다.
딱 한 번 깁스를 하고 계신 분이 있었고 두 명은 나와 같은 임산부였다.
(당연히 이럴 땐 나도 다른 칸으로 간다.)
그 외에는 참 다양했다.
내가 배지를 달고 헐떡거려도 날 앞에 두고 과일 깎아먹으며 눈길도 주지 않고 깔깔거리던 아줌마들
그 모습을 보다 못한 일반석 앉은 청년이 자리를 비켜줬다.
같은 여자인 게 눈물 나게 부끄럽고 청년에게 너무 미안했다.
줄 서있는데 날 새치기 하더니 밀치고 임산부석에 가서 앉던 할머니
심지어 앞에서 내가 서있는데 빈자리 나니까 밀고 들어와 앉는 아줌마
일부러 죽어라 시선도 주지 않고 다리 꼰 채 핸드폰 하던 젊은 여자 등등
그들에게 핑크색이란 그저 여자 좌석일 뿐이었다.
(노약자석처럼 권리로 생각하는 할머니들도 많았다.)
너 배지 뭐? 젊은 여자가 좀 서서 가라
이런 암묵적 느낌을 엄청 많이 느꼈다.
임신 전에 임산부 친구가 지하철 출퇴근이 불가능할 정도로 힘들어했던 적이 있다.
아무도 양보해주지 않아 늘 만석인 지하철에 숨 막혀하다가 내려서 토하고 다시 탔더란다.
내가 "나라면 좀 비켜달라고 말할 거 같은데"라고 했을 때 씁쓸하게 웃던 친구의 기분을 이젠 이해한다.
임산부는 비켜달라고 말하는 게 어렵다.
일단 그 사람이 비켜주는 사람인지 아닌지 모르고
역으로 나에게 어떤 해코지를 할지 몰라서 두렵기 때문이다.
그 친구는 결국 입덧으로 퇴사했다.
출퇴근 길 나는 17 정거장의 지하철을 타고 간다.
그래서 매일, 문이 열리는 순간에 두근두근한다.
'오늘은 비어있을까?'
지하철 임산부 배려석
'배려석'이라는 이유로 인터넷에서 꽤나 논쟁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배려를 의무로 생각하지 말라.
참 무거운 말이다. 내가 아닐 땐 나도 그렇게 생각했다.
퇴근길 엄청난 빽빽한 지하철 움직이기도 힘든데
핑크색 자리가 비워져 있을 땐 정말 눈물 나게 고맙다.
주위 사람들에게 마음속으로
'양심 지켜주셔서 감사합니다.'
감사 인사하면서 앉는다.
가끔 내가 앉을 수 있는 그 기회는 암묵적으로 비워놔 주는 친절한 사람들의 선의임을 기억한다.
그러니 지하철에 늘 빈 핑크색 자리를 보고 기쁨에 달려가 앉는 비임신한 사람들이라면 (이 글을 보지도 않겠지만) 어떻게 그 자리만 비워져 있었는지 한 번쯤 돌아보면 좋겠다.
당신은 누군가 임산부를 위해 비워둔 선의에 앉아있다는 것을
임산부석에 앉아있다 내리는데 또 아줌마들 소리가 들린다.
"자기야! 여기 자리 났다 빨리 와서 앉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