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가 생기기 전 막연히 '딸'이 갖고 싶다고 생각했다.
주변에 죄다 여자들 뿐이라 여자를 대하는 게 더 편하기도 하고
나이가 들어서도 엄마와 나처럼 서로 여행도 하고
교감하기가 좋을 거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막상 임신을 하고 보니 조금도 그런 생각이 들지 않았다.
아들이거나 딸이거나 성별은 아무 상관없었다.
누구든 건강히 10달 채우고 무사히 만나기만을 간절히 바라게 되었다.
어떤 성별이든 나는 그 아이를 맹목적으로 사랑하게 될 테니까
남편도 성별 아무 상관없어! 라고 했지만
지인들 딸내미를 귀여워하고
여자 조카를 귀여워 어쩔 줄 몰라하는 걸 보며
남편은 딸이 좋은가? 생각하긴 했다.
임신을 했다고 하니까 오히려 주변에서 성별에 관심이 많다.
뭐가 당기냐 배 나오면 모양 보면 안다. 태몽은 꿨냐
임산부들이 보통 불편해하는 오지랖이지만 나는 이런 게 싫지 않다.
간접 육아 체험을 하면서(?) 무관심보다는
누군가의 관심과 도움이 절실하다는 것을 배웠기 때문에 고맙다.
반면 너무 쿨한 우리 엄마
엄마는 언니랑 가까이 살며 조카 둘을 초등학생까지 키워냈다.
"엄마는 손주도 있고 손녀도 있으니 애기 성별 별 상관없지?" 하니까
정말 아무 상관없고 그냥 내가 건강하면 좋겠단다.
예전엔 막연히 자식과 길게 보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실제로 엄마도 나에게 "결혼하지 말고 그냥 나랑 살아"라고 말했고
한 번도 30대 중반까지 결혼 못하는 거에 대한 부담감은 없었다.
막상 결혼하고 보니 이게 내가 부모님께 한 제일 큰 효도였다.
다 큰 자식이 적당한 시기에 부모님에게서 빠져주는 것
(그래서 꼭 결혼이 아니어도 독립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내 결혼식에서 손님맞이하며 환하게 빛나던 아빠의 모습을 잊을 수가 없다.
내가 결혼하고 엄마는 서운해할 줄 알았는데
엄마는 지금이 제일 행복하고 홀가분하다고 말한다.
엄마는 나에게 말했다.
"당장 내가 죽어도 너희들에 대한 걱정은 없다."
"자식이라는 일생의 숙제를 다 잘 끝내고 지금 내 인생을 잘 살고 있다."
남편도 꽤나 늦은 나이에 결혼을 했다.
시어머님은 남편에게 매우 지극정성인 분이었다.
가끔 찾아가서 뵈면 우리를 몹시 반가워하지만 그럼에도
'내 아들 끼고 살고 싶다'라는 느낌이 전혀 없다.
우리에게 과하게 참견하지도 않으시며
너희는 너희 가정 이런 느낌이 확연히 있다.
은퇴하신 두 분이 알콩달콩 즐겁게 지내신다.
그렇다고 우리가 부모님과 단절한 건 아니다.
종종 찾아가서 부모님들과 형제들의 가족과
함께 식사를 하고 각자의 집으로 돌아간다.
나는 어쩌면 지금이 가장 평화로운 모습 같다.
자식의 독립이 부모님에겐 정말 필요하구나.
이분들의 원래 인생을 이제야 되찾으셨구나.
지금 우리의 부모님들이 부럽다.
그리고 내 아이에 대해서도 다시 생각해 보게 되었다.
내가 임신을 한 순간부터 나에게 기쁨을 줬고,
양육을 하는 과정에서 더 큰 기쁨과 보람을 줄테고
그럼 그게 이 아이가 나에게 해주는 효도구나
길게 오래 보고 싶고 참견하고 싶고
다 키워서 뭔가를 기대하고 받아내는 게 아니라
독립적인 개체로 성인까지 아이를 잘 키워내고
엄마의 말대로 자식에 대한 숙제를 잘 끝마치고 나면
또 다른 자기 가정을 만드는 걸 도와주고 지켜봐 주는 게 내 역할이구나
그리고 그제야 내가 하고 싶었던 일을 하면서
다시 남편과 평화롭고 오붓한 시간을 보낼 수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