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병원에서의 생활이 끝나고 퇴원 날이었다.
손목에 내내 하고 있던 인식표와 병원 수납 영수증을 보여주면 신생아실에서 아기 이름표를 맞춰보고 아기를 건네준다.
작디작은 포대기를 안고 나왔다.
조리원 생활의 시작이었다.
조리원은 호캉스 같을 거라는 내 예상과 달리 기숙사 같은 느낌이었다.
프라이버시와 자유가 거의 없었다.
매일 아침 원장이 돌며 아기 상태를 보고했고 신생아실에서 수유콜이나 검진 알림이 왔다.
가슴마사지와 마사지 전화도 계속 오고 프로그램 안내 방송도 나왔다.
방에 문은 있지만 사실상 잠금기능이 없어서 관계자들은 언제나 똑똑 후에 문을 열고 들어왔다.
내가 씻거나 화장실에 있는 중에도 아기를 데리고 오거나 할 말이 있어서 들어오곤 했는데 불안하고 너무 신경 쓰여서 극심한 변비에 시달렸다.
외출도 철저하게 관리되고 어딜 오가는지 언제 돌아오는지 미리 작성해서 나갈 수 있었다.
출산 후 가슴이 공공재가 된다는 말은 사실이었다.
수유를 위해서 원장 부원장 가슴관리사 신생아실직원 모두가 내 수유자세와 가슴상황을 보곤 했고 수유하는 모습은 만인에게 공개되었다.
나중엔 그냥 수유 중에 문 여닫는 거에 면역이 될 정도였다.
병원에서 젖이 나오지도 않는데 어설픈 자세로 아기에게 계속 모유수유를 시도한 대가로 나는 모유에서 피가 섞여 나왔다.
(마찰에 의해 모세혈관이 터진 걸로 추정된다.)
아기가 먹어도 큰 지장은 없지만 통증이 있고 계속 물리면 회복이 더디니 모유수유를 일시적으로 중단하는 게 좋겠다는 말을 들었다.
젖이 찰수록 비우지 못하면 가슴이 아프고 젖몸살이 올 수 있기 때문에 나는 초유를 줘보지도 못하고 젖이 돌기 시작할 무렵 단유를 시작했다.
계속 차가운 냉찜질을 하고 액체류 섭취를 제한했다.
나는 산후우울증이 정점을 찍었다.
다들 유축해서 신생아실에 가져다주는데 나는 아기에게 아무것도 줄 수가 없었다.
본래 나는 모유수유에 대해 1도 생각하지 않았다.
초유주고 단유 할 거야!라는 생각으로 분유 타는 기계와 분유병과 포트까지 야무지게 준비했고 미련 따윈 없었다.
그런데 막상 아기에게 초유 한 방울 먹이지도 못하니 이상한 죄책감이 들었다.
액체 섭취 제한으로 먹지도 못하는데 매 끼니 나오는 미역국만 봐도 눈물이 나고 내 사정을 모르고 직원이 바뀔 때마다(교대근무) 수유콜을 하는 신생아실도 야속했다.
더군다나 그 무렵 옆방 아기는 굉장히 예민한 기질의 아기라 매우 잘 우는 아기었고 반면 내 아기는 잘 울지 않고 잘 자는 순한 기질의 아기었다.
신생아실에서 옆방아기는 늘 안겨있고 우리 아기는 쿨쿨 잠만 자고 있었다.
남편은 옆방은 집에 가서 고생한다… 애 순한 게 좋지 뭘 그래라고 했다.
그러나 우연히 신생아실을 지나가는데 옆방아기가 너무 운다고 달래기 위해 우리 아기만 덩그러니 놓고 직원이 아예 자리를 비운 걸 봤을 때 내 스트레스가 정점을 찍었다.
모유를 못준다는 죄책감에 신생아실에서도 잘 돌봐지지 못한다는 생각까지 더해져서 아기에 대한 연민이 폭발해 버렸다.
우리 아기 불쌍해
이런 생각으로 꽉 차서 엉엉 울었다.
그 외에 조리원 내부 사정도 있었지만 마침내 모유에서 피가 멎고 나도 수유를 할 수 있게 되었다.
단유로 사실상 거의 나오지 않게 된 모유를 또다시 늘리는 것도 굉장히 힘든 일이었다.
그런데 이 일을 계기로 초유를 주지 못했다는 생각이 들어 굉장히 모유수유에 집착하게 되고 모유수유 의지가 엄청 강해져 버렸다.
그리하여 출산 동기 중 누구보다 모유수유 생각이 없던 내가 가장 오랫동안 모유수유를 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