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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재광 Oct 08. 2017

#16 회사가 제공하는 커리어 관리 프로그램의 한계

정작 필요한 순간에는 도움이 안된다

회사는 핵심인력 관리를 위한 Talent management, 일반 직원들의 역량 향상 및 커리어 관리를 위한 CDP(Career Development)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직원들에게 제공한다. 개인의 발전이 회사의 발전으로 이어지는 자연스러운 선순환 구조이다. 그러면 회사가 제공하는 잘 짜인 커리어 관리 프로그램에 내 미래를 위탁하고, 자연스러운 선순환 대열에 동참하면 되는 것인가? 당연한 사실이지만 그건 조직의 논리일 뿐이다. 회사가제공하는 커리어 관리 프로그램을 활용은 하되, 의지해선 안된다. 이유들을 살펴 보자. 


1. 구성원 개개인의 니즈를 일일이 충족시켜 줄 수 없다.

회사가 그리는 영역별 전문가의 이미지나 롤모델이 있을 수 있다. 그러한 모습이 되기까지의 커리어 패스도 나름 정교하게 그려져 있을 수 있다. 그런데 그런 체계들은 엄밀히 말하자면 회사가 직원 전체를 관리하기 위한 용도로 만든 것이지 나를 성장시키기 위해 만든 것이 아니다. 정교하게 짜인 커리어 패스의 경우, 발생 가능한 경우의 수를 정리한 것으로, 결원시 사람을 충족시킬 후보군들을 찾아내거나 이동시킬 부서를 찾아내는 용도로 주로 사용된다. 특정 개인을 상정해 어떤 방향으로 성장시킬지 구상하기 위해서 만들어진 체계가 아니다. 특정 개인에 대한 잘 짜여진 성장계획은 소수의 슈퍼 엘리트 핵심인재들만의 전유물일 가능성이 크다. 나를 끌어줄 직속 상사와의 은밀한신뢰 관계를 통해 이루어질 수는 있어도 일반 직원들이 HR로부터 기대할 수 있는 영역은 아니다.  


회사가 제공하는 커리어 관리 프로그램들은 구성원들이 자긍심을 느끼고, 동기부여를 통해 성과를 극대화하며, 장기적으로는 이탈을 방지하기 위해 사용되는 복리 후생 프로그램의 하나로 볼 수 있다. 비용이 들어가는 이런 활동들은 투입 비용 대비 개선 효과가 큰 핵심인력 중심으로 전개될 수밖에 없다. 이들에게는 요청을 하지 않아도 회사가 알아서 먼저 나서서 순환 보직의 형태로 필요 역량을 쌓을 기회를 제공해 준다. 하지만 짤리지 않고 다니는 것 자체가 목적인 일반 뚝심인력들에게 커리어 관리프로그램은 그림의 떡인 경우가 많다. 제한된 리소스, 제한된 TO로는 뚝심 인력들의 니즈를 제대로 충족시켜 주기 어렵다. 


2. 힘쎈관리자의 강력한 이해관계가 정상적인 작동을 방해한다.

탁월한 핵심 인재라면 안심하고 회사의 커리어 관리에 자신의 미래를 위탁할 수 있을까? 꼭 그렇지만은 않다. 탁월해서 커리어 관리에 해를 입는 케이스들도 많다. A 차장은 담당 임원의 오른팔이다. 부서 내 필요한 핵심 보고서는 대부분 그의 손을 통해 외부로 나간다. 보고서 전담 인력을 의미하는 속칭 "글쟁이"이자 부서 내 업무를 총괄하는 "마도구찌 차장"이다. 잠시라도 없으면 담당 임원이 불편해해 휴가도 길게 가지 못한다. 그를 총애하는 임원은 보직 발령이 날 때마다 그를 데리고 다닌다. 처음엔 그런 대접을 받아서 기분이 좋다. 인사 평가도 계속 최고 등급을 받는다. 그런데 7년을 그렇게 같은 사람 밑에서 같은 일만 하다 보니 커리어가 망가지는 느낌이 든다. 누구 밑에 줄 선 사람이라는 말도 들린다. 술자리 등에서 여러 차례 진지하게 말씀드려 보았지만 조금만 더 참아라는 말만 돌아 왔다. 2년 정도를 더 참았다. 그러다 싫으면 중이 떠나야지 하는 심정으로 회사를 그만두었다. 나쁘지 않은 회사로 옮긴 것 같았다. 


이 보다 더 안 좋은 케이스도 많다. 올해만 참으면 다음 인사 때는꼭 원하는 데를 보내 주겠다는 말을 3년째 들었다. 참다 못해 술자리에서 조금 강하게 어필을 했다. 그랬더니 그럴거면 차라리 회사를 나가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인간적인 배신감이 이루 말할 수 없었다. 보란 듯이 사표를 던지고 나왔다. 그런 임원들이 이해가 전혀 안되는 것은 아니다. 매년 재계약 심사를 해야하는 임시 직원, 임원들의 입장에서는 오른팔의 이탈과 전투력 상실은 치명적인 충격으로 다가올 수 있다. 본인 스스로도, 올해만 넘기면 승진을 하거나 다른 보직으로 이동할 수 있겠다 싶었을 것이고, 그런 와중에 고생했던 후배를 챙겨줄 수 있으리라 생각했을 것이다. 그러다 본인 생각과는 달리 계속 물을 먹다 보면 본의 아니게 거짓말하는 사람처럼 되었을 수도 있을 것이다. 돈이 없어 전세집을 빼야 되는 가장에게 백만원짜리 스마트폰을 사달라는 자식 보는 심정이지 않았을까. 그렇지만 "그럴거면 차라리 회사를 나가서 알아봐라"라는 반응을 보인 건 정도를 벗어난 것이 아니었을까.


담당 임원의 성격과는 무관하게 업무 특성상 핵심인력의 커리어가 망가지는 경우도 있다. 금융권, 그 중 초단위로 거대한 금액이 움직이는 증권 시장에서 IT 담당 핵심인력은 한 번 익숙해진 보직을 벗어나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같은 보직을 10년째 담당해온 사람이 수두룩하다. 개발 잘하는핵심인력을 원하는 것도 아니다. 시스템 히스토리를 잘 알아서 장애가 발생하지 않도록 하는데 꼭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사람은 임원 본인의 밥줄만큼이나 귀한 대접을 받는다. 장애로 시스템이 1초만 멈추면 수백 억대의 소송이 발생하고 담당 임원은 바로 짐을 싸야 하기 때문이다. 너는 꼭 발령을 내주고 나갈께 라며 공수표를 날리지만 발령 난 임원은 남은 핵심인력에 대한 인사 권한이 없다. 새로 온 임원은 욕을 먹던 말던 절대 그 핵심인력을 손에서 놓아주지 않는다. 술자리에서 의기 투합해 해당 핵심인력을 다른 보직으로 이동시키려는 의리의 임원이 간혹 있다. 그러면 현재의 담당 임원이 쫓아가서 삿대질을 하고 싸워서라도 발령을 원복시키곤 한다. 시스템의 안정성이라는 조직 논리가 개인의 커리어 관리라는 논리보다는 훨씬 더 잘 어필된다. 그러다 시스템 환경이 바뀌면서 몸값이 똥값이 되어버린다. 나이는 먹었고, 새로운 기술을 따라가자니 벅찬 상황이 되어 버린다. 이런 리스크를 내 위의 보스들이 생각해 줄 리가 없다.


3. 회사도 마음이 변한다.

핵심인력이라고 마음 놓고 회사의 커리어 관리에만 몸을 맡길 수 없는 또 다른 이유가 있다. 핵심인력이 영원한 핵심인력이 아니기 때문이다. 어제의 핵심인력이 오늘의 퇴출 일순위 인력으로 갑작스레 변신하기도 한다. 국내 기업의 경우 한 사람에 대한 평가가 갑작스레 변하는 경우가 흔치 않다. 그런데 월급받는 외국인 CEO와 경영진들이 임기를 정해놓고 부임해 왔다가 본국으로 돌아가는 외국계 회사의 경우 상황이 다르다. 회사의 전략이나, 대형 프로젝트 추진에 대한 합의, 개인 구성원에 대한 평가 등이 한순간에 뒤집어 지는 경우가 허다하다. 


지인 한 분은 외국계 회사의 HR 팀장이었다. 조직 내에서 두루두루 신임을 받는 핵심인재였다. 그런데 기존 대표가 본국으로 돌아가고 새로운 신임 대표가 오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신임대표는 약간의 구조조정을 포함해 조직을 리프레시해야 하는 미션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칼자루를 휘두를 임원을 외부에서 영입해 왔다. 그 임원은 미션 수행 과정에 HR 팀장을 적으로 간주해야만 했던 듯 하다. 사사건건 문제 제기를 했고 시간이 지남에 따라 인식 공격성 발언의 빈도를 높였다. 무능한 사람으로 대놓고 낙인을 찍으며 자존심을 건드렸다. 상황을 파악한 노조가 지금껏 사측을 대변해 왔던 HR 팀장을 보호하기 위해 같이 대응하겠다는 의견을 피력하기도 했다. 싸워서 잔류를 해도 남는 것이 하나도 없다고 생각한 HR 팀장은 조용히 나가는 걸 택했다. 칼자루를 쥐었던 임원은 결국 그렇게 게임이 끝날 것이란 걸 처음부터 계산했던 듯하다. 이 회사는 한동안 심각한 분규 상태에 들어갔고 조직이 과거보다 슬림화된 상태에서 사모펀드에 매각되었다. 


4. 정작 필요한 순간에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커리어 관리를 회사에 일임하지 못하는 이유, 커리어 관리가 철저히 개인의 몫일 수 밖에 없는 이유는 회사가 날 끝까지 책임져 주지 않기 때문이다. 정작 필요한 순간에는 내게 도움이 되지 못할 뿐만 아니라 날 케어해 주던 그 프로그램에 의해 내 등에 칼이 꽂히는 상황이 생기기도 한다. 


권고사직이 일어나는 패턴들이 몇 가지가 있다. 특정 나이대, 특정 기수가 한꺼번에 권고 사직되는 경우가 있다. 전략이 바뀌어 사업 모델을 접거나 성과가 나지 않는 조직을 통으로 아웃시키는 경우도 있다. 외국계 IT 회사들의 경우 조금 다른 방식을 쓴다. 바뀔 조직도를 그리고 현재의조직과 인력을 매핑시키다. To Be Image에 들어가지 않는 인력, To Be Image에서 필요한 역량을 보유하지 않은 인력들을 아웃시킨다. 매핑 여부는To Be Image의 조직 장들이 결정한다. 나를 받아들이겠다는 조직장이 있으면 살아남게 되고 받겠다는 조직장이 없으면 아웃된다. 


정작 커리어 관리가 필요한 이유는 이런 전시 상황에 대비하기 위해서이다. 그런데 회사의 커리어 관리 프로그램은 이런 상황에서 하등 도움이 되지 못한다. 오히려 아웃시킬 사람을 선별하는 판단 자료로 활용된다. 회사에 위기 상황이 있거나 없거나 관계없이 경제적으로, 인격적으로 당당해 지기 위해서는 커리어 관리가 일상화되어야 한다. 변화된 환경에서 쓸모없는 사람이 되지 않기 위해서는 시장 동향에 안테나를 세우고 언제든 움직일 수 있게 준비를 하고 있어야 한다. 더군다나 현 회사 내에서 커리어 발전의 한계를 경험하고 있다면 이직을 통해서라도 극복해 나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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