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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양 Aug 08. 2021

페스트_알베르 카뮈

거대한 부조리에 맞서 반항하는 정신의 연대를 꿈꾸다

“페스트 환자가 되는 것은 피곤한 일이지만, 페스트 환자가 되지 않으려는 것은 더욱 피곤한 일이에요. 그래서 모든 사람이 피곤해 보이는 거예요. 오늘날에는 누구나 어느 정도는 페스트 환자거든요.”

“불행 속에는 추상적이고 비현실적인 면이 존재한다. 그렇지만 추상적인 관념이 우리를 죽이기 시작할 때는 정신을 바짝 차리고 그 관념과 잘 맞서야 한다.

“페스트로부터 빠져나온 건 개개인들이 기울인 절망적이지만 단조롭게 꾸준한 노력들이다. 그것은 바로 그들을 위협하려는 굴욕을 거부하려는 그들 나름의 방식이다.


한 줄 정리

코로나와 페스트의 공통점 찾기보다 카뮈의 반항 정신을 느끼는 재미가 더 크다. 페스트라는 거대한 부조리 앞에 무력한 우리는 어떤 태도를 가져야 할지 생각하게 한다.

주관적 감상


1. 알베르 카뮈의 <페스트>를 뒤늦게 다시 읽었다. ‘뒤늦다’는 건 코로나 특수로 한바탕 요란한 인기 행진이 끝나고 이제는 한물간 떡밥이 된 뒤라는 뜻이다. 지난해 코로나 카테고리로 묶일 작품이 범람했던 출판 시장에서 <페스트>는 소설 중 가장 큰 수혜를 입은 작품이 아닐까 싶다. 인기 비결은 아무래도 ‘싱크로율’이 아닐 수 없다. 예언이라 불러도 좋을 만큼 <페스트>에 묘사된 혼란의 풍경은 2020년의 세계의 그것과 닮았다.

하지만 알다시피 이 책은 예언서가 아니며 설정과 묘사의 탁월함에 주목하기엔 아까운 작품이다. 카뮈는 현대소설의 뿌리를 말할 때 가장 먼저 호명되는 프란츠 카프카와 양대산맥을 이룬다. 다소 얄팍해 보여도 공통점과 차이점을 말해야 하는 이유다. 두 작가는 모두 부조리를 다루는데 카프카는 어둡고 음습한 골방을, 카뮈는 태양이 작열하는 지중해의 이미지를 연상케 한다. 기묘한 균형이다.

2. <페스트>는 1947년 출간돼 74년이 지났음에도 여전히 놀라운 동시대성으로 풍부한 얘깃거리를 만들어낸다ㅡ여기엔 설민석 강사의 입담도 큰 몫을 했지만ㅡ는 점에서 위대한 작품은 시간을 견딘다는 말을 다시금 증명했다. 그러나 그와는 별개로 지금 읽어도 재밌는 소설이라 말하기는 어렵다는 생각이다. 오히려 반대 입장의 근거를 여럿 댈 수 있다.

플롯은 단순하고 인물은 평면적이다. 별다른 사건도 없고 결말은 당신이 예측한 대로일 가능성이 높다. 다만 전염병이 지배하는 분위기는 지금과 놀라울 정도로 비슷하다는 정서적 동질감이 독자가 의지할 수 있는 유일한 부표다. 요컨대 <페스트>가 탄생한 배경인 제 2차 세계대전 이후와 코로나 시대의 공통점을 발견하는 재미는 있다.

그럼에도 나는 이다지도 지루한 소설을 끝까지 읽었다. 단순히 오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카뮈의 확고한 철학 위에 설계된 작품 세계에서 <페스트>가 가지는 중요성을 읽는 내내 음미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놀라운 허영심이다. 하지만 카뮈의 몇 안 되는 작품을 읽고 나면 당신도 나와 비슷한 감정을 느낄지 모른다. 카뮈는 애초에 작품의 구성도를 그렸고 그에 따라 하나씩 완성했다. 부조리라는 철학 아래 <이방인>에게 ‘부정’, <페스트>를 ‘긍정’의 역할을 부여해 한 쌍으로 내놓았다.


3. 거칠게 요약하면 카뮈의 부조리는 비합리성으로 가득 찬 세계와 그것을 이해하려는 인간 사이에 놓인 혼란(chaos)이다. <이방인>의 뫼르소는 의식 차원에서 지각했든 못했든 깨어 있는 정신으로 부조리를 체감하는 ‘부조리 인간’이었고 그를 사형대에 올린 카뮈는 미국판 서문에서 ‘부조리라는 진실의 순교자’ 즉 ‘우리 분수에 맞는 그리스도’라고 표현했다. 위에 썼듯 <이방인>에게 부조리에 굴복하는 ‘부정’의 역할을 맡긴 것이다.

반면 <페스트>의 리외, 타루, 그랑, 랑베르는 혼자선 부조리에 대항할 방법을 모르는 ‘작은 인간’에 불과하다. 하지만 그들이 자발적으로 보건대를 조직해 병마와 싸우는 과정, 즉 페스트라는 부조리에 저항하는 과정을 통해 평범한 우리가 부조리 앞에 어떤 태도를 취해야 좋을지 보여준다. 거대한 부조리 앞에 절망하는 대신 반항하는 정신의 연대, 그것이 페스트의 서사가 우리에게 힘을 주는 이유다.

카뮈의 정수가 <이방인>이라고 생각했던 나는 그가 내면에 침잠하고 회의를 일삼는 침울한 지식인의 하나라고 지레짐작했다. 하지만 <페스트>에서 보여준 저항적이고 적극적인 참여(engagement) 작가의 면모는 코로나 블루라는 정서적 재난에 갈피를 잡지 못하는 지금의 우리에게 뜻밖의 의미 있는 위로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을 했다.


#알베르카뮈 #페스트 #김화영 #민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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