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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양 Oct 14. 2021

김금희와 마계인천

<오직 한 사람의 차지> 중 '체스의 모든 것' 김금희 

팔은 안으로 굽는다. 일개 생물에 불과한 인간의 자기 보호 본능이자 만고불변의 진리다. 학연, 지연 등등 각종 불공정의 원흉이자 고약한 악습이다. 반대로 팔 안쪽의 팔자 좋은 이들에겐 안온한 삶의 기반이 되어주기도 하지만. 그런데 수혜자도 마냥 속 편한 형편은 아니라는 것, 뜻밖의 고충을 겪는다는 점을 말하고 싶다. 나는 몰랐다. 그간 내가 보낸 아낌 없는 찬사와 확고부동한 지지와 호시탐탐 기회만 엿보다 추천을 일삼았던 김금희에 대한 순수한 애정과 존경이 이토록 불순한 의도의 산물로 훼손될 줄이야.


무슨 말인가 하면 김금희가 인천에서 나고 자란(정확히 하면 출생은 부산이지만 ‘나고 자란’이라는 리듬감이 좋지 않은가)작가였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았다는 거다. 초중고 내내 인천에서 성장한 내게 지금처럼 출신 배경이 야속했던 적은 없다. 졸지에 나는 제 식구 감싸는 흔하고 지루한 K-저씨 인증을 하게 된 거다. 올해 읽은 한국 단편 중 가장 좋았던 ‘체스의 모든 것’에 대해 말하려면 이 문제를 풀어야 한다. 빚이 있으면 갚고 죄를 지으면 값을 치르라. 그것이 모두가 원하는 길이다.


터놓고 말해서 인천은 특색 없는 도시다. ‘마계인천’이라는 밈이 설득력 있는 조리돌림이긴 하지만 도시의 정체성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차고 넘쳐 줄줄 흐르는 서울의 자본과 인구를 떠안은 수도권 제1도시로서 갖게 된 부수적 특성에 가깝다. 말하자면 인천은 수도권 베드타운과 대동소이하다. 다만 땅이 크고 역사가 길어서 ‘마계’라는 웃지 못할 수식어를 달았다. 개항의 중심이자 산업화의 메카였던 동인천은 떠오르는(정확히 하면 떠올랐던) 신예 부평에 도심의 역할을 내주며 개발과 성장이 멈췄다. 융성했던 왕국일수록 폐허의 풍경도 기괴하고 스산한 법. 수십년째 하릴없이 산화하던 거리의 얼굴이 이제는 부동산 개발에 리셋되고 있다. 좋았든 싫었든 과거의 흔적이 지워지는 건 얼마간 슬픈 일이다.


짚고 넘어가야겠다. 이 글은 인천에서 나고 자란 소설가 김금희의 단편집 <오직 한 사람의 차지>의 수록작 ‘체스의 모든 것’에 대한 글이다. 소설엔 세 명의 주인공이 나온다. 노아, 국화, ‘나’이다. 셋은 대학의 영미 잡지 읽기 동아리에서 함께 활동했다. 소설에서 사는 곳이 제시되는 인물은 국화뿐이다. 인천 출신이다. 배경이 1999년 ‘세기말’이고 야간 할증 택시비가 이만오천원에서 오만원 사이로 언급되기에(노아와 국화가 이걸로 실랑이를 한다) 부평 쪽에 사는지 동인천에 사는지 가늠하기 어렵다. 노아의 출신은 알 수 없으나 언제나 한 발 떨어져 어딘가 나른하고 염세적이지만 스타일리시하고 여유를 잃지 않는 태도를 보자면 강남3구 아파트에 잘 꾸며진 자기 방이 있을 것 같다.


노아와 국화는 체스를 두는데 룰을 두고 언쟁한다. 노아는 체크메이트가 더 이상 경기를 지속할 수 없어 승패가 사실상 결정된 상태이며 패자가 스스로 물러나는 게 국제 표준 규칙이라고 말한다. 국화는 자신의 “프라이빗”하고 “핸드메이드”한 규칙은 왕을 직접 잡아서 쓰러뜨리는 거라고 주장한다. 그래야 “클리어”하다고 말이다. 체스 경기로 짐작할 수 있듯 국화는 악착같이 챙긴다. 자기는 어떻게든 “이기는 사람, 부끄러우면 부끄러운 상태로 그걸 넘어서는 사람”이 되겠다고 선언한다. 노아는 패배주의적이고 비관적인 태도로 국화를 안쓰럽게 보지만 동시에 그를 응원한다. 결과적으로 국화도 노아도 둘 다 이기지 못했다. 증권회사에 들어가 “피비 케이츠를 닮은 미인”과 결혼한 노아는 순서는 모르지만 퇴사하고 이혼한다. 대치동에서 학원을 차렸던 국화는 일이 틀어져 대낮에 비둘기가 나는 자유공원에서 ‘나’를 만나 이렇게 말한다 “내 딴에는 영리하게 한다고 했는데, 그게 또 그렇게 되더라고. 나는 이런 얘기를 이제 이렇게 웃으면서 해. 내가 이렇게 한심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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