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 도배사 이야기>, 배윤슬
틈만 나면 호출돼 낡고 헤진 청년이라는 단어는 도배사라는 직업에는 무척 잘 어울린다. 도배는 하루에도 수백 번 우마(발판)를 오르내리며 양팔을 천장까지 뻗어야 하고 무릎을 꿇고 바닥 가까운 곳까지 섬세하게 벽지를 붙여야 하기에 마침내 몸에도 파스를 붙이게 되는 중노동이기 때문이다. 모름지기 청년은 몸뚱아리 사리지 않고 도전하고 인내해야 하지 않나. 마지막 문장에 불쾌한 풍자를 얹고야 말았지만 도배사라는 기술자는 육체노동의 본질을 고스란히 표현하는 숭고한 직업이란 사실을 이 책을 통해 처음 알았다.
저자 배윤슬은 대학 졸업 후 사회복지사로 일하다 도배사로 전향한 여성이다. 내 시야에선 상당히 특별한 케이스인데 그에게 DM으로 도배사 직업의 이모저모를 묻는 이들이 꽤 많다고 한다. 직업으로서 도배사는 장단점이 명확하다. 장점은 평생직장이고 기술직이라 전문성을 기를 수 있다는 거다. 무엇보다 인간관계 스트레스에서 상대적으로 자유롭다. 반면 단점은 앞서 말한 신체적 피로와 함께 계절에 따른 어려움—특히 겨울의 추위에 취약하다—을 감수해야 하며 일정 수준에 올라 독립하기 전까지 건설 현장 일용직보다 낮은 보수를 받고 일해야 한다는 게 있다.
저자는 도배사로서 느끼는 보람과 애정을 표하는 동시에 여러 요인에 흔들리는 자신을 숨기지 않는다. 도배는 건설 현장을 이루는 공정의 일부이므로 성과가 눈에 보인다. 하나의 건물이 지어지는 데 이바지하는 뿌듯함과 점차 실력이 늘어가는 과정에서 느끼는 성취감은 이전 직장에서 했던 측정이 어려운 업무와 달리 실감이 난다고 저자는 말한다. 도배 일은 아주 ‘밀도 있다’며 회사를 다니며 책상에서 회의감을 느끼던 때와 달리 의미 있고 알차다고 강조한다. 하지만 하청의 하청으로 내려오는—건설업체, 장식회사, 도배소장, 동반장—구조의 모순이나 열악한 화장실 때문에 방광염 환자가 많다는 충격적 사실과 함바집의 질 낮은 음식에 대한 지적 등은 직접 체험한 이만이 말할 수 있는 고질적 문제다.
도배사에 국한되지 않는 문제도 있다. 저자는 첫머리에 도배사라는 직업명보다 ‘그런 일’로 더 많이 불렸다고 말한다. 그런 일이란 뭘까. (특수) 청소부, 경비원, 콜센터 상담원까지 모두 그렇고 그런 일이다. 근래 접한 가장 신박한 제목은 ‘노가다 칸타빌레’였는데 내용도 훌륭했다. 저자는 말한다. “몸이 힘들고 피곤한 것보다 더 힘든 것은 마음을 다잡는 일이었다. 실제로도 몸이 아프고 힘들어 그만두는 사람보다 마음이 힘들어 그만두는 사람이 더 많다고 하니 말이다. 몸의 피로는 어느 시점이 지나면 익숙해지지만 거친 일터에서 지저분한 작업복을 입고 적은 월급을 받아 가며 일하는 자신의 모습을 처음부터 인정하는 것은 쉽지 않을뿐더러 주변에 보여주기 부끄러울 수 있다.”
어떤 일이든 일만 해도 충분히 힘들다. 하지만 외부에서 바라보는 시선 때문에 생기는 자괴감이 자기 직업을 감추거나 선망받는 다른 일을 꿈꾸게 하는 게 현실이다. 저자는 “지속 가능하고 안전하게 일하고 싶다”고 말한다. 건설 현장의 소수자인 여성으로서, 근로계약서 대신 구두로 일감을 받는 제도밖 노동자로서 취약한 자신의 환경이 나아졌으면 좋겠다고 말이다. 동시에 도배의 내일을 말한다. 퍼티, 네바리 등 도배 작업의 세분화로 인한 효율의 상승과 인테리어 트렌드의 변화로 타일 등이 유행 환경에 적응하는 경쟁력을 언급하기도 한다. 청년 도배사의 다음 이야기가 기다려진다.